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닮은 사람,
자연인 톰슨 씨
밤새 끼고 자던 귀마개를 뚫고 시끄러운 바다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에 깼다. 이곳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의 갈매기들은 몸집과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다. 영역싸움이나 먹이 싸움을 할 때면 소리만 들어도 무서울 정도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채 되지도 않았다. 장거리 운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진한 피로로 밤새 코로 노래하던 톰슨 씨가 옆에 없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 열려있는 방문 사이로 거실을 보았다. 낚싯대를 들고 살금살금 발걸음을 재촉하는 넓은 등만 보인다. 침대 끝쪽으로 기어가 눈으로만 그를 좇아 가보았다. 눈앞에는 아름답게 펼쳐진 피요르드가 보인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여행만 가면 낚시하는 우리 집 남자들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물 만난 낚시꾼은 톰슨 씨 한 명이다. 비가 심하게 퍼붓지 않는 이상 새벽 낚시를 하거나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피요르드 사이를 날고 있는 새들을 한없이 쫒고 있는 사람 역시 톰슨 씨이다. 멀리 태평양의 섬 뉴질랜드에서 온 남자이다. 18년째 함께하고 있는 나의 짝꿍이다.
“정말 아름다워. 그 무엇도 움직이지 않았어. 마치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시간을 잠가버린 듯한 멈춰진 새벽이었어. 나 혼자였어. 오늘 바다 독수리를 본 것 같아. 내 머리 위를 힘차게 지나쳤어. 흰색 꼬리 깃털이 인상적이더라.. 참, 이 팔뚝만 한 바다 송어가 몇 번 걸렸는데 놓쳤어. 작은 고등어랑 대구는 놓아주었어.. 믿을 수가 없어. 세상의 끝에 온 것 같아. 지구 최초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원시적인 느낌 가득한 곳의 피요르드에서 낚시하는 이 기분을 뭘로 설명해야 하지?”
“그래.. 안 추웠어? 저녁에 비가 와서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처음엔 엄청 추웠지.. 아 지금도 살짝 추워. 따뜻한 커피 마실까? 아이들은 피곤했나 봐. 죠슈아가 낚시하러 안 나왔네.. 정말 재미있었는데… 하하”
“물고기가 작아서 다 놓아주었는데, 재미있었어?”
“그럼, 평화로운 바다, 잡기 전의 흥분감, 건져 올렸을 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톰슨 씨가 평소와 다르게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가 보낸 새벽 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온전히 그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톰슨 씨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바다가 둘러싸인 섬나라 사람인 톰슨 씨는 바다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과 생명을 존경하며 사랑한다. 아무리 실하고 큰 물고기라도 처음 잡은 물고기는 바다로 보내고, 작은 물고기나 해산물은 절대 잡지 않는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지만 바다에서 하는 것은 다 할 줄 안다. 하물며 눈 뜨고 잠수해서 전복이나 성게를 직접 따기도 하는 영락없는 바다사람이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한다면 먼저 바다 갈매기들이 어디 모여있는지, 바람은 어디에서 부는지, 물결은 어떤지 등 바다를 먼저 살핀다. 나 같으면 그냥 간조와 만조 사이 두 시간만 생각하고 갈 텐데 그는 조류나 바다 상태 외에도 물고기를 쫒는 범고래는 없는지까지 살핀다. 아이들에게도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보존하고 절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손이 닿는 곳은 망가지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얼마 전에 책을 통해 읽은 구절을 톰슨 씨는 자연을 통해 배웠다며 내게 늘 말해준다.
톰슨 씨가 좋아하는 또 다른 취미 생활이지만 해외살이로 못하고 있는 것은 사냥이다. 노르웨이에서도 가을이 되면 전문 사냥꾼들이 무스(Moose) 사냥을 한다. 그는 노르웨이의 사냥 자격증이 없어서 무스(Moose) 사냥 대신 사냥한 무스(Moose) 반마리를 받아 정육을 해서 일 년 내내 신선한 고기를 즐긴다. 톰슨 씨가 고기를 부위별로 정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예전에 사냥을 했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야생 멧돼지 사냥을 하러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사슴이나 포섬(Possum) 등의 동물들도 함께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국제학교 교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취미생활로 매주 했다고 한다. 그가 사냥했다는 피를 흘리는 멧돼지 사진을 보면서 농담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의 친동생 집에 방문했다가 직접 사냥한 멧돼지를 뒷마당에 걸어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또한 뉴질랜드 멧돼지 사냥협회에서 발급해주는 자격증과 멤버용 티셔츠가 우리 집 우편물로 온 것을 보고서야 믿을 수가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난 내게 자연이란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찾아가야 하는 숲과 바다지, 일상 속에서 매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톰슨 씨가 말하는 자연은 생활이었다. 특별한 일거리가 없던 젊은 시절, 바다낚시, 멧돼지 사냥, 오리 사냥, 등은 먹거리를 구하는 일이자 레저였다. 지금도 내게는 이러한 것들이 꽤나 신기한 경험들이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 고기가 슈퍼마켓이 아니라 직접 잡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니, 내게는 돈을 주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거나 자연인들만 할 만한 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톰슨 씨는 어린 시절부터 해 왔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멀었던 바다가 톰슨 씨와 살면서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휴가철이면 나는 어느새 바다 위에 있거나 바다를 보고 있고, 바다에서 낚시하고 있는 톰슨 씨를 발견한다. 그를 따라 자연과 함께하게 된 삶이 여유롭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