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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롱불 Sep 30. 2023

추석연휴가 두려운 공무원도 있습니다.

추석특별소통기간의 우체국

  공무원이 되기 전 명절이란, 긴 연휴기간 시골에 내려가 친척을 만나고 휴식을 취하는, 기다려지기만 하는 날이었다.



  우정사업본부에 입직해 우체국 공무원으로서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일선 우편창구에 앉아있는 나에게 추석이란 마냥 기다려지기만 하는 연휴가 아니라 폭발적인 물량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날이라는 양면성이 생겼다. 물론 추석 기간 동안 길게 쉴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연휴를 보내기 위해선 화장실도 가지 못 할 정도로 바쁜 고통스러운 며칠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추석 연휴기간을 대비하여 특별소통기간을 정하고 물량폭탄에 대비한다. 특별소통기간에는 일정 금액의 예산이 배정되어 우편물량을 수거해 가는 우편차량이 추가로 증차되고 일용직 인원을 고용하기도 한다. 내가 있는 관내국은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하루에 두 번 오는 우편 수거차량이 2배로 늘어 4번 온다는 것뿐이다. 그만큼 접수물량이 늘어난다는 거겠지만.



  추석 특별소통기간이 다가오기 전에 팀장님과 다른 주무관님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빠 우체국이 우편물들로 터진다고. 겪어본 적 없던 대기인원을 만날 것이며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잘해둬서 그런지 물량 폭탄 앞에서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우편창구 3곳에서 오전에만 7파레트, 오후에는 8파레트 이상이 나간다. 정말 쉼없이 '하루종일' 접수받고 접수물량 상차까지 해야 한다. 이때만큼은 상하차 아르바이트가 생각난다.



  쉼 없이 들어오는 물량을 감내하다 보면 그래도 시간은 정말 잘 간다. 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한두 시간씩 훌쩍 지나갈 정도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추석 선물세트라며 상자 150여 개를 들고 오신 고객님이 주신 주소지 목록을 하나하나 작성하고 기표지를 뽑아드린 다음 호출버튼을 누르면 이번엔 선물세트 90여 개를 가져오신 고객님이 온다.  인터넷으로 사전접수를 하지 않고 따로 엑셀파일 없이 백수십 개의 주소 목록이 적힌 종이를 주시는 고객님을 만나면 폭주할 대기인원에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많다. 시간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주소라도 잘못 썼다간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니까. 창구 사전접수가 많이 홍보되었으면 좋겠다. 사전접수 고객님 최고.



  사실 바쁘고 정신없는 것보다 물량이 많아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를 하는 것이 고역이다. 특히 추석 주간인 월요일부터 신선식품 접수가 제한된다고 본부에서 공지가 내려와도 일선창구에선 고객이 강력히 접수를 요청하면 받을 수밖에 없다. 추석 이후에 배송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식품이 상해도 우체국에서 손해배상이 되지 않으며 안내받은 것에 대한 서명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일선 공무원이 갖는 어려움은 상위기관의 지침과 고객과 대면하는 상황에서의 모순된 상황을 견뎌내는 것이다. 추후에 생기는 손해배상에 관련한 문제를 상위기관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닌 접수국에서 책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실랑이를 감수하면서 민원응대를 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지만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도 이런 부분에서 서명을 받고 접수국에서 만들 수 있는 면책사항들을 충분하게 만들면 이후 절차는 콜센터에서 해결해 주는 등의 시스템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다.



  바쁜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내 우체국에서의 첫 명절을 무사히 보냈다. 제 때 도착하지 못하거나 기표지가 떨어져 이탈물이 된 우편물 민원도 없이 잘 지나갔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있는 이런 이벤트들이 크게 나쁘지만은 않다. 설과 추석 그리고 선거철.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뿌듯함도 느껴진다. 공무원이 바쁘게 일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에 잘 이바지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공공봉사동기인가 싶다.








  명절을 앞둔 상태라도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내면 평소와 비슷하게 도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천에 하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저런 안내를 드리지만 공공조직이니만큼 문제없는 우편물 배송을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한다. 신뢰성이 담보되는 우체국 많이 이용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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