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관료는 고객접점으로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으며 정책의 하향적 집행결정 외에 상향적 방향성도 중시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일선관료의 업무특성상 자원의 부족, 권위에 대한 도전과 위협이 있다고 정의했는데, 60년대의 행정학 연구에서 등장한 일선관료에 대한 내용이 아직까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민원창구에서 매일 백수십 명의 고객을 응대하는 일선관료가 된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다. 큼지막한 이벤트가 생기면 그 고충은 더 심해진다. 전국적 단위의 애로사항이 생긴다면 창구에선 한숨부터 나온다. 우체국 위탁택배노조 파업으로 인한 배송지연의 불편, 우체국 금융 시스템 업데이트로 인한 금융의 불편. 이런 불편사항으로 인한 화살은 주로 창구 직원이 받게 된다. 창구 직원이 항상 갖는 딜레마 상황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받을 때 마음이 불편하다.
"우체국은 공무원 아닌가요? 도대체 왜 파업을 해서 국민을 불편하게 하나요?" "지금 계좌이체 해야 되는데 금융이 안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요? 대답을 해보세요!"
이성적으로 천천히 따져보자면 화를 내는 고객도 일리가 있다. 택배노조 파업, 우체국 금융 오류로 인한 불편을 누구에게 성토할 것인가? 위탁택배 노조에 찾아가기도, 우체국 정보센터에 찾아가기도 힘들다. 고객과 연결된 지점에 있는 창구에서 불편제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우체국 금융 오류 사태에 관한 불편민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정사업본부 정보센터 전화번호를 고객들께 알려준 창구 직원이 있었던 것 같다. 금융오류 불편민원을 절대 정보센터로 연결하지 말라는 전체 안내 메시지가 왔다. 열심히 오류를 수정 중인 상태에서 민원응대까지 하면 오히려 해결이 늦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진짜로 본부에 연결하고 정보센터에 연결해 줘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좌) 위탁택배노조 파업으로 인한 물량을 집배원분이 떠안게 되는 눈물나는 장면 / (우) 업데이트 이후 며칠간은 절망적이었다.
물론 99%의 고객은 정말 좋다. 필요한 업무를 처리해 준다는 것이 재미있다. 옛날의 나는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는 이제야 업무에 익숙해지는 신입이지만, 짧은 고객응대 후에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단어로 정의해 보자면, 나도 TV의 그들처럼 보람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단순히 대화만 하더라도 즐겁다고 하지 않는가? 1%의 특수한 경우가 하루를 힘들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 불가능한 민원을 받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정말 시원하게 "나도 언제 끝날지 몰라요~" "여기서 화내셔도 해결 불가능하니 본부에다가 말씀하세요~" 하며 돌려보내고 싶지만, 일차적으로 강한 반박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2차전, 3차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이후의 민원들은 곱절로 강력해지는 것 또한 알기 때문에 최대한 나를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진다. 선을 넘는 폭언이나 폭행이 아니라면, 부당함을 참고 감내하는 것이 최선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신의 번호가 지나서 대기번호를 다시 뽑아오라는 말에 종이를 던지는 고객이 있어도 아무 일 없는 듯 참고 넘기는 것이 오히려 나를 돌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