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4)
자신감은 과했고 오해는 시간의 두께만큼 쌓여 있었다. 그런데 오만이었고 착각의 두께는 생각보다 묵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유행은 서울이 선도하고 트렌드와 혜택은 서울에 몰릴 거라는 당연한 생각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고백이다.
한달간 부산에서 경험한 커피 그리고 커피 문화는 바로 그, 자기반성의 계기가 됐다.
1883년부터 1914년까지 부산항에서 부산해관 감리서 직원으로 근무하던 민건호가 쓴 일기 해은일록(海隱日錄) 중 1884년 7월 27일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갑비다(甲斐茶, 커피)를 대접받았다.”
감리서(監理署)는 개항장과 조계지에서 외국인들의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개항장에 설치된 해관의 관리 감독기관이다. 민건호가 커피를 대접받아 마셨다는 곳은 당시 부산해관에 근무한 청나라 고 빙직원인 당소의(唐紹儀)의 집에서다.
부산학연구센터는 2022년 12월 발간한 교양총서 ‘커피 바다, 부산’에서 민건호의 일기 내용과 함께 “조선인으로서 커피를 음용했다는 게 기록으로 증명되는 인물”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민건호의 해은일록에 갑비다가 기록된 같은 해 서울에서도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 외교관이자 천문관인 퍼시벌 로웰은 조선을 방문한 경험을 모아 1885년 출간한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 “1884년 1월 조선 고관의 초청으로 한강변 별장의 누대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내용을 적었다. 이 고관은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이다.
기록은 서울과 함께 부산에서도 커피 문화가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기록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한국의 커피 문화에 부산을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커피유통의 관문이 부산이라는 점이다.
’커피 바다, 부산’은 민건호가 1890년대 서울의 지인이나 권력자들에게 연말 선물로 커피를 보내고 있었다는 내용을 해은일록에서 찾았다. 당시만 해도 커피는 개항장에서 정기적이고 통상적인 무역 물품으로 입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건호는 감리서 서기관이라는 업무상 위치 덕에 커피를 구할 수 있었고 곳곳에 커피를 보냈다.
“통영 영예(營隷) 김순기(金順己)가 ‘서울로 보낼 물종(物 種) 22포를 윤선으로 수령해 들이는 일’로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 편에 독판대인(督辦大人)께 올리는 편지와 연대(烟臺) 10개, 매동(梅洞) 이참판장(吏參判丈)께 올리는 편지, 사동(社洞) 엄판 서(嚴判書) 답서와 갑비(甲非) 3갑(匣), 정방판(鄭幇辦) 답서와 갑비 2 갑…”(‘해은일록’ 권2 1890.12.8)
‘커피 바다, 부산’은 이 기록에 대해 “통영의 수군통제사가 서울의 고위관료들에게 연말 선물로 보낼 선 물 22종을 민건호에게 부탁했음을 의미한다. 서울에 있는 고위관료에게 보내는 선물 목록에 커피가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비 2갑이 커피다.
커피를 받는 사람들의 면모도 눈길을 끈다. 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정부 고위관료였다.
이후 커피는 조선 정부나 고위 관료들의 공식 활동에도 나타나면서 커피문화가 확산됐고 각국 외교관이나 외국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거나 커피용품을 하사하기 시작했다.
‘커피 바다, 부산’은 앞서 비공식 루트로 들어오던 커피가 공식적인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커피가 유통되면서 서울 못지 않게 부산에서도 커피하우스(또는 카페)가 일상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1930년대 커피의 대중화로 우리식 커피하우스인 다방도 등장했다.
특히 해방 직후부터 60년대까지 눈에 띌 정도로 커피하우스와 다방이 급증한 지역이 부산이다.
부산의 다방 문화를 이끈 곳은 부산 중구 광복동이다. 광복동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형성된 거리다. ‘긴길’이라는 뜻을 가진 장수통이라 불리던 이 곳은 1945년 광복을 기념해 광복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부산에 커피하우스와 다방이 성행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전국의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고 피란민들 중엔 문화계 인사와 지식인들도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다방업계가 확장됐다.
대표적인 곳이 밀다원(密茶苑)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광복동 2가에 있던 밀다원을 “6·25 전쟁기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소재의 다방”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밀다원을 비롯해 주변 광복동엔 금강 다방, 스타, 르네상스, 야자수 등의 다방이 있었고 이곳은 문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됐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허무를 술로 달래던 한국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밀다원에는 김동리를 비롯 황순원 조연현 박인환 등 당대 문인들이 상주했다.
“부산 문단의 중심처인 이 다방은 당시 갈 곳 없는 문인들의 안식처였고, 찾기 힘든 동료들의 연락처였으며, 일할 곳 없는 작가들의 사무실이었으며, 심심찮게 시화전도 열리는 전시장이기도 했다. 이들은 여기서 원고를 썼고 약간의 고료가 생기면 차나 가락국수를 시켜 먹고 혹은 선창가의 대폿집에 들어가 ‘피란살이의 시름과 허탈·자학·울분’을 동동주에 띄우며 ‘예술 대회[유행가 부르기]’를 열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밀다원에 있던 문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다.
밀다원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김동리가 1955년에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 ‘밀다원 시대’의 배경이 바로 이 다방이다.
