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은 액수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설레는 순간일 것이다. 한 달 동안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날이니까. 9급 공무원의 월급에 대한 많은 괴담(?)들이 도시전설처럼 퍼져있다. 편의점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적은 액수를 받는다고. 안타깝게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물론 세전으로는 그보다 더 많이 받지만 기여금을 포함한 상당수의 공제 항목으로 여기저기 빼앗기면 몇 푼 잡히지 않을 돈이 수중에 남는다. 시원하게 월급명세서를 공개해 볼까 했지만 '내가 이만큼밖에 받지 못한다!' 따위의 빈곤 자랑은 하기 싫기 때문에 자세한 내역은 상상에 맡기겠다. 힌트를 하나 주자면 다른 직종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은 열에 아홉 이상 아주 딱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 큰 이변이 없다면 35년 정도 호봉제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2호봉의 월급을 받아도 그러려니 해야지 뭐. 공무원 월급 적다고 푸념하면 그러길래 누가 공무원 하랬냐 역으로 혼나는 세상이다. 수년 전 공무원 준비를 하려 마음먹을 때는 분명 신의 직장이라며 인기가 많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대국민 사기극에 당한 걸까.
직장을 가지기 전에 동생과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조선팔도에 소문난 효자효녀처럼 대단한걸 하진 못하더라도 월급의 10%는 부모님을 위해 쓰자고. 그래서 부모님께 월급의 8%를 용돈으로 드리고 2%를 선물 사는 데 쓰기로 했다. 동생과의 맹약을 지키기 위해 첫 월급을 받은 날 집에 들어가서 현금으로 부모님 용돈을 드렸다. 10만 원이 조금 넘는 푼돈이지만 자식에게 처음 받아보는 용돈이라 그런 걸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만큼 좋아하셨다. 아직 취준생인 동생한테도 용돈을 주고 조촐한 치킨 파티까지 치렀다. 불안하기만 했던 취업준비의 터널을 지나 비로소 안정감을 찾은 것 같다. 마치 게임을 하듯 인생의 미션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투머치하게 감동하신 아버지)
공교롭게도 첫 월급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그동안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같은 특정 기념일에 하는 가족 외식은 당연하게도 아버지가 계산을 했다. 이번 어버이날은 이런 전통이 깨진 첫 번째 기념일이다. 아버지는 일이 있으셔서 오지 못했지만 어머니랑 동생과 같이 간장게장집을 갔다. 외식비는 내가 내고 카네이션은 동생이 준비했다. 행복해하시는 어머니는, 자식이 드디어 부모의 품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이제 아들이 주는 용돈으로 집앞에서 요가 수업이나 들어야겠다는 말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조촐한 외식 후 커피 한 잔
나는 더 이상 어린이날을 챙기지 않고 반대로 어버이날을 챙기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서른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롯이 한 명의 개체로 살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몇 번의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보내고 결혼과 출산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무튼 짐덩어리 같았던 처지에서 벗어나 부모님이 뿌듯함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