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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Aug 11. 2023

컨셉없는 여행에 컨셉이 생기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1)




“커피 맛이 좀 싱거워서. 주문을 확인해 줄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에서 이런 실수를 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주문한 음료는 리스트레토로 만든 라떼였는데, 늘 먹던 맛이 아니었다.

픽사베이

 이 라떼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 "에스프레소로 만든 라떼의 맛은 좀 심심하다"는 개인적 의견을 들은 한 바리스타로부터 추천받은 게 리스트레토로 만든 라떼였다.


 리스트레토(Ristretto)는 보다  농축된 에스프레소 커피의 숏샷(short shot. 더블 바스켓에서 20ml)이다. 숏샷과 동일한 양의 분쇄 커피로 만들어지지만, 이보다 물은 절반만 사용해 더 미세한 분쇄(20~30초)로 추출된다. 


  진한 커피와 부드러운 우유의 조화를 경험한 뒤 리스트레토로 만든 라떼를 놓치지 않았다.

 

 손님의 말에 브랜드 매장 직원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싼 가격에도 맛을 위해 리스트레토 라떼를 선택한 손님의 심리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주문이 제대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다시 제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미 만든 음료가 아까워 “괜찮다”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잠시 뒤 그 직원이 다가왔다. 


픽사베이


 직원은 사과의 말과 함께 무료 쿠폰을 건네며 “추출 기압과 물의 양 등을 셋팅해 놓는데 기계 고장인지 에스프레소로 셋팅돼 있었다”며 맛이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한사코 쿠폰을 거절하니 놓칠 뻔한 실수를 바로잡아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며 기어코 건넸다.

 나름 ‘커피 부심’에 자체 훈장이 달리는 순간이었다.




“부산, 커피부심을 되살리다


 고백하건데, 부산 한 달 살이를 작정할 때만 해도 부산에서 커피를 찾아다닐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한 달 살이의 목표가 워낙 단순해서다. 오랜 사회 생활을 하며 지치다 못해 넉 다운된 정신과 몸을 추스르려고 했으니 컨셉이고 뭐고 없었다

   

 더구나 여행객들에게 커피하면 강릉이 떠오르지 부산과는 연결하지 않았다-부산 분들에게는 뒤늦게 사과의 말씀 드린다.


 부산에서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놀러 다니느라 이동할 때면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낯선 이름의 커피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유독 시선을 잡았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구가 된 커피 브랜드가 많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를 덧붙였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와 그를 배출한 카페도 부산에 있다는 말이었다. 바리스타 학원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문득 지난해 10월, 일 때문에 만난 한 건축가의 말이 떠올랐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 지었다는 부산의 한 카페 건물을 소개했다. 카페 건물은 건축 당시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 기장에 위치했다. 건축가는 건물이 세워지고 카페가 들어선 뒤 마을이 달라졌다고 했다. 인구 16만명인 기장군에 카페는 연간 90만명의 외부인을 유입시키는 장소가 됐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더니 건축가는 “부산에서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지 버릇 개 못 준다’는 선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건축가가 제시한 묵은 숙제가 떠오르더니 컨셉 없는 여행엔 컨셉이 생겼다.


 어느새 카페를 찾아 다니며 커피를 마시고 커피 박람회 현장을 찾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왕 하는 김에 바리스타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커피란…


 커피 전문가도 아니면서 커피 역사를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면서 펼쳐든 교재의 가장 첫 페이지부터 만나는 게 커피 역사여서다. 소개하는 내용도 교재에 나온 것에 인터넷 내용을 더했다.


 굳이 커피를 설명해 보자면, 그 유래는 이탈리아 언어학자인 파우스투스 나이론이 1671년 출판한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커피나무에 달린 커피 열매. 게티이미지

 6~7세기 경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목동은 빨간 열매를 먹은 뒤 신이 난 듯 뛰는 염소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도 그 열매를 먹어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솟는 기분이 들었다. 


 목동은 열매의 존재를 이슬람 사원의 사제들에게 알렸고 사제들도 그 열매를 갈아 물에 녹여 마셨다. 

 목동의 말대로 정신이 맑아지고 잠을 좇는 효과를 경험했고 철야기도를 할 때 이 열매를 활용했다.


 이후 커피는 기호 식품이 아닌 각성제 진통제의 형태로 에티오피아의 주요 교역품이 됐다.


