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슬 도배사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기타를 잘 치는 것처럼 공부를 잘하는 것 또한 재능의 영역인 것처럼 성실함, 우직함도 재능인 것 같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숙련 과정을 우직하게 견뎌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성실함이 최대의 경쟁력이 되는 때가 올 거라 기대한다.
정직하게 흘리는 땀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사람이 있다. 배윤슬 도배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곧바로 노인복지관에서 2년간 일했다. 보람 있는 일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원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자에서 탈락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몸소 느꼈다. 그가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은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싶었으나 하던 대로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이 일이 자신이 아니어도 누구든 대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었지만 조직문화는 뜻밖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업무 이외의 일을 요구하기도 했고 그것이 그 사람의 능력처럼 포장되기도 했다.
일에 대한 평가 기준이 명확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어떤 조직에서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갔다. 그러다가 기술직에 생각이 미쳤고, 다양한 직군 중 도배에 도전해 보기로 결정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기본기를 배우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잡다한 일을 도우며 현장 경험을 늘려갔고 지금은 6년 차 도배전문가가 되었다.
이 과정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근육량도 요령도 없다 보니 일은 힘이 들었고, 여성 근로자가 많지 않아 화장실 문제 등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작업 환경과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제도적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점은 아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으로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배윤슬 도배사는 없었을 것이다. 어렵지만 한 달 한 달 버티다 보니 6년 차에 이르렀고 그 성실함의 결과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그가 일을 시작할 때 기술자가 되는 것과 자신만을 팀을 꾸리는 것을 목표로 가졌는데 현재 그녀는 처음의 목표를 모두 이루고 앞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할지 고민 중이다. 땀 흘려 일한 만큼의 결과와 보상이 이어지는 ‘정직한 노동’을 추구하는 그녀에게 도배는 자신이 몸을 움직여 한 폭, 두 폭 벽지를 붙여만 결과가 나오고 아무리 재능 있는 베테랑이라 해도 꾀를 부리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일이다.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초보자라도 계속해서 벽지를 붙여 나가면 성장하는 일이다. 그것이 정직한 일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배윤슬 님을 소개할 때면 연세대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등장한다. 도배사가 되는데 학력이 조건은 아니지만 남다른 이력으로 더욱 눈길을 끈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일 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느냐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감당해야 할 때 높은 학력을 요구하지 않고 진입장벽이 낮은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연세대 출신이어서가 아닌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이 했던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길 원한다는 그녀는 학력이 아닌 노력의 과정이 현재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했다.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은 가르는 것은 사회적 기준이 아닌 바로 자신이다. 자신에게 맞으면 좋은 직업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 편견이 만연하더라도 자신이 세운 기준에 잘 맞으면 좋은 직업이 되고 그 기준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배윤슬 님에게 도배사는 참 좋은 직업이다.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청년도배사의 이야기’라는 책에 담았는데 겉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조금 더 버텨 보는 것, 조금 더 해보고 돌아서도 많이 늦지 않으니 방향을 바꾸는데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방향을 트는 이유가 타인의 시선과 평가 때문은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