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VS 쌀밥

육식과 채식 사이,

by 파란선

빵 VS 쌀밥


우리 집 아이들은 계란밥을 좋아한다. 청소년이 된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만큼 계란밥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계란밥을 아침식사로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이 계란과 밥을 씹어 소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란밥 맛을 보여줘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이가 어릴 때 내가 쉽게 해 먹으려고 참기름 냄새를 피워서 익숙할 수도 있다. 참기름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아이들은 ‘음.. 계란~밥?’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계란밥은 식용유, 계란, 소금, 후추, 간장, 참기름, 밥, 김자반만 있으면 완성이다. 먼저 기름을 두르고 계란 프라이를 시작한다. 취향껏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다. 밑부분이 타거나 바삭거리지 않게 30초 후 중 약불로 줄여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반숙 프라이를 한다. 그 후 뜨거운 밥을 넓은 그릇에 담고 반숙 프라이를 얹는다. 원하는 만큼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빠르게 섞는다. 아이들 입맛에 맛게 김자반을 올려주면 끝이다. 하얀 밥에도 맛있는 김자반은 해외에서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나는 대량으로 주문해 두고 먹는다. 나는 김자반 대신 무생채를 올려 먹는다. 이제는 톰슨 씨도 아이들을 위해 이 정도 계란밥은 잘 만든다.


18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톰슨 씨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침엔 절대 쌀밥을 안 먹는다는 것이다. 꼭 빵을 먹는다. 매주 점심 도시락과 아침식사를 해결해 줄 식빵 네 봉지 정도가 필요하다. 한국에 와서 처음 쌀밥을 맛보았다는 그는 나와 함께 살면서 주 3일 이상은 쌀밥을 저녁으로 먹게 되었는데도 빵을 더 좋아한다. 빵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100프로 함량의 버터이다. 마가린이 섞이거나 지방 비율이 적은 버터는 절대로 사절이다. 또한 그는 나와는 다르게 육식을 선호하는 고기 파이다. 고기를 매끼마다 먹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주말 저녁식사 준비 정도는 톰슨 씨가 하는데, 육식주의자인 그의 메뉴는 늘 로스트 치킨, 바비큐, 혹은 비프스테이크이다. 고기와 함께 준비되는 사이드는 감자, 당근, 고구마 정도이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그린 샐러드와 삶은 브로콜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는 나와 다르게 삶은 야채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로스트 치킨을 만들 때는 생닭 한 마리를 사서 간을 맞춘 후 오븐용 비닐백에 넣고 225도에 굽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닭이 익으면 비닐백을 빼고 오븐용 그릴에 얹어 감자와 당근을 함께 굽는다. 이때 닭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리는 식빵 속이다. 식빵 속은 손으로 찢은 식빵 한 봉지에 소금, 후추, 허브, 버터를 넣고 손으로 뭉쳐서 호일에 싼 후 닭이 익는 동안 오븐에 구워내는 것이다. 요리가 완성되면 구운 통닭을 스테이크 마냥 예쁘게 저며 둔다. 브라운소스, 구운 야채, 구운 식빵 속으로 플래이팅을 멋들어지게 만든다. 어쨌든 톰슨 표 로스트 치킨이나 고기 요리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주얼로 그 맛도 일품이다.



폴란드에서 살게 된 지 2년 차가 되었고 막 결혼을 했을 때였다. 톰슨 씨가 뉴질랜드산 양고기를 구했다면서 작은 양배추와 감자를 두 손 한가득 들고 왔다. 자가용이 없어 집 앞 까르푸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것만 조금씩 구입하고는 했는데, 이 날은 지인이 시 외곽에 있는 창고형 마트에 데려갔던 모양이다. 까르푸 슈퍼마켓도 꽤나 큰 마트라서 없는 고기가 없을 정도였다. 폴란드에는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돼지고기와 관련된 요리가 많아서 늘 돼지고기를 마음껏 사 먹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도 톰슨 씨가 양고기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고기 냄새를 질색하던 나는 양고기의 특유의 냄새는 더욱 싫었다. 그가 오랜만에 양고기로 요리를 해준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양고기 구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거리가 먼 비주얼이었다. 두 시간 이상 끓여 흰 기름이 둥둥 뜨는 하얀 국물에 푹 익은 양고기와 식감조차 사라져 보이는 흐물흐물한 양배추, 으깨진 당근과 감자가 드문드문 보였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에 뽀얀 소머리 국밥 느낌이랄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톰슨 씨는 국물 대신 양고기와 야채들만 건져내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더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로 식사를 하였다. 첫 번째 접시를 비우고 두 번째에는 식빵을 꺼내어 그 위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썰은 고기와 야채들을 올려서 샌드위치까지 먹고서야 식사를 마무리하였다. 그때는 그렇게나 별로였던 톰슨 씨의 최애 푸드인 보일 업(Boil Up)은 이십 년 가까이 못 먹어본 소머리 국밥을 대신하여 나 조차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톰슨 씨 또한 나를 염두하여 가끔은 양고기 대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톰슨 씨는 대체로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는 반면 나는 유난히 음식에 까다롭고 예민하다. 야채를 선호하고 밍밍한 음식이나 쌀밥과 면류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잔치국수, 메밀국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삶은 야채, 간장 비빔밥 정도 말이다. 신혼 초에는 요리 실력이 없어 늘 톰슨 씨가 요리를 담당했는데, 한식 재료가 없었던 터라 톰슨 씨가 만들어 주는 대로 감자, 볶은 야채, 구운 고기 정도만 해 먹었던 것 같다. 톰슨 씨가 빵과 버터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쌀밥을 좋아한다. 꼭 둥근 쌀로 지은 쌀밥 말이다. 한국에서 일 년을 살았던 톰슨 씨가 유난히 좋아했던 음식은 김치찌개, 감자탕, 닭볶음탕, 제육볶음 등 자극적이며 매운 음식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 하지만 톰슨 씨의 권유로 폴란드에 계신 한국인 학부모를 통해 김치를 배워서 함께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적당한 매운맛을 즐기게 되었다. 해외에서 한식을 먹고 싶으면 배워서 해 먹는 길 밖에 없다. 유럽에서는 한식과 한식 재료가 꽤나 인기 있는 음식이지만, 우리가 거주한 도시들은 한식 재료가 구하기 힘든 곳이었다. 독일이나 영국에 갈 때만 한식 재료를 사 오고는 했다. 다행히 한식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톰슨 씨 덕에 주 3일 이상은 쌀밥을 곁들인 음식을 먹고 산다. 우리 집에서는 고기반찬이나 생선 반찬, 야채 반찬, 밥 정도로 세 가지가 메뉴이다. 주 메뉴와 야채 요리는 양도 5-6인분 정도로 많이 할 정도로 식구들이 잘 먹는다. 쌀 밥 대신 감자, 빵, 파스타를 먹기도 하기에 밥그릇은 사용하지 않고 큰 접시를 쓰고 있다. 매 식사 밥, 국, 김치는 없지만 서양식 같은 한식으로 해 먹는다.


이제는 함께한 시간이 꽤 되어 톰슨 씨가 빵으로 저녁을 먹더라도 나는 쌀밥을 접시에 얹어 먹는데 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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