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유현준 교수
정해진 답이 싫어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던 아이, 빈 종이에 제약 없이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아이가 표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미술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새로운 공간과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활동하며 자기를 표현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할 당시 건축가의 길은 적은 보수 때문에 힘든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현장 경험을 하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건축계를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고민의 순간이 그에게도 있었지만 높은 보수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꿈은 아니었기에 이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모전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출품하며 꿈을 키우며 포기하지 않은 덕에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유현준 교수는 어린 시절 겪은 공간의 경험이 현재의 삶을 만들고 건축물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말한다. 나에 대한 관심이 다른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그 사람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건축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자연과의 조화, 사람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공간을 만든다.
건축이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축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 그런 연유로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건축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건축물을 바라보는 대중의 눈을 높혔다.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는 공간 하나쯤은 있다. 어린시절 뛰어놀던 동네 어귀의 놀이터, 숨바꼭질을 할 때 친구들이 절대 찾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공간, 각자가 살아온 인생과 경험이 다른 만큼 남들이 추천하는 획일화된 공간이 아닌 자신을 형성한 공간,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 소중한 기억이 있는 공간 등 본인만의 공간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하여 본인에게 적합한 장소를 선별하면 필요할 때 그곳에서 마음의 휴식을 갖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학교라는 공간이 나의 일터이기에 학교에 대한 그의 생각에 특히나 공감이 간다. 학창시절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큰 운동장 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건물의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실내 면적, 모든 설비가 교육부가 정해둔 기준에 맞아야 하기에 박스 형태를 면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비판하며 학교가 학생들이 뛰어놀기 가장 좋은 놀이터가 되려면 공간의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표준화된 공간의 생산 과잉으로 대부분이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서 살다보니 우리에게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을 구분 짓는 기준이 성적밖에 없다고 말하며, 이것은 우리의 발목을 잡아 위기로 끌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공간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어야 더 개성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으며, 소통 능력도 성장할 것이라며 꾸준히 자신의 공간 철학을 주장하고 있다.
건축이 변하면 우리의 삶도 변할 것이라는 그의 말을 신뢰한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로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사유재산을 지켜내려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외부와 단절되지 않으려면 공공주택의 멋진 정원을 혼자만 누리지 않고 공공재로 여기고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가장 안전한 모두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사람이 오지 않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결국은 사람이 공간을 완성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가 아닌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본다.
직업이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 여기며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소신 있게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삶이 멋스럽다.
나만의 공간플레이리스트가 있으신가요?
나는 혼자 조용한 카페에 가는 것을 즐긴다. 북적북적 사람으로 붐비는 카페가 아닌 뒷골목 어느 한 켠에 작게 자리잡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그곳에서도 가장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을 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긴다. 나만의 아지트는 여러개여서 그날의 느낌에 따라 선별해서 방문할 수 있다.
동네 어귀를 산책하면서도 보물찾기 하듯 주변을 두루 살핀다. 그러다가 후미진 골목 어디쯤에서 작은 공간을 발견하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나의 공간플레이리스트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