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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Aug 08. 2023

[걷다 보니 ‘발품 컨셉’]

#2. 샹그리아 제조법을 아십니까.

론다와 세비야에서 쌓은 추억을 떠올리기 전까지… 그라나다에서 발생한 작은 해프닝은 내내 여행을 불편하게 했다. 


 무엇보다 해프닝 직후였던 론다에서 그랬다. 예기치 않게 발생한 일정 덕에 늘어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시에 론다와 세비야에서 보겠노라 계획한 것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꾸역 꾸역 걷고 또 걸었다. 

 스페인의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라는 론다 경기장(Plaza de Toros de Ronda), 120m 엘 타호 협곡에 놓인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마을까지 얼마나 유명하기에 여행 계획에 넣었을까를 곱씹으며 놓치지 않고 걸었다.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관광지를 둘러보면서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고백하건데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기억이 떠오르는 장소도 있었다.


걸음은 석양이 마을을 떠받치는 엘 타호 협곡에 붉은 물을 들일 때야 비로소 멈췄다. 




“샹그리아 제조법을 배우다” 


 걸음은 멈췄지만, 숙소에 들어와서도 심란한 마음은 계속됐다. 

 다시 나온 론다의 거리. 이미 관광객들마저 사라져 조금은 한적해진 골목에 차가운 푸른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빛을 따라가니 작은 식당 겸 바가 나왔다.


 형광불빛의 이 바는 따스한 할로겐 조명을 밝히는 보통의 바와 확실히 달랐다. 인테리어엔 신경 쓰지 않은 티가 그대로 드러냈다. 외려 감출 거 없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매력을 느꼈다. 

 

 이끌리듯 들어가니 다소 매서운 인상의 할아버지가 바 안에서 손님을 맞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단골인 작은 선술집, 아니 작은 바에서 여행객은 이질적으로 보였다. 서툰 영어로 주문을 마치니 주인장이 낯선 여행자를 위해 샹그리아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샹그리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여행자에게 주인장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요.”


 대답과 함께 경계심이 풀린 듯 주인장이 샹그리아 제조법을 상세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투명한 저그(Jug)에 얇게 저민 오렌지와 조각낸 사과를 넣더니 레드와인을 붓고 설탕을 넣은 뒤 물과 오렌지 베이스의 증류주를 더한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누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낮추고 한 마디 곁들였다.


 “요즘은 사이다도 조금 섞는다.”


 덕분에 한국에 와서도 그때 주인장의 제조비법에 맞춰 나만의 샹그리아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약간의 사이다와 함께.

 



“스페인에서 결혼식 하객이 되다


 세비야에선 알지도 못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추억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중세 고딕 양식을 보여 주는 세비야 대성당에서 말이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세비야의 여행 필수 코스인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다. 여행객이 들어가는 입구와는 다른 방향에 있는 또 다른 성당 입구 앞에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차림새가 눈길을 끌었다. 남성은 수트 차림이었고 여성은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모자로 장식했다. 


 유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니 자연스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오늘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나요.”


 무리들은 여행객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이들 중 젊은 여성이 답을 줬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이렇게 다들 왔어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렇게 차려입고 왔죠. 함께 결혼식 가실래요.”


 결혼식 초대도 놀라운데, 결혼식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 기사는 한 술 더 떴다. 

 “같이 사진 찍으세요.”


 초대에 응할 수 있었던 건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예견이라도 한 듯 드레스 코드 중 하나인 모자를 쓰고 있어서였다. 그들의 모자가 보여주는 화려함엔 한참 모자랐어도, 격식을 어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예고없이 초대된 결혼식은 카스티야의 군주 페르디난드 3세, 알폰소 10세와 페드로 1세가 묻힌 세비야 대성당의 왕실 예배당에서 열렸다. 20분이면 끝나는 한국의 결혼식과 달리 신랑 신부와 하객들은 경건하게 결혼 미사를 드렸다. 여행자 입장에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결혼 미사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놀랍게도 아쉬움은 그날 저녁 바로 해소됐다. 세비야에 이어 다음 여행지이자 스페인의 마지막 여행지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였다. 


