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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Sep 08. 2023

커피-건축, 다른 듯 같은… 그래서 물었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6)

부산에서 커피 마시겠다며 발품 팔았더니 만난 게 커피 향 나는 건축이었다.  


 그리고 건축과 커피. 다른 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고민이 시작됐다. 이게 맞는 생각인지에 대한 고민. 


 부산의 커피, 부산의 카페 이야기를 쓰기 전 이과와 문과만큼 괴리가 있어 보이는 건축과 커피의 다른 듯 닮은 점부터 찾기로 했다. 건축가에게 질문도 던졌다.




“이런 닮은꼴”


 커피와 커피하우스 역사를 이야기하며 건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건축은 공학적, 기술적 접근과 함께 예술과 인문 사회 역사 철학은 물론 경영과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의 총합이다. 


 세계 최초 커피하우스인 오스만 제국의 키바 한(Kiva Han)부터 부산 광복동 밀다원까지 커피를 매개로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도 철학과 정치, 경제와 예술을 이야기했다. 


 묘하게 맞닿는 부분이었다.


“저런 닮은꼴”


 커피와 건축이 구조적인 면에서 얼추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건축 이야기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리벨럽’은 “커피와 건축이 똑같다”고 단언한다.



출처 : 유튜브 '리벨럽'

 리벨럽은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가 기본인 에스프레소에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내듯, 건축도 베이스가 되는 구조체에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띤다고 설명한다. 


 가령 에스프레소는 우유를 넣느냐, 물을 더하냐에 따라 달라지고 우유의 스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건축 역시 구조체에 벽돌을 올리냐 타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되고 창문의 수와 크기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닮은꼴, 동의하십니까”


 그래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궁금한 거 못 참는 성격탓도 있지만, 주관적 의견을 일반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며 ‘원빈 건물’’고소영 건물’ 등 유명인의 건물을 지었다는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건축가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대표와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 그리고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의 운영자이자 스타 건축가인 유현준 홍대 교수.


건축가에게 물은 커피와 건축의 닮은꼴. 질문을 건넨 건축가들의 네이버 프로필을 '가나다' 순으로 올렸다. 출처 : 네이버

 

 이들 건축가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 고백부터 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고 건축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쪽으로 시선이 쏠려 억지춘향식 연결을 했을 수 있다는 고백.

 

 그런 고백에 건축가들은 놀랍게도 긍정의 호응을 해 줬다. ‘커피와 건축이 닮은 거 아니냐’는 의견에 말이다. 덕분에 질문은 쉬워졌고 답변은 준비하듯 나왔다.


-커피 좋아하세요?

 커피에 대한 질문이니 건축가들의 커피 취향이 궁금했다. 사무실에 가면 차를 내어주던 승효상 대표와 유현준 교수, 지인들과 와인을 즐기며 이야기 나누는 게 좋다는 곽희수 대표. 

 예상과 다른 답이 나왔다. 모두 커피를 좋아했고 취향도 제각각이었다. 


 “커피 좋아하죠. 그중에서도 에스프레소.”

 

 승효상 대표의 말이다. 곽희수 대표는 다른 의미에서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 좋아해요. 캡슐로도 마시고 내려서도 마시고. 그런데 저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 맛 잘 몰라요. 저에게 커피는 순간을 위한 매개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마흔이 넘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음을 알린 유현준 교수는 최근 커피 취향이 달라졌음을 알려줬다. 


 “요즘은 디카페인 안 마셔요. (카페인이 든 커피를) 연하게 해서 마셔요.”


 그러면서 전제를 달았다. “오후 3시 전에만 마신다”는.


-커피와 건축이 맞닿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사실 정답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건축가들이 내놓은 답은 자신의 철학과 시선에 맞춰 다채로웠다.


 승효상 대표는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해 “문화를 마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혼자건, 여럿이건 커피를 마시는 건 그 풍경 자체만으로 문화가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와 건축의 닮은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건축은 그 자체가 문화 풍경”.


 그러면서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뮤지엄(CAFÉ MUSEUM)을 소개했다. 카페뮤지엄은 19세기 후반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 이후 리모델링하며 그때 모습은 사라졌지만…


 “로스는 공간을 계획(Space Planning)하면서 모더니즘을 촉발시킨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그동안 건축의 중심은 형태나 장식이었는데, 그는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했다. 카페뮤지엄에 가면 커피를 위한 공간을 만들려고 한 로스의 건축 양식을 만날 수 있다. 천정이 둥그렇기 때문에 앉아 있다 보면 자기만의 공간이라 느끼게 된다.”


