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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가발 Apr 09. 2024

조지오웰 <동물농장>을 읽고

에리히 프롬과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조지오웰의 <Animal Farm>은 보이지 않는 권위주의 의식이 개인의 자아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은 풍자 소설이다.


Animal Farm에서 동물 혁명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며 동물들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과거 비판은 사회 변혁에 필수이지만 동물들은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판할 필요성마저 느끼지 못한다. 혁명 직후에도 농장은 인간이 남긴 흔적으로 유지되며 동물들은 전과 같은 소극적 태도를 유지한다. 이는 영웅적인 존재에 대한 동물들의 맹목적 권위 추종으로 이어진다.

동물들이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힘은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이다. 강력한 육체를 가진 Boxer가 스스로 권위에 복종할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낀 건 복서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Boxer와 다르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내 느낌과 생각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조지 오웰은 Boxer 통해 이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편하다. 비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피곤하기까지 하다. 권위주의는 똑똑하고 경험 많은 Benjamin마저 진실에 대한 그의 관심을 꺽어버렸다. Benjamin의 회의적인 태도 이와 관련된 무력감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독재 권력은 시민들의 자아를 말살시키기 위해 병적인 심리상태를 요구한다. Animal Farm은 동물을 통해 피압자와 억압자의 공생 관계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조지 오웰의 Animal Farm을 중심으로 독재의 심리를 다룰 것이다.     


Old Major는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억압된 자신들의 분노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Old Major의 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꿈은 동물들의 억압된 욕망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인“꿈의 해석”에꿈은 억압된 욕망에서 발현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본다면 Old Major의 꿈은 동물들이 자신에게 잠재된 욕구를 직접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 소설에서 동물들의 심리가 중요함을 나타낸다.

Old Major는 연설을 통해 혁명의 기반을 다지고 사흘 뒤 숨을 거둔다. Old Major 사망 이후, 영리한 돼지들은 자연스럽게 엘리트 계급을 형성한다. 이는 곧 새로운 지배계급 등장을 의미한다. 소수가 계급을 형성하는 사이 동물들은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돼지들이 old major의 가름침을 토대로 ‘동물주의’를 체계화하던 과정에도 그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여기서 동물들의 주체 의식 부재가 나타난다. 심지어 어떤 동물은 “If this Rebellion is to happen anyway,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whether we work for it or not?”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소극적 태도는 그들이 불안과 무력감을 느낀다는 증거이다. 복종에서 벗어나 얻게 되는 자유는 필연적으로 불안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문가나 권위자를 향한 맹신으로 이어지며 독재의 기반이 된다. 어떠한 문제가 너무나 복잡하기에 전문가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핑계는 개인의 사고력과 용기를 의도적으로 빼앗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은 말과 글로 표현된 것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권위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유아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돼지들은 과학 등을 핑계로 동물들의 의심을 피한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동물들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되고 돼지들의 주장만을 기다리게 된다. 이와 관련된 소극적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Benjamin의 무기력한 성격과 회의적인 태도이다. Boxer가 스스로 비판의식을 버리고 권위자를 추종하려는 태도 또한 이와 연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굶주린 동물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인간들을 농장에서 몰아낸다.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낸 후 농장을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이 자유는 소극적 자유이다. 혁명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졌기에 그 과정에서 동물들의 주체 의식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 과거 비판 또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로 인간이 남긴 권위주의는 여전히 농장에 남아 동물들이 원초적 유대감에서 스스로 벗어날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한다. 원초적 유대는 개인의 개체화를 방해하며 이성과 비판 의식을 약하게 만든다. 동물들은 나중에 이 유대감이 주던 안락함을 피학적 유대감에서 얻는다. 이는 개인은 무가치하기에 개인은 자신에게 의존할 수 없고 외부의 힘에 복종해야 한다는 나치즘과도 연관된다. 동물들의 주체 의식 부재는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힘을 만들어내게 된다.

혁명이 일어난 직후, 돼지들은 인간이 남긴 도구와 사상을 이용하여 칠계명을 완성한다. 이와 동시에 우유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돼지들은 우유에 신경 쓰지 말 것을 당부하며 문제를 은폐시킨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동물들의 의지와 용기를 꺾는 시도이다. 이것은 돼지들이 동물들의 독자적 사고를 억압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돼지들은 동물들의 자아를 본격적으로 마비시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물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돼지들은 동물들에게 만들어진 생각과 기억과 느낌을 주입시킨다.

돼지들은 동물들의 비판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언어조작을 시작한다. 동물들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며 자신의 느낌과 생각까지도 돼지들이 정해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동물들의 감각은 서서히 무뎌지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도 꺾인다. 새 날개는 조작기관이 아니라 추진기관이기에 발이라는 주장과 칠계명 조작 모두 언어 조작에 포함된다. “자신들은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같은 돼지들의 주장도 언어 조작이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둔갑시키며 부당함을 구별할 동물들의 판단 능력을 흐린다.

