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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Sep 05. 2023

빌바오와 말뫼, 기장과 영도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5)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항구도시 빌바오는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성장한 공업도시였다. 

 1970년대 철강과 조선업의 호황을 누리며 부자 도시가 됐지만, 1980년대 후반 주력산업이 급속히 침체한 데다 바스크 지방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 세력의 테러까지 더해지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빌바오 곳곳 공장은 방치되고 범죄율은 증가했다. 실업률은 276%까지 치솟았다. 환경도 파괴됐다. 빌바오를 관통하는 네르비온 강에는 제철소와 조선소 공장에서 무단 방류한 폐기물이 흘러 들었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말뫼는 1980년대 스웨덴의 조선산업을 이끌며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1990~1995년 사이 2만7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범죄도 들끓었다.

 말뫼를 대표하던 조선업체 코쿰스가 폐업하면서 도시의 상징이던 1500t급 초대형 크레인은 흉물이 됐다. 철거하고 싶어도 인수자가 없어 방치됐다. 철거와 운송비용만 대면 누구든 가져가도록 했다.


 단돈 ‘1달러’로 현대중공업에 팔린 코쿰스 크레인은 2002년 해체됐다. 해체되던 날 말뫼 시민들은 한 산업의 종말을 지켜보며 그날 흘린 눈물을 잊지 않기 위해 ‘말뫼의 눈물’이라 칭했다. 


 쇠퇴하던 두 회색도시는 2023년 현재 어떤 모습일까.


 빌바오는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가 됐고 말뫼는 스웨덴 3대 도시이자 IT산업 중심지가 됐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발품을 팔던 부산에서 빌바오와 말뫼를 만났다. 



“비튼 몸-비정형 구조”


 ‘건축’. 말뫼와 빌바오의 획기적인 변화를 관통하는 단어다. 


 ‘말뫼의 눈물’이 뿌려진 코쿰스 크레인의 자리에는 높이 190m, 54층 짜리 초대형 건물이 서 있다.

 건축을 의뢰한 사람은 1999년 당시 부동산개발조합인 HSB의 CEO였던 조니 오르베크였다. 오르베크 CEO는 스페인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외레순 다리 건축 공모전에 기여한 내용을 소개하는 브로셔에서 칼라트라바의 조각품을 봤다. 외레순 다리는 바다 건너 덴마크와 말뫼를 연결하는 교량 건설이다. 말뫼 재생을 위한 말뫼시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조각품 '트위스팅 토르소'(왼쪽)와 이를 스웨덴 말뫼에 건축물로 구현한 54층 높이 '터닝 토르소'출처 : HSB 홈페이지, 픽사베이

 칼라트라바가는 동물과 사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오르베크가 브로셔에서 본 칼라트라바가의 조각품은 회전 동작을 하는 인체를 묘사한 ‘트위스팅 토르소(Twisting Torso)’다.


 이 조각품을 건축으로 실현한 게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다. 5층으로 이뤄진 강철 육면체를 약 11˚씩 방향을 틀어가며 총 9개를 포갠 형식으로 건축했다. 사이 사이 층이 추가돼 지하 1층에서 최상층인 54층까지 90˚틀어져 있다.


 2005년 완공된 터닝 토르소는 외르순 다리와 함께 새로운 말외의 상징이 됐다.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여행자들 중엔 빌바오에 방문하는 이유가 구겐하임 미술관, 아니 미술관 건물이 될 정도가 됐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출처 :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미사여구가 필요없는 이 건물,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로 건축학계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받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했다. 그는 획일화된 건축을 탈피해 실험적 디자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 때도 평면보다 형태와 공간에 주목하며 비정형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당시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설계였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지인 ‘건설기술인’은 “실현 불가능할 거 같은 천재 건축가의 영감은 수십명의 구조 엔지니어와 3D 모델링 전문가들을 통해 도면이 됐다”며 “미술관의 복잡한 곡면은 카티아(CATIA)라는 3D프로그램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소재는 지형적 특성에 맞췄다. 습한 기후를 감안해 외부 금속 소재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다. 무게는 가벼운데 부식에도 강하니 시공에 유리했다.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만 극복한다면 말이다. 운 좋게도 당시 러시아에서 티타늄을 대량 생산하면서 가격이 떨어진 덕을 봤다. 0.38mm의 얇은 두께로 가공된 티타늄 패널 3만3000개는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였다. 석회암 유리와도 잘 어울렸다.


출처 : 픽사베이

 내부 공간도 독창적 외형을 따라갔다. 19개 전시실 중 10개의 사각 평면 전시실도 있지만, 9개 미술관은 각기 다른 형태로 비정형의 외관을 이어갔다.


 그렇게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물이 됐고 일반 대중은 물론 건축 비평가의 찬사까지 이끌어냈다. 


“건축… 담는 곳”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말뫼의 터닝 토르소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구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유명 건축가와 거액의 건축비도 의미를 부여했다. 