출처 : 카페뮤지엄(CAFÉ MUSEUM) 홈페이지

 이런 로스의 카페뮤지엄 건축을 두고 당시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실용적이고 모던한 인테리어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색하는 이들도 있었다. 카페뮤지엄도 홈페이지에 당시 로스의 건축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캔들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트렌디한 바’, ‘가지고 싶은 장소’가 되면서 예술가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애정 어린 조롱을 섞어 ‘카페 니힐리즘(카페 허무주의, Café Nihilism)’이라 부르기도 했다.”

  바로 그 실용적이며 모던한 카페뮤지엄을 찾은 손님들 중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도 있었다.


 유현준 교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오스트리아 빈의 커피하우스를 이야기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이 사회적 기능을 했다며 사례로 든 게 빈의 커피하우스다.


 “빈이 도시화되면서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골에선 인간관계가 친족 중심이라 만남을 가질 때 굳이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도시로 오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관심사가 맞거나 이익에 따라 사람을 만나야 하니 커피하우스가 필요해진 시대가 됐다.”


 도시에서 커피하우스는 만남의 장소였고 커피는 낯선 이와의 대화에 어색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문득 한국에서 커피와 카페 문화가 활성화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질문이 추가됐다. “광장 문화인 유럽은 커피하우스 문화가 자연스럽겠지만 우리나라는 담장 안 마당 문화라 그런 커피하우스가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카페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현준 교수가 내놓은 답은 ‘커피 향’이다. 


 “향은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냄새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장처럼 같은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게 마련이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다도와 유사해 한국 사람에게 중요하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분쇄해 내리는 모든 과정이 제례 의식을 하듯 진행된다. 복잡한 도시에서 카페는 제례 의식을 하는 교회 성당 사찰 등 사원 같은 평안함을 주기도 한다.”


 곽희수 대표는 건축가의 시선에서 카페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꺼내든 단어가 ‘환대’다.


 “사실 커피는 어디서나 마셔도 된다. 그럼에도 카페라는 공간을 찾는 건 단순히 ‘음료’를 나눠마시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커피를 통해 환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세 명의 건축가는 커피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출처 : 로와맨션 인스타

 승효상 대표는 tvn ‘유퀴즈온더블록’에서 소개해 입길에 오른 건축비 7000만원의 ‘하양무학로교회’ 맞은편에 다방 건물도 지었다.


 이 교회 신자이자 다방 주인은 “교회 앞에 건물 짓고 살면서 받은 임대료로 헌금하면 행복할 거 같았다. 그래서 건축을 의뢰했더니 승효상 대표는 교회보다 크면 안 되니 단층짜리 다방을 만들라고 역제안했다"고 전했다.


 공간엔 돈 안 되는 다방과 갤러리, 책방이 자리했지만 마을 주민은 물론 건축을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쉼을 얻어가는 공간이 됐다. 다방 이름도, 다방 앞에 붙인 현판도 승효상 대표가 직접 짓고 써 줬다. 다방의 이름은 ‘물볕’이다.


 부산에서 커피와 건축의 연결고리를 알려준 건 곽희수 대표와 유현준 교수가 지은 카페 ‘웨이브온’과 ‘로와맨션’이다.

 

 건축의 공공성을 고민해 온 곽희수 대표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모두가 놀다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평상 마당 등 한옥의 요소를 재해석해 카페를 찾는 이들이 다른 시선으로 풍경을 보는 법을 알려줬다.

 유현준 교수는 핵가족화 시대에 카페의 역할을 고민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응접실 공간을 카페가 대신한다고 봤다.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커피 향 나는 카페는 기장을 부산의 카페 중심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 다른 듯 닮은 커피와 건축이 만나 만들어낸 시너지였다.


여담이지만, 세 명의 건축가와 커피와 건축을 이야기하며 '언젠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메뉴는 이미 정해졌다. 커피 그 자체인 에스프레소와 와인잔에 어울리는 콜드브루, 그리고 오후 3시 전에 마시는 연한 커피.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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