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reichen
독일 수학과에서 첫 주.
아직 어떤 과목을 남기고, 어떤 과목을 버릴지 한창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조별 과제였다.
"2-4인이 한 팀으로 과제를 제출하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채점하지 않겠습니다."
튜터 혼자서 30개가 넘는 과제를 채점할 수 없으니, 무조건 팀을 짜서 과제를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포장도 잊지 않았다.
"서로 배경지식이 다르니 토론을 하며 배워갈 수 있을 겁니다."
실험도 아니고, 수학 증명 문제를 팀워크로 하라니...
게다가 처음 도착한 나라에서 친구도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 팀원을 구하라는 건지, 막막했다.
내가 수강한 거의 모든 과목이 그랬다.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다 한 과목 소개에서 작은 희망이 보였다.
과목명은 'Numerical Optimization with Differential Equation (미분방정식을 이용한 최적화)', 줄여서 NODE.
설명란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과제는 한 명, 혹은 두 명이 함께 제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첫 수업을 듣고 나서는 응용 쪽에 너무 집중된 것 같아서 수강을 망설였던 과목이었다.
하지만, 팀원 구하기에 지쳤던 나에게 그 문장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결국 나는 그 한 문장에 끌려 NODE를 선택했다.
2주 뒤.
혼자서 완성한 숙제를 들고, NODE의 첫 튜토리얼 수업에 갔다.
문제가 꽤 길어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팀원을 모집하느라 썼을 시간을 생각하면 훨씬 나았다.
그런데,
"혹시 아직 팀을 만들지 않은 학생이 있나요?"
나와, 내 바로 앞에 앉은 학생 한 명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잘됐네요. 그럼 앞으로 둘이 한 팀으로 숙제를 제출하도록 하세요."
튜터의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바로 팀이 결성됐다.
함께 과제를 하게 된 친구는 무뚝뚝한 독일인이었다.
우리가 팀이 된 직후 나눈 대화는 딱 한마디였다.
"각자 문제를 풀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맞춰 본 뒤 제출하자."
그리고 다음 주,
그 친구와 각자 준비한 증명을 비교하기 위해 아침 9시 학교로 향했다.
우리가 각자 준비한 증명은 내용도 거의 같았고,
그냥 내가 미리 타이핑해 둔 파일을 제출하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 증명하는데, 이게 무슨 팀워크람.'
그런데, 문제는 제출이었다.
'아니, 100% 영어로 하는 수업이라며....'
과목 웹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온갖 버튼이 전부 독일어였다.
'invest..? 투자가 여기서 왜 나와..?'
구글 번역기를 써봤지만, 어떤 버튼을 눌러야 제출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옆에 말없이 앉아있던 팀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미안한데... 제출하는 것 좀 도와줄래?'
알고 보니, 구글이 'invest'라고 번역한 그 단어는 'einreichen (제출하다)'였다.
"어휴… 구글 번역기가 또 구글 번역기 했구만"
친구가 내 파일을 올리며 말했다.
그날은 그 친구가 einreichen 버튼을 대신 눌러준 날이었다. ‘제출’이라는 단어 하나가 만들어준 내 독일 첫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