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경제적인 독립을 원했기에,

by 파란선


방황

대학 전공과 매우 다른 아동 심리치료학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심리학이나 정신치료 공부와 연구를 요구하는 대학원 과정이었다. 미술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대학원을 가기 위해 심리학과 관련된 과목을 다시 공부해야 했었고, 치료학이라는 새로운 위해 아동심리 치료소에서 오랜 시간 수련을 받았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심리치료에 관심이 많아, 대학원 재학 중 부설 대학병원과 정신 보건소를 다니면서 실습을 했다. 대학원을 가기 전과 후에도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공부를 이어 나갔다. 대학원 수업 외에 매주 해야 했던 대가 없는 실습과 연구에, 방과 후 미술 교습과 과외로 용돈 벌이를 해야만 했다. 논문이 통과된 후 길은 치료사 혹은 검사자로 나뉘었는데, 모두 끊임없는 공부와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의 어학 공부를 포함하여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했기에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후로는 취직과 결혼이라는 부담이 더욱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누가 어디에 취직했다 혹은 어떤 사람과 결혼했더라 등의 한국에서의 경쟁이나 비교는 어릴 때부터 끊이지 않게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대기업 취직 자리는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곳이라도 스펙을 추가한다 생각하고 넙죽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펙을 쌓아 결국 좋은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 그 당시 분위기였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내가 한 경험이라고는 이십 년 동안 다닌 학교들과 고작 유럽 배낭여행, 그리고 짧은 미국 생활이 다였다.


그때의 나는 ‘오랜 학교 공부를 마쳐서 축하해, 수고했어, 그리고 너의 앞날을 위해 자유롭게 뭐든 해봐. 너는 할 수 있어. 너의 결정을 믿는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응원이 필요했다. 평생 부모님께 의지하여 자기 주도적인 삶이 결핍되었던 나는 당연히 스스로 일을 벌이는 것도 두려워했다. 무엇을 하든 책임을 질 줄도 모르는 덜 완성된 인간이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유럽여행에 이어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경험이었다. 미국에서는 늘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였기 때문에 그나마 자기 주도적 삶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그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그 어떤 상보다 내 마음 깊이 남아 있었다. 못할 것 같았던 일들이지만 해냈던 기억들은 내게 실패와 경험을 더 많이 갖도록 부추겼다. 실패는 실망이 아니었고 실패는 결국 성공의 시작점이었다. 각종 실패 경험들이 모이니 내 것이 되기 시작했다. 많은 깨달음 얻고 성장하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비교하고 나 자신을 질책하며 초라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미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들어온 후 6개월 동안 한국에서 마무리 못한 논문 발표를 마치고,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 가겠다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두 번째 석사과정을 반대하셨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취직할 줄 알았던 딸이 공부를 계속한다 것을 이해해줄 부모님은 없을 것이다. 또한 학비와 생활비까지 지원을 해야 한다면 말이다. 부모님의 마음도 백번 이해가 되었지만,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마도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이 시기가 가장 힘든 때가 아니었나 싶다.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겠다는 이기적인 나와 타협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사실 나도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모르는 그런 애매한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공부와 연구를 계속해야 되는지, 일하기 싫은 곳이라도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것인지 갈등의 연속이었다.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 장학금으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았으나, 평범한 내 실력으로는 입학허가서에 감사해야 할 형편밖에 안 되었다.


결국 나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대신에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성인으로서 독립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치료사 근무, 사무실 보조, 디자이너, 전화 영어 교사 등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적당히 직장이 될만한 곳에서 받아주면 적당히 일했다. ‘적당한'이라는 마음가짐은 한 직장에서 오랜 근무를 하도록 이끌지는 못하였다. ‘적당한'의 마음이 시간 낭비를 이끌고 있었다. 그만두고 나면 새로운 일을 찾거나 인재 채용 업데이트를 보느라 서너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도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다. 마음을 고쳐먹고 ‘적당한'에서 ‘원하는' 직장을 키워드에 넣고 새롭게 찾아보았다. 원하는 일은 ‘영어와 관련된 직업’이었고, 영어로 된 사이트에서 서치를 해보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찾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인터넷 광고를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4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서 새로 오픈 준비 중인 국제학교에서 한국인 선생님을 찾는다는 광고였다. 영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 선생님을 찾는다니 호기심도 생겼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간다면 서울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하여 살아보리라.


무거운 앞날에 대한 걱정과 다르게 내 마음은 가볍게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설픈 영어 실력도 잊은 채 말이다.









keyword
이전 03화뿌듯한 미국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