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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n 14. 2024

날다람쥐와 함께 하는 계양산

두 번째 야간 등산

24.06.09(일)

어제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독서 모임 후에 가는 뒤풀이는 영 내키지 않는 기분이랄까. 한 번 가봤지만 역시나 별로였던 자리에 큰 이변이 있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뒤풀이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마치고 서브웨이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형이가 근처에 있는 걸 알았기에 맥주 한 잔 하자고 말했다. 시원한 생맥주를 한 잔 하고 집에 가서 꿀잠을 자고 싶단 생각이었는데 흔쾌히 허락하는 분위기였다. 식단 중인 나형이가 이렇게 흔쾌히? 아마 친구들과 이미 한 잔 하지 않았을까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래도 꽤 술을 마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향할까 했지만 걸으면서 좀 깨고 마시자는 말에 알겠다고 부천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취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믿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걸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곧 나형이도 술이 깨는 것 같다며 술 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형이와 첫 만남을 했던 장소 바로 옆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형이가 문득 물어봤다. 처음 만났을 때 어땠냐고.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편했어. 너무 편해서 주저리주저리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는?"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렇다. 나는 좀 특이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날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소개하곤 한다. 늘 평범함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정상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정상인척하고 사는 삶보다 그냥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이 나에겐 더 편안했다. 척하며 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형이는 편한 사람이었다. 딱히 척하지 않고 첫 만남부터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사람.


이미 술을 좀 마신 나형이었기에 더 이상 술은 주문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자고 했다. 마침 둘 다 내일 일정이 없으니 계양산 등산을 가자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헤어졌다. 나의 등산화를 개시하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너무 예쁜 나의 등산화.

등산을 제외하면 크게 일정이 없기에 오늘도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책 보고 일기 쓰고 게임하고를 반복하면서 밥은 잠시 뒷전으로 미뤘다. 역시 난 일을 해야 밥을 잘 챙겨 먹는다. 배고픔은 귀찮음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먹는 즐거움을 잘 알지만 집에 있을 땐 챙겨 먹는 게 너무 귀찮다. 밖을 나돌아 다녀야 그나마 챙겨 먹지 집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게으름만 쌓여가는 공간.


등산을 가기로 한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이대로 그냥 갈 순 없기에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러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등산할 때 입을 만한 타이즈도 찾을 겸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남성용 타이즈를 찾기가 어려웠다. 시장은 아직 남자가 타이즈를 입는다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물어보면 다들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히 칼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약속 시간에 맞춰 등산 준비를 했다.


드디어 가자 가자 가자 했던 나형이와의 첫 등산을 시작했다. 너무 예쁜 등산화를 자랑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양산을 향했다. 각자 좋아하는 노래들을 번갈아 틀어서 들으며 흥얼거리는 이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차에서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옆에 누가 있던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늘도 그냥 내 멋대로 흥얼거리고 나형이는 옆에서 내 노래를 감상했다. 오~ 잘 부르는데? 빗말이라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자칭 계양산 날다람쥐라는 나형이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하면 말이 없어진다더니 정말이구나. 계단산이라는 계양산은 정말 계단만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게 크게 힘들진 않지만 내려 올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산할 때의 무릎 통증이 너무 싫어서 등산을 잘 안 하는 나에게 계단을 내려오는 게 꽤 겁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내려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나형이를 믿고 부지런히 등산을 이어갔다. 내 페이스보다는 뒤에 있는 나형이 페이스를 신경 쓰면서 오르지만 그래도 자꾸 빨라지는 페이스에 좀 더 신경을 쓰면서 올랐다. 겉옷까지 입었더니 등에는 땀이 점점 비가 내리듯 나기 시작했고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김밥 도시락을 드시는 아저씨 두 분이 눈에 제일 먼저 보였다. 아 나도 김밥 싸 올걸. 아쉬운 마음에 나형이에게 말을 건네었더니 같은 생각이었다. 다음에는 꼭 김밥을 싸서 등산하기로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어정쩡한 경치였지만 역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이 경치를 감상하는 맛에 등산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사진도 찍혔다.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거절하지 않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는 누가 찍어준다고 말할 때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이러다가 평생 내 사진은 사진첩에서 구경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찍어 줄게."


나형이에게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사진을 잘 찍는다고 말하니 알겠다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에 그동안 쌓은 사진 실력을 좀 뽐내봤다. 다행히도 만족스러워하며 앞으로도 자주 부탁한다는 모습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우리의 야간(?) 등산을 마치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날다람쥐의 모습은 하산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산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밝은 표정과 수다쟁이 모드로 바뀐 나형이의 모습에 속으로 웃다가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비웃냐며 뭐라고 하지만 비웃은 건 아니고 그냥 웃었어라고 대답하며 어두운 산 길을 조심히 그리고 조금 빠르게 내려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계양산이었다. 내려와서 보니 가볍게 등산하기에 좋은 곳인 것 같았고 접근성도 나쁘지 않아 언제든 올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종종 혼자라도 올라와 볼까 생각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그만큼 즐거웠던 등산이었다. 오늘은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피곤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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