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Schraubenzieher
”구글 번역기가 또 구글 번역기했다….“
이제는 말버릇이 됐다.
토요일 오후, 이케아에서 주문한 책상을 조립하고 있었다.
포장을 벗기고 부품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상판, 다리 네 개, 나사 스무 개. 그런데 이 모든 걸 하나로 이어 줄 드라이버가 보이질 않았다.
영어로 번역된 상품 설명에는 분명 ‘드라이버 포함’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조립 설명서에 드라이버가 없는 걸 보니, 또 구글번역기가 실수한 게 틀림없었다.
이번 주말에도 책상을 조립하지 못하면, 또 일주일 내내 구부정한 자세로 과제를 해야 했다. 이미 거북이처럼 굽어진 뒷목이 뻐근했다. 더는 이렇게 공부할 수 없었다. 가게가 문을 닫기 전에 드라이버를 구하러 급히 시내로 갔다.
먼저 들른 곳은 Müller. 약간 다이소 같은 느낌이 나는 대형 마트였다. 2층, 3층의 홈 섹션부터, 취미, 문구 섹션까지 돌아보았지만 드라이버는 없었다.
이어서 들른 PENNY, ALDI, TK Maxx가 차례로 내 희망을 꺾어놓았다. 내가 찾던 건 십자드라이버인데, TK Maxx에는 일자 드라이버 밖에 없다고 했다. PENNY와 ALDI에는 애초에 공구 섹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REWE에는 드라이버가 있긴 했다. 문제는 그게 5만 원이 넘는 공구세트 안에 포함된 제품이란 것.
결국 나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책상 하나 조립하려고 5만 원이 넘는 드라이버 세트를 사야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심지어 배도 고팠다. 드라이버 하나 때문에 오늘 3만 걸음을 넘게 걸었다.
발코니에 앉아 심란한 마음으로 마트에서 드라이버 대신 사온 프레첼을 뜯어먹었다. 그날은 그렇게 성취감 없이 끝날 줄 알았다. 그때, 옆집에서 낯선 얼굴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Kann…. sprechen…. ein Minute.’
(혹시...이야기....1분.....)
그 순간, 내가 가까스로 알아들은 네 단어였다.
옆집 발코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옆집 할아버지가 독일어로 말을 건넸다. 아마도 1분만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 같았다.
나도 발코니 끝으로 가, 똑같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 Katze… sie….. okay?’
(....고양이....그 애.....괜찮나요? )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독일어로 뭔가 길게 말씀하셨지만, 내가 알아들은 건 이뿐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독일어를 못해요. 혹시 영어 하실 수 있으세요?’
잠시 정적.
그리고 이번엔, (아마도) 그 뒤에 서서 이 대화를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셨다.
우리 집과 옆집 발코니 사이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아침마다, 복슬복슬한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그 구멍을 통해 슬쩍 우리 집 발코니에 나타났다.
그 고양이는 익숙한 듯 발코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조용히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아침마다 고양이를 보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 … 구석마다 놓인 고양이 똥을 발견하기 전까진.
그러니까 나는 우리 집 발코니를 화장실로 쓰는 고양이를 보고, 혼자 위로받았던 거였다. 신문지를 가져와 고양이 똥을 치우고, 발코니에 놓여있던 화분으로 그 구멍을 막아두었다.
할아버지가 부탁한 건 바로 그 일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화단을 화장실로 쓰는데, 거기 가려면 당신 집 발코니를 지나야 해요. 혹시 화분을 치워줄 수 있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요…. 그 고양이가 우리 집 발코니에도 가끔 똥을 싸거든요….”
그러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리 집 고양이 아닐 거예요. 얘는 정해진 화단에서만 일을 보거든요. 아주 깔끔한 아이예요.”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덧붙였다.
“아마 옆에 사는 까만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네요. 길고양이인데, 이 근처에 자주 나타나요.”
듣고 보니, 납득이 됐다. 어딘가에서, 집고양이는 모래에만 똥을 싼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그 구멍을 열어두기로 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이번엔 회색 고양이와 함께였다. 고양이 이름은 ‘클루피’라고 했다.
겁이 무척 많은 아이였다. 발코니에서 내가 보이기만 해도 깜짝 놀라 도망가곤 했다.
할머니는 말했다.
“앞으로 클루피가 너를 봐도 놀라지 않도록, 내가 안고 있을 때 한 번 쓰다듬어 보는 게 어때?”
말씀대로, 조심스럽게 클루피를 쓰다듬었다.
말도 조금 걸어보려고 했지만, 영어로 할지 짧은 독일어로 할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그냥, "클루피-"하고 이름만 불렀다.
할머니가 클루피를 안고 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말했다.
“죄송한데요…. 혹시 드라이버를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하셨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독일어로 말했다.
“Schraubenzieher…?”
그제야 할머니가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잠시 뒤, 진짜로 십자드라이버를 가져다주셨다.
그렇게, 나는 옆집 드라이버로 이케아 책상을 조립했다.
완성된 책상을 보다 문득 생각했다.
‘Schraubenzieher’
구글 번역기가 만들어준 두 번째 연결이었다.
구글번역기가 만들어 준 첫 번째 연결:
https://brunch.co.kr/@7401a069bda44c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