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커플

컨츄리 보이와 시티걸의 썸,

by 파란선

국제 커플


두툼한 프린트물이 작업실 한쪽에 놓여 있다. 뉴질랜드 영주권 신청서와 준비서류 리스트를 프린트해 달라고 몇 주 전에 부탁한 것들이다.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봤어?”

“결혼한 지 17년 만에 하려니 어렵네. 우선 우리가 함께 사는 부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해. 이사할 때마다 너무 많은 우편물을 버린 것 같아. 어쩌지?”

“SNS 캡처한 사진, 우편물, 친구 편지, 월세 계약서, 비행기 티켓 정도면 되겠지..?”

“글쎄, 십 년 전 우편물들이 많이 없을 것 같아. 이 가방 안에 있는 파일을 열어봐. 몇 가지라도 나오겠지.”

그가 무게가 꽤 나가는 올리브색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지퍼를 열려고 가방을 흔들자 가방 테두리 사이에 껴 있던 먼지가 바닥으로 살포시 떨어졌다. 이 가방에는 아이들의 출생증명서부터 지금까지 근무하였던 나라마다 받은 워크 퍼밋 등 각종 서류가 섞여 있기에 빛바랜 종이들과 사진들부터 최근 서류까지 모인 파일들이 들어있다. 꽉 찬 가방을 가까스로 열리자마자 툭 하고 떨어진 것은 분홍색 파일, 2006년에 한국을 떠나면서 가져온 파일이다. 너무 오래되어 볼 때마다 새로운 파일이기도 하다. 손이 미끄러져 펼쳐진 곳에는 마지막 페이지 2006년 5월, 5학년 뉴스레터라고 적혀 있다. 젊은 톰슨 씨가 멋들어지게 넥타이를 매고 한국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고, 한국에서의 일 년 근무 후 뉴질랜드로 귀국한다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 옆 페이지에는 나를 포함한 다른 교사진의 사진들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학교 홍보 브로슈어가 있었다.

“이것 봐, 우리 정말 젊었네. 내가 여기서 당신을 만났지. 벌써 몇 년 전인지.”

그는 회색 빛깔 도는 갈색 눈으로 조금 전부터 아빠 뒤에 앉아 있었던 어린 둘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빠랑 엄마는 어디에서 만난 거예요?”

“어떻게 뉴질랜드 사람이 한국 사람을 만났죠?”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요?”

아이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 두툼한 분홍색 파일에는 우리의 젊은 시절 모습이 그대로 담긴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이가 집어 든 사진 한 장은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인 한국의 국제학교에서 둘이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2005년, 그날은 내가 머물던 기숙사 방에 나타난 왕거미 때문에 도움을 청하자 톰슨 씨가 와서 잡아 준 날이었다. 톰슨 씨는 그곳에 모인 12명의 외국인 교사 중 한 명이었다. 내 눈에 띄기 시작한 이유는 큰 키의 건강한 체격, 까무잡잡한 피부와 (그 당시 나는 미국에서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영화배우 윌 스미스 Will Smith의 팬이었다) 밝고 웃는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난히 외국인 교사들 사이에서 궂은일은 도맡아 하고 늘 긍정적이었다. 이렇게나 밝고 순박하며 착한 사람을 만난 것은 또 얼마만인지. 내가 그동안 만나온 외국인들과는 달랐다. 뉴질랜드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랬지만, 긍정적이고 편안하며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톰슨 씨에게는 두드려졌다. 주말이 되면 기숙사 복도 끝에서 음악실 기타를 가져와 60-70년 올디스 음악들을 수준 높게 불러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서먹해지면 재치 있는 단어로 분위기를 바꾸는 밝은 사람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뉴질랜드 선생님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톰슨 씨의 겉모습이 백인들과는 다른 것처럼 그의 영어 발음이 다른 뉴질랜드 교사들과 살짝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일랜드인 피가 섞인 마오리인이다. 뉴질랜드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유러피안 백인들이 아닌 뉴질랜드 토종 원주민 마오리 말이다.


톰슨 씨의 말에 의하면 뉴질랜드에는 100% 순수 마오리 혈통을 더 이상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얗고 뽀얀 피부를 선호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와 반대로 톰슨 씨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어두운 피부라는 표현을 ‘빛나는 갈색 피부’라고 정정해 주기도 하였다. 또한 마오리인들의 전통과 언어가 얼마나 자연과 융합이 되는지 알려주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었다. 이야기 속에는 종종 그리스 신화와 같은 마오리 전설이 나오는데, 대부분 해, 달, 별, 바다, 화산 등 자연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 옛날 옛날에, 뉴질랜드 사람들이 해가 짧아서 할 일을 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일들이 생겨 났지. 그러자 마우이가 그의 형제들을 불러 태양을 잡아서 천천히 지게 만들겠다고 했어. 그래서 그들은 태양을 붙잡기 위해 플렉스(아마)로 밧줄을 만들었지. 마우이와 형제들은 며칠 동안 긴 밧줄을 만들어서 해가 못 보도록 밤에만 몰래 해가 시작되는 곳으로 향했어. 도착해서 해가 떠오를 때 태양을 향해 던진 밧줄을 형제들이 끌어당기고, 마우이가 가지고 있던 마법 칼로 태양을 내리쳤어. 태양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태양이 지치자 마우이와 형제들은 해를 느슨하게 하여 오랫동안 떠 있도록 하였지. 그래서 지금 그나마 해가 길어졌다는 전설이지. 태양에서 보이는 그 빛줄기는 마우이와 형제들이 던진 마법 밧줄 이라고도 해”


한참을 듣다 보면 그의 눈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뉴질랜드에 대해 빠져들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매우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는 섬나라라고 듣게 되었고, 뉴질랜드에 산다는 그의 가족과 전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국제학교에서 단체로 아이들을 데리고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나와 톰슨 씨를 포함한 교사 4명이 아이들과 합류하게 되어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톰슨 씨 또한 내게 보여줄 그의 나라와 문화에 흥분한 듯해 보였다. 그가 말한 마오리 전통과 유럽인들이 만나 이룬 새로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었다. 이 여행으로 우리는 더욱 가까운 동료 사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교사들이 한국에 올 때 커플로 오거나 가족을 데려온 반면 데스 선생님, 톰슨 씨 그리고 나는 유일한 싱글이었다. 타지 생활이 꽤나 외로웠던 우리는 주말에 종종 시내로 함께 나가거나 근교로 여행을 가기도 하였다. 시골에 위치한 국제학교 덕에 오래된 기차역에서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외곽 지역을 가보기도 하였다. 보성 녹차밭, 남원 춘향 마을, 임실 치즈 농가 방문, 지리산 등반 등 나로서도 처음 가보는 곳이 참 많았다. 또한 외국인이 많지 않았던 국제학교 지역에서는 교사들을 위해 김치 담그기 체험이나 다과 체험 등도 권유해 주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교사들에게 한국은 처음이었기에 여러 가지 체험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한국 문화체험이나 역사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늘어남에 따라 톰슨 씨도 한국인인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고, 2주 만에 한글을 떼고 한국말을 익히는데 노력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한국이었기에 그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한국인, 한국의 예절, 한국의 문화, 한국의 역사에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하는 주말과 휴가가 늘어남에 따라 톰슨 씨와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다음 해 여름 공식적인 국제 커플이 되어 폴란드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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