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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Aug 14. 2023

한국 가비 역사, 커피 대중화와 함께 열리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2)

‘커피값이 점심값 1.5배’ ‘점심 한 끼 보다 비싼 커피’.  

 커피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커피를 내놓기 시작한 2014년, 그 시절 기사는 비싼 커피 가격에 주목했다.  


 “점심은 4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떼우고 후식으로 1만원짜리 커피 마신다”며 비싼 커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프리미엄 커피가 본격화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가격은 일상의 커피 가격이 됐다. 




커피의 대중화 그리고 한국의 가비


 한국의 커피 역사는 짧지만, 대중화된 시간을 굳이 따진다면 한국이나 유럽, 미국은 큰 차이가 없다.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유럽에선 20세기 들어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가 발명되고 1930년 경 프렌치 프레스와 에스프레소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모카포트까지 나왔다. 모든 사람이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라마다 커피는 커피 이상의 의미가 됐다. 모카포트는 이탈리아의 유별난 커피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과 같다.


모카포트. 픽사베이

 2012년 개봉한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Caesar Must Die)’는 교도소 안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통해 교도소 교화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출연자들이 실제 수감자란 사실도 놀랍지만, 재소자를 위해 수감실에 모카포트를 비치한 건 다른 의미에서 놀라움을 준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커피는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임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영화 속 모카포트다. 

 실제 이탈리아는 독방에 들어가는 재소자에게선 모카포트를 뺏는다고 한다.


 에스프레소만큼 커피의 대명사가 된 게 아메리카노다. 에스프레소 원액에 물을 더해 아라비카 원두 본연의 맛을 볼 수 있는 게 아메리카노지만, 그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커피 인문학자로 유명한 이길상은 그의 책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를 통해 아메리카노가 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의 참전이 본격화되면서 미 정부는 커피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 보고 커피 배급제를 선택했다. 기호품인 커피를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배급하는 동시에 물량이 부족해진 커피를 군대에 우선 배정하기 위한 복안이었다.


 미국 국민은 1942년 11월 배급제가 시작한 뒤 커피의 양이 제한되자 더 많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섞어 묽게 마셨다. 그리고 1943년 7월 배급제 종료 후에도 ‘묽은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계속 유지됐다. 

'뜨아'와 '아아(아래)'. 픽사베이

 ‘묽은 커피’ 문화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세계로 확산됐다. 패전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미국이 군대를 보낼 때 ‘묽은 커피’ 문화도 함께 갔다. 이탈리아 바리스타들은 에스프레소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 군인을 위해 뜨거운 물을 함께 제공했고, 바리스타들은 이 커피를 ‘카페 아메리카노’라 불렀다.


1960년대엔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생겨났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에스프레소를 이용한 베리에이션 커피를 만들었고 이 같은 카페 문화는 전 세계에 퍼졌다.


 ‘묽은 커피’에 아메리카노라는 고유명사를 부여한 건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다. 작명의 주인공은 텀블러 세일즈맨 출신으로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한 하워드 슐츠가 작명의 주인공이다. 지금도 스타벅스 메뉴판 맨 위에 있는 아메리카노는 부동의 판매 1위 음료다.


 지금은 대중의 커피 선호도가 다양해지면서 블랜드 커피에 생크림 곡물 술 과일 등을 추가한 베리에이션 커피는 자가발전하고 있고 커피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생두의 원산지와 농장 산미에 따라 블랜딩 로스팅 그라인딩을 달리하며 다양한 맛도 만들어 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가 대중화되던 그때 한국도 커피 문화가 확산되고 있었다.



“한국의 ‘가비’ 사랑”

 

한국에 커피 문화가 들어온 건 구한말이다. 일반적으로 커피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은 고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기록상 그 이전부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국에 부임한 조선 천주교회 교구장인 프랑스의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 주교가 철종 11년인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커피를 주문한 기록을 근거로 배르뇌 주교와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에 조선으로 들어올 선교사 편에 이 물품들을 보내주십시오. 적포도주나 백포도주 50병들이 2상자, 코냑 4다스, 커피 40리브르, 흑설탕 100리브르.”


 1884년 당시 커피가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미국 외교관이자 천문관인 퍼시벌 로웰이 조선을 방문한 경험을 모아 1885년 출간한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다. 


  “1884년 1월 어느 추운날 조선 고관의 초청으로 한강변 별장으로 가 누대에 올라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석식후 커피를 마셨다.”(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中)


고종황제 시대의 커피도구와 핸드드립 과정을 고증한 영화 '가비'의 한 장면.

 의료 선교사이자 고종의 어의였던 호러스 알렌도 자신의 일기에 “궁중에 드나들 때면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적었다.


 알렌의 일기에서도 언급됐지만, 우리나라 커피 역사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고종 황제다. 


 고종이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기록은 없지만, 1896년 아관파천해 커피를 접했다는 기록이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이다.  


 당시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살해 위협을 느껴 당시 아라사였던 러시아의 공관으로 피신했다. 

 여기서 웨베르 러시아 공사의 권유로 커피를 처음 접했다는 내용도 있지만, 독살의 위험을 피해 외부에서 음식을 가져와 먹을 때 이를 조달해 준 앙투아네트 손탁을 통해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고종황제 시대 그라인더, 드립 주전자 등 커피도구를 고증한 영화 '가비'의 한 장면.

손탁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하던 독일 국적의 프랑스인으로 훗날 음식을 조달해준 공으로 고종 황제에게 땅을 하사받았다. 이 땅엔 후에 손탁 호텔이 세워졌다.


 고종이 한국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커피 애호가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1898년 고종 황제 독살 음모 사건 때 등장한 것도 커피였다. 고종이 커피 마니아란 걸 노리고 커피에 독을 넣었는데, 고종은 마시자 마자 ‘맛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뱉을 정도로 커피 맛을 알았다. 

 반대로 커피 맛을 모르는 궁녀와 세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셨다. 순종인 세자는 이로 인해 치아가 18개나 나가고 의치를 했다고 한다.


 고종은 궁중의 다례의식에서도 '커피'를 선보였다. 1987년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엔 경치가 좋은 곳에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亭子) ‘정관헌’을 지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는 기록들도 있다. 영화 '가비'는 커피를 사랑한 고종을 통해 지난한 구한말 역사를 보여준다.


 이후 1900년대 들어 서울 종로, 명동, 충무로 등에 외국인들이 경영하는 다방이 생기며 커피의 대중화엔 속도가 붙었다. 지금도 한국 사람들은 커피 문화가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했다는 점에 공감하며 커피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출처 :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의 커피 사랑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5월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377잔’이다. 그리고 커피 시장 규모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9.3%씩 증가했다는 부제를 달았다. 

 이는 전 세계 평균 132잔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수준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 관리소는 스타벅스의 후원을 받아 문화계 명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를 10여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2019년 상반기 소설가 김훈이 강연자로 나선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행사 현장. 출처 : 문화재청



*메인 사진 출처 : 영화 '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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