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서

당장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by 파란선


자유를 찾아서


“그러니까 서울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에서 공부도 하셨는데 먼 이곳까지 오셨네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죠?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셨나요? 이력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 영어실력이나 경험을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교육과 관련 없는 내 학력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었다. 직장 인터뷰에 내 부모님 생각을 묻는 이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전 유학원 원장이었다는 면접관은 이사장과 교장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1차 면접을 하기로 한 분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내가 나쁜 짓이라도 몰래 하다가 들킨 것 마냥 나를 나무라는 느낌이었다.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한 나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제가 원해서 지원했습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초등학생들 미술을 가르쳐왔고,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기에 국제학교에서 일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겠다고 내 평생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망스러운 면접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나 외에도 영어교육학과를 나온 교사부터 한국에 와서 거주 중인 교포 등 실력 있는 사람들이 면접 대기 중에 있었다. ‘다섯 명을 뽑는다는데 많이들 왔군. 이런 것이 한국의 현실인가. 디자인실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그냥 뉴욕으로 떠날까. 추천받은 대기업 비서를 결국 해야 하나. 어떡하지. 서울에서 계속 직장 생활하는 것은 답답한데.’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나 외에도 지원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편견 속의 시선이 불편하였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지원한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인가. ’ ‘결국 부모님이 옳은 것일까?’, ‘적당히 직장 다니다가 결혼하는 게 맞는 것일까’

고속버스에서 보이는 눈앞의 자연 풍경이 무색하게 면접관과 부모님이 하셨던 말들만 섞여서 내게 보이는 것은 의미 없는 풍경과 공허한 하늘뿐이었다.


논문이 통과된 후 진로도 미룬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부모님과 맞서며 적당한 일을 하고 죄책감을 숨긴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한심하고 답답한 상황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국의 국제학교 지원 당시 부모님과 상의도 안 한 채 오로지 나의 의지와 선택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 몇 주 전 뉴욕에서 온 입학 허가 레터를 만지락 거리며 한참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진심으로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먼 미래에 대한 생각만 했지 현재 나는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했지?’

‘미국에 가서 심리 치료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나는 단지 미국에 가고 싶은 것인가'

국내 석사과정을 하면서 힘들고 많은 방황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해본 일들은 어떠했는지 떠올려보았다. 대학 내내 했던 미술과외와 방과 후 수업 교사 생활, 필요한 공부와 경험은 많고 그에 비한 보상이 적었던 치료실 근무 생활, 해외 디자인 업무보다 야근과 주말 근무로 피곤하기만 했던 디자이너 생활, 단조로웠던 사무실 업무 보조 알바 등 무엇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내 책상 밑에 가득 쌓아놓은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와 실기 교재들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평생 해온 그림과 미술 선생님은 그만한다고 미대 졸업 후 처박아 둔 책 더미였다. 미술책만 훑었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것은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또한 나는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거나 함께 경험을 나누는 일등 소수의 그룹과 활동하는 것을 즐긴다. 영어로 말하는 것과 미술을 가르치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몇 가지들 증 하나인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나의 의지대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에 큰 쾌감을 느꼈다. 나는 자유를 원하고 있었고, 그제야 부족한 청년에서 20대 여성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처음 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국제학교로 내려와서 근무해 주실 수 있으세요? 서울에서 오시는 것이니, 원하시면 외국인 교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셔도 됩니다.”

“네! 다음 주에 뵐게요.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당장 예상할 수 없었지만, 현재의 행복을 찾기 위한 자유로운 몸부림이었다.


내 의지와 계획대로 결정한 지방의 국제학교 근무는 대견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당당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 마음 한 켠에는 이도 저도 싫어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독립이었기도 했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몇 달 쉬고 오자는 숨은 이유가 있기도 하였다. 실패를 하는 것은 두렵지가 않았다.


“그 학교가 실제 존재하는 학교 맞는 거니? 확인은 해 보았어? 월급은 얼마야?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느니 추천받은 곳에서 근무를 해보는 것은 어때? 아니면 교수님 다시 찾아가서 지난번에 근무하던 병원에 치료사 인턴 자리라도 부탁해 보면 어떠니? “

“나는 네가 벌써 이십 대 후반인데 공부만 하고 번듯한 곳에 취직은커녕 한 곳에서 오랫동안 근무도 못하는 것이 걱정된다. 결혼은 또 언제 하려는지. 내 친구 딸은…”


물론 자식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은 ‘안전하고 덜 위험한' 서울에서 근무가 가능한 곳을 더 추천하셨다. 순간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더 이상 ‘안전하고 편안한' 경험은 그만하고 싶어졌다. 종이 지도를 읽으며 길을 잃거나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말이다. 그 시간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새로운 경험은 나에게 자신감을 줄 것이고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실패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내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썩 환영받지 못한 결정을 억지로 내 선택 의지라며 옷 몇 벌만 챙겨 도망치듯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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