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다
하얗기도 한데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매번 씻고 나면 크림을 따로 챙겨 발라가며 가꾼 티도 제법 났다.
그런데 핏줄이 살벌하게 드러나더니 살 속에 파묻혀 사라진 뼈가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다. 터진 물집까지 어느새 굳은 살이 돼 자리 잡으니 제법 고생한 티도 난다.
매번 여행 일정을 마무리할 때쯤 되면 찍게 되는 사진 속 발이다. 사진으로 발 모습을 담은 건 ‘하나라도 더 보겠노라’며 열심히 여행지를 걸어 다닌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자 자기 만족에서 비롯됐다.
그러던 중… 여행지를 누비던 그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2012년 스페인에서 경험한 작은 해프닝 덕이다.
‘작다’고 전제했지만 해프닝이 일어난 장소만큼은 제법 스케일이 컸다. 스페인 남부 지역인 그라나다부터 론다 세비야까지 광폭으로 벌어졌다.
해프닝은 그라나다의 골목길 작은 바에서 시작됐다. 론다행 기차를 타기 전 샹그리아 한잔에 타파스를 곁들여 먹기 위해 들른 바였다.
기차가 론다에 도착할 즈음 약을 넣은 파우치(주머니)를 바로 그 작은 바에 두고 온 사실을 확인했다.
론다의 여행 안내소 직원이 대신해 바에서 받은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바의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약 주머니를 보자마자 골목에 나왔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는 설명과 함께 “주머니를 어떻게 받겠냐”고 물었다.
여행자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물건을 받을 주소지는 스페인 어디에도 없었다.
고작해야 알려줄 수 있는 건 앞으로 갈, 예약된 숙소 주소를 알려주는 것 뿐이었다. 변수를 안고 이동해야 하는 여행자에겐 다소 위험이 큰 선택지였다. 여행 안내소 직원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세운 계획은 이랬다. 다음 날 그라나다로 가서 약 주머니를 찾은 뒤 다음 여행지인 세비야로 바로 가는 것.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데 써야 할 발품을 물건 찾는데 쓰게 된 셈이다.
뜻밖의 해프닝은 세비야 여행에 고스란히 영향을 줬다. 세비야에서의 첫날 둘러볼 수 있는 반나절의 시간이 사라졌다. 주어진 시간은 세비야에서 맞는 둘째날 뿐이었다. 그것도 마드리드행 오후 6시 기차를 타기 전까지.
빠듯한 일정에 맞춰 관광지를 돌아다니려던 여행자의 계획은 헝클어지다 못해 꼬였다. 계획한 일정은 내려놓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가기로 했다. 머리 속에 남았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거라는는 자기 위안이 섞인 ‘기적의 논리’가 적용됐기에 가능했다.
세비야에 왔다면 꼭 가야 할 곳,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 양식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는 세비야 대성당에 가는 건 당연했다. 대성당 옆에 있었던 덕에 잊지 않고 이슬람 양식의 히랄다탑도 올랐다.
플라멩코의 열정을 만나기 위해 카사 데 라 메모리아도 찾았다. 박물관인 이 곳에선 플라멩코 역사를 살펴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공연도 볼 수 있지만... 나는 운이 나빴다.
그런데….
플라자 데 에스파냐(스페인광장)엔 근처도 가지 않았다. 무데하르의 걸작이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레알 알카사르도 마찬가지였다.
사전 예약해야 하는 레알 알카사르는 그렇다 쳐도 세비야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플라자 데 에스파냐를 가지 않는다는 건, 서울에 와서 광화문 광장을 가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유명한 장소라면 무조건 찾아가야 한다며 철저히 계획을 짜서 발품을 팔아 온 여행자로선 치명적인 실수였다.
실수는 생각의 겨를을 줬다.
시간을 쪼개 그 나라, 지역의 유명 관광지는 모두 찾아가 경험하는 여행과 여행지에 머물며 공간이 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여행 중 어떤 여행이 옳은가.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의미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만 “나에게 적용할 만한 ‘진짜’ 여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질문의 답은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 할 즈음 찾았다. 그라나다의 해프닝 직후 론다와 세비야에서 우연히 쌓은 추억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