밀다원과 인근 다방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천재화가 이중섭 등 화가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임시수도기념관에 따르면 부산으로 피란 온 통영 출신의 추상화가 전혁림은1952년 밀다원에서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을 때 같은 지역 출신의 시인 유치환이 ‘혁림(爀林)의 예술(藝術)’이란 제목의 글을 써 개인전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지난 2015년 부경근대사료연구소는 밀다원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1950년대 광복동 거리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은 군용 지프 옆에 선 미군 병사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의 모습 뒤로 작게 보이는 간판에 '다방밀다원(茶房蜜茶苑)'이란 글자가 쓰여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이 사진을 근거로 '밀다원'의 위치가 옛 로얄호텔 맞은편 이니스프리 남포 2호점 자리에 있었다고 확인했다.
물론 부산에서 커피하우스가 급증한 이유가 한국전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커피 바다, 부산’은 당시 항구도시였던 부산이 다른 지역보다 커피 입수하는 데 수월했을 거라 봤다.
부산의 외국문화에 대한 개방성도 커피 문화 확산에 한몫했다. 때로 왜색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부산은 외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자기화해서 오랜 시간 즐기는 개방적 문화가 있었다.
‘커피 바다, 부산’은 “전쟁 중에도 커피를 즐기는 모습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부산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도 한국전쟁 당시 위로와 소통의 공간이 됐던 다방의 역할에 주목했다.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에서 ‘다방 전성시대(포스터)’를 주제로 당시 부산의 다방을 들여다본다.
전시는 ‘문학-밀다원’, ‘음악-문화장다방’, ‘미술-르넷쌍스다방’ 등 3개 주제로 나눠 한국전쟁기 부산의 다방에서 전개된 문학·음악·미술 활동 및 문화공간으로서의 다방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광복동에서 시작한 다방거리는 다방문화에서 커피숍 카페 문화로 변화하던 1970년대 서면으로 이동했다. 서면의 카페 문화를 이끈 건 마리포사다.
1980년대엔 부산의 커피 문화를 이끌면서 직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잘 됐다. 그러면서 이 시절 부산 사람들에게 일상의 용어도 생겨났다.
“마리포사 앞에서 만나자.”
휴대 전화나 무선호출기가 없던 시절, 부산의 대표적 약속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마리포사 앞’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약속 장소를 넘어섰다. 서면 일대에 카페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광복동에 이어 카페 거리를 조성했다. 현재 마리포사가 있던 곳의 도로명도 마리포사 길이 됐다.
지금도 부산 곳곳엔 꼭 가야 할 커피 거리, 카페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2017년 뉴욕타임즈는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중 하나로 전포카페거리를 선정했다. 폐조선소와 빈 창고가 있던 영도는 커피섬이 됐고 기장군도 해안을 따라 카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에서 부산은 커피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 ‘업종밀집도 변화’를 보면 부산의 카페는 2021년 현재 7133개다. 5년 전인 2016년 4109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1.7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국세청이 지난 5월 발표한 주요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부산에선 최근 5년간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주요 생활업종 중 커피숍이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 커피숍은 5793개로 2018년 2월 2364개에서 145% 급증했다. 특히 서면이 위치한 부산진구는 790개로 가장 많았다. 5년 전에는 350개였다.
그리고 커피 도시의 내공을 키운 부산은 이제 글로벌 커피 도시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커피 문화가 집약된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부산항을 통해 국내 커피 원두의 약 93% 이상이 수입되는 커피 물류 거점인 강점도 제몫을 하고 있다.
국내 최초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우승자를 배출할 만큼 곳곳에선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 문을 열고 있다.
커피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터리 커피숍, 에스프레소 바는 물론 커피 커핑(Coffee Cupping)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커피 커핑은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걸 말한다.
전망과 경치는 부산 카페의 또 다른 힘이다. 카페가 자리한 창틀은 프레임이 돼 다양한 풍경을 담는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나오다가도 푸른 산이 걸리며 고층 건물이 나오다가도 산복도로에 자리한 야트막한 가옥들이 보인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카페, 고층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색다른 커피 이야기를 만든다.
대용량 커피 문화를 만든 곳도 부산이다.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구가 된 브랜드도 여럿이다.
컴포즈 더벤티 더리터 텐퍼센트 등은 값은 저렴하고 양은 많지만, 커피의 기본인 맛 만큼은 철저하게 지킨다. 컴포즈는 자체 로스팅 공장에서 엄격하게 생두를 선별한 최상의 원두로 커피맛을 내고 더벤티는 원두 산지에 맞는 로스팅 방식을 선택해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고 있다.
더리터 역시 브라질 스페셜티 커피 협회(BSCA) 평가를 거쳐 기준 점수 이상을 받은 원두를 사용하고 %라는 이미지를 만든 텐퍼센트도 나라별 산지에서 엄선된 상위 10%의 원두를 쓰고 있다.
부산 지역 번호인 051일이 브랜드인 카페051, 푸른 바다와 상어를 결합한 블루샥, 개인매장으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확장하고 있는 하삼동커피도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니 궁금해졌다. 부산의 커피 맛과 부산의 커피하우스 또는 다방 또는 카페.
그래서 마셔보기로 했고 마셔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