 해질녘 마드리드 도심을 둘러보던 중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했다. 이미 미술관은 운영 시간이 끝나 불이 꺼져 있었다. 눈길이 간 건 프라도 뒷편 언덕진 곳에 자리한 성당-나중에 알고 보니 수도원-이었다. 낮에 봤다면 지나쳤을 정도로 아담했지만, 어둑해진 도심 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밝힌 덕에 놓치지 않았다.


 걸음을 옮겨 성당에 가니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세비야의 결혼식에 비해 규모도 작고 하객들의 차림새도 소박했지만, 결혼식의 엄중함과 경건함만은 다르지 않았다.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중에 만난 뜻밖의 풍경은 몇 시간 전 세비야에서 본 결혼식과 오버랩됐다.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하객임에도 마드리드의 결혼식엔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끝까지 참여했다. 하객들도 낯선 이의 방문을 관대하게 받아들였다.


 모든 게 한국의 결혼식과 달랐다. 신부의 드레스나 면사포를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식을 마치고 행진하면서 신부의 면사포가 벗겨졌을 때도 신랑이 바닥에서 주워 머리에 얹어 줬다. 성당 앞에서 하객들의 축복을 받는 신부의 드레스를 정리해 준 건 결혼 미사를 진행한 신부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덕 위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내려다 보는 이 아름다운 성당은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수도원이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 중 하나로 원래는 산 제로니모(San Jerónimo) 기사단이 관리했고 결혼식 장례식과 국가 행사 등이 이곳에서 열렸는데, 1906년 알폰소 13세도 이 곳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방치됐던 수도원은 이후 프라도 미술관에 통합됐다.




“부르즈칼리파 엠파이어스테이트 그리고 남산타워


 론다의 작은 바와 세비야 대성당에서 열린 결혼식 등 예상치 못한 추억은 발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다.


 만약 그라나다의 해프닝이 없었다면, 론다에선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숙소에서 빠른 취침에 들었을 테고 세비야에선 대성당을 둘러본 뒤 계획에 맞춰 다음 장소로 서둘러 이동했을 거다. 


 그랬다면 인터넷만 치면 줄줄이 나오는 샹그리아 제조법과는 다른 ‘작은 바의 주인이 알려준’이라는 특별한 비법이 담긴 샹그리아는 만들 수 없었을지 모른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화려한 모자와 수트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 결혼식에 참석할 이유도 없었을 듯 하다. 그리고 세비야와 론다는 스페인에서 여행한 장소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그라나다와 론다 세비야로 이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은 스스로에게 맞는 여행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나는 40년이 다 돼 가도록 서울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서울의 어디까지 가 봤나.” 


 간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는 게 답이었다.

 

 문득 서울의 5대 궁이 떠올랐다. 경복궁과 창경궁, 덕수궁은 어릴 적 학교 소풍이나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 갔다면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인 이유로 의무적으로 갔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 경희궁은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갔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도 새롭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한강유람선을 타고 남산타워에 오르는 사람은 외국인 관광객이거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


성 베드로 성당의 정상, 엠파이어 스테이트와 부르즈 할리파 올라가는 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꼭대기와 101타워 티켓.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남산타워는 멀리서 구경만 했는데 대만 타이페이의 101타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꼭대기엔 꼬박 꼬박 올라갔다.


 서울 토박이가 서울에 살면서도 가야할 모든 곳을 가지 못하는데 해외에선 고작 며칠 있으면서 모든 걸 보려는 건 욕심이란 생각에 미쳤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서울과 달리, 여행지는 두 번 다시 갈 수 없을 지 모르는 만큼 전제를 달리해야 한다는 반론.

 감당하기로 했다. 결국, 여행은 각자의 취향이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있는, 컨셉이 있는 여행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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