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미스 정

미세스 톰슨은 괜찮은 듯,

by 파란선


불편한 미스 정


“미스 정, 여기에 강아지 그리면 어떨까요?”

“미스 정, 이것 좀 도와주세요.”

“미스 정, 저 물 마셔도 돼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미술 선생님인 나의 성을 부르며 질문하는 말들이다.


폴란드의 국제학교에서 막 근무를 시작했을 때였다. 유럽의 국제학교는 처음이었고, 한국인이 99프로였던 한국의 국제학교와 다르게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꽤 많이 섞인 국제학교였다. 한국말과는 다르게 영어로 선생님을 부를 때 ‘티쳐(teacher)’를 존칭어로 쓰지 않는다. 가끔 일본인이나 한국인 아이들만 국제학교가 처음 일 경우에, 선생님을 ‘티쳐(teacher)’라고 부르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이를 바꿀 수 있게끔 교사가 지도한다. 아이들은 미스, 미세스, 미스터를 붙인 성을 존칭어로 쓰고, 교사는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예를 들면 교장선생님인 톰슨 씨를 칭하는 존칭어는 교장선생님 ‘프린시플(principle)’ 직함을 부르는 대신 ‘미스터 톰슨 (Mr. Thompson)’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만 5세부터 만 15세 학생들의 미술수업을 맡게 된 나를 150여 명의 전교생이 ‘미스 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른 교사들처럼 자연스럽게 성을 부르라고 허락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나도 이상하였다. 한국의 국제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자주 사용하는 환경이라 아이들은 내게 ‘미스 정’ 대신 ‘선생님’이라고 한국말로 부르고는 했기 때문에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던 사항이었다. 특히나 한국인의 성은 외자로 매우 짧은 편에 속했고, 이름을 부르지 않기에 별 의미 없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한국에서는 유난히 서비스업이나 보조업무에 근무하는 여성을 낮추어 부를 때 미스를 붙여 부르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나를 ‘미스 정’으로 부를 때마다 혼자 낯 뜨거워졌던 경험이 있다. 한국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다.


“미스 다그마라(Ms. Dagmara), 성이 어떻게 되시죠?”

처음 온 학생이 이름을 알고자 폴란드어 선생님 Dgmara Muszynska 께 질문하는 경우이다.

폴란드인들의 -ski,-ska,-k로 끝나는 어렵고 긴 성 일 경우에는 미스나 미스터를 붙이고 이름을 불렀다. 이 또한 예의에 어긋난 일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자주 보는 동료 교사들끼리도 나이에 관계없이 이름을 부른다. 어쨌든 동양인인 내게도 성대신 그녀의 이름을 높여 말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는 않았다. 존칭이라는 것이 불리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불릴 때 기분 좋아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근무 생활 중 제일 즐거웠던 때는 역시 금요일과 주말이었다. 톰슨 씨와 나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대신 저렴한 외식을 하고는 했다. 아이가 없는 커플이나 싱글인 동료 교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면서 말이다. 폴란드인 교사들도 있었지만 영국인, 미국인, 호주인, 뉴질랜드인, 캐나다인 등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 거주자 ‘엑스팻 (Expat)’ 들이다. 다양한 국적인 만큼 문화가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였다. 그중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호주에서 온 젊은 부부는 우리 커플과 자주 만났다. 아무래도 뉴질랜드와 호주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었을까. 톰슨 씨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퇴근 후 맥주 한잔 하는 것을 좋아했다. 결혼 후 남편 성으로 바꿔서 성이 같은 Williams 였다. 서양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희망에 따라 성을 바꿀 수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남편 성이든 아내 성이든 원하는 성을 따르거나 둘 다 함께 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단지 성을 바꾸면 신고 절차를 밟아 여권 등의 신분증을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한다. 이름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래전 학교에서 나를 ‘미스 정'이라고 부르는 학생들 때문에 살짝 곤혹스러웠던 이야기를 농담 삼아 이야기했었다. 일 년 전에 이름을 부르라고 할 것을 후회했다고 말이다.


그날 저녁 톰슨 씨가 물었다.

“미스 정’이 불편하면 앞으로 ‘미세스 톰슨'으로 불리는 것은 어떨까?”

그가 작은 반지 하나를 내밀며 내게 청혼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소하게 우리끼리 혼인을 약속하였고, 다가오는 12월 뉴질랜드의 여름날, 북섬에 위치한 파파모아 비치 바닷가에서 백여 명의 하객들 앞에서 결혼하였다. 그 후로부터 학교에서 더 이상 불편한 ‘미스 정’이라 불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미세스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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