돼지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조작은 존스와 관련된 것이다. 공포심 유발은 동물들의 의심을 꺾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존스를 이용한 언어조작은 개인적인 주장과 의심이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음을 내포한다. 동시에 개인은 무력하며 권위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전체주의 사고까지 강화시킨다. 이러한 언어조작이 반복되면서 동물들은 의심하기를 포기한다. 자유로운 사고는 의심을 만들 뿐이기에 위험하며 없어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돼지들은 “익명의 권위”를 이용하여 동물들이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익명의 권위는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기에 공개적 권위보다 더 치명적인 효과를 갖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때 “너가 선택해 그러나 그 결과는 너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꼭 기억해라”라고 말하면 아들은 분위기를 통해 아버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바로 알아차린다. 아들은 아버지가 분노하여 자신을 때리지 않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서 아들은 아버지가 슬프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들은 자신이 원하고 느끼는 것을 아버지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그 결과, 아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돼지들이 동물들에게 “surely there is no one among you who wants to see Jones come back?”라고 한 말은 이와 비슷하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익명의 권위는 훈련된 개들과 숙청으로 더욱 강력해진다. 동물농장에서 의심과 비판은 점점 악을 의미하게 되며 억압은 미덕이 되어간다. 돼지들은 이렇게 언어를 조작하여 동물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까지 조작해나간다. 그럴수록 동물들은 허구와 현실을 분간할 수 없게 되며 만들어진 허구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더욱 강한 복종으로 이어진다.  

언어조작은 동물들 사이에서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Boxer는 “I will work harder”와 “Napoleon is always alright”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과한 의욕을 보인다. 이는 자신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을 은폐시키기 위한 ‘과보상’ 행동이며 지배자에게 복종하여 허무감을 숨기고자 하는 피학적 충동이다. 이러한 Boxer의 행동은 무력감과 허무감 등에서 벗어나 ‘2차적 유대’에서 소속감과 안락함을 얻고자 하는 마조히즘 현상이다. Boxer는 자신이 사랑받는 이유를 가장 원초적인 방법에서 찾으며 강한 육체를 뽐내기 위해 자신을 착취한다. 하지만 돼지들은 Boxer의 이러한 병적인 심리와 행동을 부추기며 치켜세운다. 여기서 억압자와 피압자의 공생 관계가 나타난다. 피학적 욕구가 충족되기 원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가학적 욕구가 충족되기 원하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기반하여 독재체제를 이룬다. 이는 강력한 힘을 우월하게 여기는 권위주의적 성격의 특징 중 하나이다. 힘을 가진 Boxer를 경외하는 농장 동물들의 태도가 그 예이다.

돼지들의 치밀한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은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소 외양간 전투에서 Boxer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착각하여 울부짖는다. 죽음에서 비극적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자아 인식과도 관련된다. 프로이트는 피학증이 ‘죽음의 본능’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Boxer는 죽음을 통해 짧게나마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억압되었던 Boxer의 진실된 모습이며 동물들의 욕구 불만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모든 신경증은 동적 적응의 사례이기에 동물들이 외부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벤자민의 회의적인 성격과 태도도 이런 적응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 중 하나이다. 돼지들은 동물들의 억압된 욕구를 달래기 위해 군국행사와 메달 수여 등을 이용한다. 어용시인이 지은 Napoleon 찬양 시도 동물들의 욕구 해소를 위해 사용된다. 동물들이 독재체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적개심과 분노는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들은 Snowball을 축출시킨 뒤 그를 정적으로 만들어 동물들에게 분노를 배설할 대상을 만들어주었다. 동물들의 불안이 거세질수록 Snowball을 향한 분노는 거세지며 Napoleon 체제는 견고해진다. Moses와 Squealer가 공급해주는 환상과 거짓은 동물들에게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한다. 동물들은 스스로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 글에서는 조지오웰의 Animal Farm을 중심으로 주체의식 부족과 그에 따른 독재 심리를 다뤘다. 독재체제는 개인의 무력감을 강조하며 전체에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 무력한 개인은 자아를 포기하고 독재에 순응한다. 자아를 말살시키는 체제에서 인간성은 존재할 수 없다. 옳은 사회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돕는다. 바람직한 사회에서는 결코 언어조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언어조작은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기 위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은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독재자는 언제나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마음속 비겁한 권위주의를 먼저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독재는 자연스럽게 굶어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동물들이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었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자신들의 자유와 진정한 삶을 쟁취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만히 있으며 스스로 노예 상태에 안주했다. 최악의 상태에서 더 나빠질 수는 없다. 동물들이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아가는 것뿐이다. 멈추는 것 자체가 노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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