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이라는 것은 나와 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근성을 끌고 나아가는 힘은 자기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이 내면과의 1 : 1은 나 스스로가 항상 언제나처럼 대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면은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생성된다. 이 내면을 관조하는 것은 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오는 차이, 이 다름을 본인 스스로가 느꼈을 때만이 가능하다. 또한 타가 나에게 행하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하루키는 이러한 매개체의 힘을 잘 활용하는 작가 중 한 분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와인이며, 음악, 그리고 마라톤이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라 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자신을 부딪치고 정진하는데서 찾아오는 자신과의 일대일 대결을 피하지 않는 곤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로 根性の注入..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해석하면 근성의 주입이다. 하루키는 이것을 마라톤이라는 육체의 행위를 통해 행하고 있다. 이 달리는 행위를 통한 목표의 달성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통한 성취감을 자신만의 격으로 승화시키고 이것을 글을 쓰는데 활용한다. 물론 감성적이고 세밀한 부분은 와인과 음악을 통해 또는 다른 문호들의 글을 통해 해소한다. 고레가 하루키 스타일이다.
내 스타일과 하루키 상의 스타일은 어딘가 모르게 닮은 부분이 있다. 이것은 매일 하루 20분씩 글을 쓰고 나와 타의 교류를 위한 와인을 통한 성찰과 격의 확립 음악을 통한 하루의 정리 등등 묘하게 닮아 있다. 여기에서 방향이 조금 다른 것이 마라톤을 통한 곤조의 주입 부분인데, 나는 이것을 지금은 뜸하긴 하지만 검도와 사격을 통해서 한 적이 있다. 지금 현재는 운동을 통한 근성의 주입보다, 술을 통한 나 스스로가 아닌 타를 혹은 지인울 통한 곤조의 주입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물론 내면의 수양은 말차이다.
반복적인 몸의 행위를 통한 곤조의 주입은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부작용보다는 순작용 즉 장점이 더 많다고 본다. 일반적인 사람 즉 타의 생각은 나와 다르다. 그라나 다르다고 해서 타인 상대방과의 연결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사회생활의 지혜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연결이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일정 이상의 부화로 다가온다면 본인 스스로는 이것을 반드시 해소시키고 넘어가야 생활에 그 하루를 살아냄에 문제가 없게 된다. 이것을 하루키는 마라톤 나는 검도와 사격이었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 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 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p.41 -42.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능력의 한계를 살펴보는 스스로에 대한 관조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을 나 자신 스스로에게 어떻게 투영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관점이 된다. 환경에 따른 시각의 차이에 관한 것과 학습에서 가지게 된 경험의 배움이 그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 기초는 타인을 대면함으로써 예기가 되고 예의가 되며 격이 된다. 격의 생성 과정에 있어서 곤조는 기본 자질 중 하나라 보고 있다.
달라는 것은 자신의 격의 단련인 것이다.라고 하루키 상은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마치 내가 검도와 사격을 통해 단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격은 단련이며, 완성은 꾸준한 것에 기인한다.
꾸준함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한 미학 자신의 예를 든 달리기를 통한 실천,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하루키상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 현재의 지금 지금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