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나를 이끌어준다.
24.07.09(화)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봐버렸다. 왜 하필 이쪽 길이었을까, 왜 하필 그 시간이었을까,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나와 당신이 그곳에서 마주쳤다. 너무 신기한 순간이었다. 속이 후련해지면서도 속이 답답해지는 순간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헛헛했다.
이제는 내 인생에 필요 없는 사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 당신이 내 삶에서 흐려지고 나의 삶은 또렷한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보고 싶지 않았고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나 마주칠 수 있는 곳은 가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저 멀리 걸어오는 사람이 당신임을 한 번에 알아봤다. 실루엣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리지만 당신임을 알아본다는 것도 싫었다. 스치며 눈을 마주치고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갔지만 자꾸 그 장면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었다. 그리고 헛헛한 감정이 자꾸 찾아왔다. 그리고 분명 당신이 나에게 카톡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역시였다.
마지막까지 아픈 말로 매정하게 나를 대했던 당신. 오늘 이 순간이 자존심 쌘 당신에게는 부끄러운 순간이었을 거야. 그렇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 카톡을 보내올 것이라고 예상했고 역시나 카톡은 왔지. 당신에 대해 참 많은 걸 알고 있다 나는. 그 카톡 하나가 어쩌면 큰 실수였을 거야. 나도 혹시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걸 확신으로 바꿔 준 카톡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당신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제는 후련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이 넓은 곳에서 우리가 그 시간에 그곳에서 만난 건 엄청난 우연이 겹친 순간이었을 것이다. 요즘 나에게 신기할 정도로 우연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이것 역시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어정쩡한 마음이 남은 채로 살았을 것이고 언젠가 당신에게 연락이 온다면 또 휘둘리는 삶으로 살겠지. 당황스러운 하루지만 마음에 족쇄하나가 풀리는 후련함도 함께 공존하는 하루다.
마음에 묻어두자
-다시는 꺼내지 않게 깊숙이
24.07.10(수)
자꾸만 생각난다. 이제는 정말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마음에 아직 작은 응어리가 남아있는 것 같다. 걸으면서 보이는 모든 장소에 당신이 있다. 하필 귓가에 들리는 음악은 왜 이리 마음이 짠해지는 것일까. 한창 무인도의 디바에 빠져서 무한 반복으로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영상을 찾아보려고 유튜브 오프라인 저장된 내역을 보다 ost 모음이 보이길래 누르고 걸었는데 선곡이 좋지 못했다. 모든 노래가 자꾸 기다린단다. 나는 안 기다릴 건데. 오늘 나의 남은 응어리도 털어내고 싶은 기분인데 노래가 참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래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좋아하는 목소리, 좋아하는 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했다.
"내 마음에 묻어두자."
아주 깊숙이 다시는 꺼낼 수 없는 곳에 넣어두자. 어차피 늘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나이기에 이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은 기억으로 간직될 테니. 그렇지만 꺼내서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좋은 기억일 것 같기에 깊숙이 넣어두자.
나 꽤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아프지만 괜찮네. 내 감정이 잘 느껴져. 그리고 이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 슬픈 감정이 슬프게 느껴져. 그리고 아프다고 슬프다고 말하고 있어. 이 시간이 지나면 더 단단해질 것 같아. 누군가를 찾는 게 아니라 나를 찾고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나만 아는 그대의 향기가
우연히 코 끝을 스쳐도
돌아보지 않을게요
가슴에 묻을게요
"지금 우리 멀어진다 해도 - 박은빈"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