 대중에 회자되는 이유는 또 있다. 산업기반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떠난 곳에 지어진 이 건물들은 지역을, 지역 주민을 어떻게 끌어 안을까 고민했다. 

출처 : 픽사베이

 프랭크 게리는 미술관을 설계할 때 네르비온 강, 도시, 마을 주민, 외지인들과 연결하기 위해 고민했다. 미술관은 북쪽으로 네르비온 강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도로 철도와 인접했다. 자연스럽게 미술관은 도시로 진입하는 관문이 됐다.


 덕분에 연간 80만명이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찾았다. 개관 후 1년 만에 136만명이 찾았고 지금도 매년 130만명이 미술관을 방문한다.


 빌바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공장이 있던 자리엔 호텔과 문화시설이 생겼다. 도시의 소득원은 관광 수입이 됐고 관련 일자리도 생겨났다.


출처 : 픽사베이

 터닝 토르소도 도시의 이야기를 담았다. 말뫼시는 조선업에서 벗어나 포스트 산업화 시대에 걸맞게 환경도시, IT 등 산업공학 도시를 목표로 세웠다. 


 터닝 토르소의 독특한 형태는 미래지향적 도시를 표방하는 말뫼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터닝 토르소는 환경 도시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조명은 에너지 소비가 적고 수명도 긴 LED를 사용했다. 이를 위해 덴마크 조명회사 루이스 풀슨 조명(Louis Poulsen Lighting)이 터닝 토르소를 위해 직접 조명을 디자인했다.


 이야기가 있는 두 건축물은  ‘콘텐츠’도 담았다.


 빌바오가 미술관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문화 콘텐츠를 담아 사람을 끌어 모았다면, 말뫼의 터닝 토르소‘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매력으로 사람을 이끌었다. 터닝 토르소는 스웨덴은 물론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관광객들도 꼭 한 번은 오를 만한 곳이 됐다.


 건축물 하나가 도시 전체를 바꿨다고 말하는 건 ‘비약’일 수 있다. 그럼에도 건축가의 실험적인 건축물은 지역을 품고 이야기를 담으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기장-영도, 커피를 담은 건축물”


 한적한 어촌 마을, 조선업 침체로 쇠락한 부산의 지역을 바꾼 것도 건축물이다. 그런데 그냥 건축물이 아니다. ‘커피’를 담은 건축물이다.


 기장군은 면적과 인구수를 보면 재미난 곳이다.

 전체 면적 770.17k㎡의 부산에서 16개 자치구 중 가장 넓은 면적(218.3k㎡)을 갖고 있는데, 인구수는 2023년 7월 현재 뒤에서 일곱번 째로 적다. 17만9800여명이다. 그나마 정관신도시를 중심으로 학교와 아파트가 생기고 동해선 복선전철까지 뚫리면서 기장의 인구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구수는 적다.


 그런데 고요하던 임랑 해변에 세워진 한 건물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 건물은 2016년 12월 ‘웨이브온’이란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다.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였다. 

웨이브온에 가기 위해 동해선 복선전철 '월내역'에 내리면 작은 어촌마을이 보인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구 17만여명의 지역에 연간 90만명의 외지인이 찾았다. 해당 군청이 관광객 수용 방안을 고민할 정도였다.


 수치로도 나타났다. 2020년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내비로 본 전국 맛집에 웨이브온이 3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1위는 전국 군산의 이성당 본관, 2위는 인천 강화의 조양방직이었다.


 이후 기장엔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한 카페들이 문을 열었다.


 영도 역시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꼽힐 수 있었던 데는 커피를 담은 건축물이 한 몫했다. 도시재생에 나서기 전까지만해도 영도는 한국 조선 산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위기를 맞고 있었다. 


 영도는 1970년대 초반까지 대표적 조선 산업 기지였다. 잘 나가던 영도의 조선업은 대기업들이 울산 거제 등에 터를 잡아 조선업에 나서면서 침체됐고 사람들도 빠져나갔다.  지난 2021년 정부가 지정한 전국 89개 소멸위기 지방자치단체엔 영도구가 포함됐다. 2023년 1월 기준 1107곳의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피아크 너머 슬레이트 패널 지붕의 선박과 조선업 관련 공장 지붕이 보인다

 영도가 달라진 요인 중 하나는 카페다. 그 중심에 있는 곳이 피아크(P.ARK)다.


 부산 선박수리 회사인 제일 SR그룹이 550억원을 투자해 만든 피아크는 문화복합공간을 뜻하는 Platform of ARK creators의 약자다. 3000평 부지에 커다란 선박을 형상화해 세워진 피아크는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업사이클링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도 영도의 카페들이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인 전주연 바리스타를 배출한 모모스는 영도의 물류 창고를 커피숍으로 개조해 모모스 영도를 운영하고 있다. 1987년 방울을 만들던 청용금속은 신기산업으로 이름을 바꿔 한켠에 카페를 운영한 뒤 영도의 카페 문화를 이끌었다.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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