뉴질랜드 대표음식이 바비큐라고요?
태평양에서 온 사람들
“오늘 저녁식사는 어떻게 하지? 토요일이니까 당신이 할 거지?”
“응, 어제저녁에 로스트용 양고기 꺼내 놨어. 당신이 온실에서 상추를 가져와서 샐러드를 만들어줘. 감자랑 쿠마라(고구마 뜻을 가진 마오리어)는 그릴에 같이 구울게. 오늘은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일컫는 말)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그는 맥주를 조심스레 젖은 키친타월로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우리 부부의 주말 정오쯤의 대화이다. 알고 보면 그가 말하는 바비큐는 뉴질랜드의 대표음식이자 최고 음식이다. 새로 나온 바비큐 그릴과 바비큐용 고기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참, 예전에 한국에서 드럼통에 바비큐 했던 거 기억나?”
“그럼! 나랑 신디가 찾아낸 거야! 하하!”
세월이 꽤나 흘렀지만 한국에서 처음 만나 함께 어울리던 뉴질랜드 교사들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한다.
“그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글쎄, 신디를 제외하고는 모르지.”
2005년 9월이었다. 가을이지만 여름 날씨였다. 산속에 자리 잡은 학교라지만 한국의 9월은 여전히 더웠다.
“굿데이, 오늘 날씨가 기가 막히네. 나들이 가면 좋겠어.”
일찍 일어난 데스몬드 선생님이다.
“데스 선생님, 유리조각이 있을지 모르니까 발 조심해요. 엊그제 누가 컵을 깼더라고요”
“ 괜찮아. 우리는 맨발에 익숙한 사람들이야. 키위는 누구나 맨발로 다녀. 겨울엔 진흙이 신발에 묻으면 털어내기 귀찮고, 여름엔 모래가 신발에 들어오니 불편하지. 내 발에 뭐가 묻으면 어때? 씻거나 털면 되거든. 맨발이 더 편해 그리고 그게 더 자연스러운 거야. ”
늘 분홍빛 홍조가 얼굴에 가득하여 뺨이 불그스레한 데스 선생님이 맨발로 기숙사를 돌아다니다가 차가운 타일이 있는 주방으로 들어오면서 나눈 대화이다. 뉴질랜드에서 온 대부분 선생님들은 학교 수업이 시작되기 전 후인 아침과 저녁에는 실내와 실외 구분 없이 맨발로 다니는데, 내게는 이 모습이 그 무엇보다 이상 하였다. 데스 선생님이 원래 태어난 고향은 아일랜드인데 어릴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고 한다. 이미 성인이 된 세 딸들은 세계를 여행하며 살고 있으며, 영국에서 이민 온 와이프를 만나 40년째 함께 하고 있다며 커피를 마실 때 종종 가족 이야기를 한다. 보통은 조용하고 이야기 속에 유머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상대방을 늘 편안하게 해주는 파란 눈 선생님이다. 사실 뉴질랜드에서 온 교사들 중 이런 편안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나의 부모님과 동갑이신 데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마치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평생 끝없이 펼쳐진 남태평양의 하늘과 바다와 언덕만 봐온 사람들처럼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날씨도 좋은데, 내일 바비큐 어때? 고기 사러 장 보러 가야겠네. 빌 그 양반 엄청 신나겠어. 우리가 한국에 와서 바비큐다운 바비큐를 못 먹었잖아. 한국 불고기도 맛있지만, 고기는 그릴에 구워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내가 스쿠터 타고 얼른 다녀올게”
남편 빌과 함께 한국에 온 부드러운 목소리의 마가렛이 조용한 목소리로 가냘프게 말했다. 회색 빛깔이 오묘히 섞인 연한 갈색 머릿결,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얇은 주름들, 하얀 피부와 갈색 눈빛은 아기 사슴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그냥 가볍게 보아도 60 대이다. 남편 빌은 이미 은퇴를 한 할아버지이다. 그들은 함께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는데도 마치 신혼부부처럼 바라보는 서로의 눈빛이 따뜻하기만 하다. 이야기를 함께 나눌 때면 몇 해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왠지 모를 따뜻함까지 전해졌다. 언어소통도 문제지만 버스를 타고 내리거나 택시를 타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에 작은 스쿠터를 샀다고 한다. 빨간색 스쿠터를 몰고 달리는 마가렛과 빌 은 참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아쉽다고 했다. 매일매일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맞아, 요즘 바비큐가 그리웠는데. 내일 날씨도 좋을 것 같은데 다 함께 야외 바비큐 어때?”
그 옆에 젊은 교사 맥스가 맞장구를 쳤다.
“맥스, 바비큐가 프라이팬에 굽는 것은 아니지?. 학교 주방에 직화구이 장비가 있으려나?”
손수 준비해서 바비큐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당황했다.
“당연히 불 맛나게 구워야 바비큐지. 어제 학교 건물 뒤에서 드럼통으로 만들어진 바비큐 그릴을 발견했어. 내가 철판과 숯만 마트에 가서 사 올게. 각자 먹을 고기만 준비해!”
늘 유쾌한 남아공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는 신디가 뒤에서 나타나 말했다.
마가렛 선생님이 꺼낸 바비큐 이야기로 모두들 캠핑을 떠나는 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느새 작은 주방이 교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가진 뉴질랜드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하며 느긋하다.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또한 서두르지 않으며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모두가 바비큐에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