 커피라는 이름은 에티오피아 지명의 카파(kaffa)와 고대 아랍어에서 유래된 카와(Qahwah)에서 가져왔다. 커피나무의 시작은 에티오피아였지만 대중화된 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권역에서다. 


 아라비아 남단의 예멘은 최초로 대규모 커피 경작을 해 모카(Mocha)항을 중심으로 이집트 이란 이라크 등 아랍권역에 공급했다. 커피 수출은 본격화됐지만, 커피의 희소가치를 알고 있던 예멘은 커피 반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씨앗을 끓는 물에 담궈 발아력을 파괴해 타지역에서 재배되는 걸 막는가 하면 외부인이 커피 농장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했다. 


튀르키예식 커피 추출법 제즈베. 픽사베이

 그 사이 세계 최초 커피 하우스인 키바 한(Kiva Han)이 문을 열었다. 1473년 현재 튀르키예로 불리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다. 


 당시 커피 추출법은 크레마가 매력인 에스프레소가 아니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네덜란드인으로부터 커피 나무를 선물받아 파리 식물원에서 재배하면서 1714년부터 시작된 필터 커피도 아니었다.


 500년 넘게 사랑받아온 커피 추출법, 유네스코도 보존할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로 튀르키예식 추출법 제즈베(Cezve)로 만든 커피였다.


 철저히 관리된 커피가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된 건 1600년경 이슬람 승려 바바 부단(Baba Budan)이 커피 씨앗을 몰래 훔쳐 인도 마이소어(Mysore) 지역에 심어 재배하면서다. 


 유럽에 커피가 소개된 건 이탈리아가 콘시탄티노플을 장악하면서 베네치아 상인들이 오스만 제국과 소통하면서다. 1615년 경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럽에 소개한 문화가 커피였다.


 와중에 네덜란드인 피터 반 덴 브루케는 모카에서 커피 나무를 훔쳐 식물원에서 재배했다. 이후 실론(지금의 스리랑카)과 자국 식민지인 자바지역에서 경작했다.

 처음부터 유럽 사람들이 커피를 받아들인 건 아니다. 베네치아에 커피가 소개됐을 당시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이슬람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라는 이유로 커피를 배척했다. 


 그런 커피가 기호음료로 자리잡으면서 믿거나 말거나 소문도 퍼졌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며 커피에 세례를 줬다는 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커피에 대한 유럽인의 거부감은 빗장 풀리듯 풀렸고 커피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엔 1645년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인 플로리안 카페가 세워졌다. 이 카페는 얘기하면 입 아플 유명 관광지가 됐다.


 영국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엔젤(Angel, 1650년)이고  런던엔 파스콰 로제(Pasque Rosee)란 이름의 커피 하우스가 1652년 문을 열었다. 


 프랑스에 카페를 처음 세운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이다. 셰프였던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는 1686년 파리에 젤라또를 판매하는 카페를 열면서 파리 최초의 커피 하우스 프로코프(Cafe de Procope)의 역사도 시작됐다.

 미국엔 1691년 보스턴에서 거터리지 커피 하우스(Gutteridge coffee house)가 문을 열었다.


 유럽과 미국으로 커피 하우스가 열리고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역사도 만들어졌다. 

 세계적 보험회사인 로이드(Lloyd)는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가 런던에 연 커피 하우스에서 비롯됐고 우리에겐 ‘음악의 아버지’로 유명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커피에 대한 송시 ‘커피 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커피는 오랜 시간을 거쳐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에프스레스도 그 중 하나다.  이탈리아어로 ‘빠른’에서 기인했다는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 원두 가루에 약 88~95도 사이의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내는 커피다.


 밀라노의 루이지 베체라는 종업원들의 휴식 시간을 줄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이탈리아의 숙련된 바리스타처럼 완벽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만들어 제공하고 싶다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후 안젤로 모리온도가 1884년 만든 커피 추출의 원형을 개량해 1901년 새로운 증기 압력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 특허를 등록했다. 30ml의 작은 한 잔이 선사하는 기쁨은 에스프레소에 담겨 지금도 커피 애호가들에게 건네지고 있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특허 출원한 그 해에 일본계 미국인 약사 사토리 카토는 최초의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했고 독일 메리트 벤츠는 최초의 드립식 커피 기구도 개발했다.


 1938년 브라질 당국의 과잉 재고 처리 요청에 따라 네슬레사는 동결 건조 방식을 개발해 피스톤 펌프식 에스프레소 머신도 개발했다.


픽사베이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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