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참 동안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가슴에 묻는 연습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았던 눈물은 마르고 있었고 요동치던 나의 감정도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거대한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아 치고 간 듯 많이 지쳐 있었다.
"지원아! 뭐 해? 자는 거야?"
선잠이 들려던 찰나, 현지가 도착했다. 반가운 소리에 마른세수를 하며 현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우와! 현지야, 오랜만이야."
"와우! 그래도 아직은 시간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얼굴 보여줘서 고맙네. 뭐야? 울었어?"
"별거 아니야....... 여긴, 1층에서 미리 주문하고 와야 하는데, 주문했어?"
"아니, 밥 먹으러 나가면 안 될까? 나 점심도 못 먹었는데."
현지는 이미 반쯤 일어선 상태로 나를 재촉했다. 며칠 전에 본 사람 마냥, 오랜만이란 말이 무색했다.
*****
카페를 나와 이곳저곳 둘러보았지만 대부분의 식당들이 브레이크 타임으로 휴식 중이었다. 현지와 팔짱을 낀 채로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며 장마전선, 거리의 간판 색깔, 브런치 메뉴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원아, 우리 저기 가볼래?"
"금강 영양탕? 너 보신탕 먹어?"
현지는 귀엽게 미간을 찡그리며 가게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족히 50년은 넘은 듯 보이는 낡은 가게였다. 입구에는 빛바랜 피켓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삼계탕 전문. 보신탕 중단]
"지원아! 밥은 이런 데서 먹는 거야. 고수의 냄새가 풍기지 않니?"
가게 안은 한산했고, 손님이라곤 우리 둘이 전부였다. 주방 쪽에서 할아버지가 물통과 컵을 가져다주면서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했다.
"네? 뭐......"
당황스러워 현지를 바라보았다.
" 네! 사장님 저희 삼계탕 두 개 주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심플하고 좋은데! 요즘은 오히려 저런 할아버지 같은 스타일이 핫하다니깐!"
"현지, 넌 그래도 센스 좋다. 난 첨에 나한테 브이 하는데 너무 당황했어."
현지와 함께 웃으며 또 다른 수다 거리를 찾아 재잘거렸다.
뚝배기의 열기 때문에 아직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현지는 국물 먼저 맛보더니 "크하!" 하면서 너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앞접시에 닭을 건져 살과 뼈를 발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제법 뜨거워 보였지만 현지는 손을 후후 불면서 살을 발라 야무지게 먹었다.
"안 뜨거워?"
"뜨겁지!"
"배 엄청 고팠나 보네......"
현지는 잠시 말도 없이 삼계탕을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호호 불어가며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나도 덩달아 숟가락을 들게 되었다. 인삼향이 퍼지면서 입안이 따뜻해졌다.
"맛있네, 생각 없었는데 너 때문에 먹게 되네."
"얼렁 먹어! 너무 맛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거구나!"
"고기가 막 살살 녹지 않냐?"
"천천히 먹어. 체하겠어."
"와, 이 행복. 집에 남자가 3명이나 있으니깐 자꾸 먹는 속도가 빨라지네. 요즘 정말 집밥 집밥 하는데, 지들이 안 하니깐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내가 하지 않은 밥? 사 먹는 밥? 먹고 나서 치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밥이란 말씀이지! 내가 다시 로펌 나와서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
"뭔데?"
"매일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 이거야! 어이없지?"
"그러게, 의외다 정말. 인간 이현지 많이 변했어."
사실은 많이 부러웠다. 전보다 훨씬 풍족해 보였으며 안정적이고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알던 현지는 밥 먹는 시간도 쪼개 가며 일하던 일 중독자였다. 그 덕에 다니던 로펌에서도 최단기간에 파트너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현지가 출산하면서 휴직이 아닌 퇴직을 결정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 넘도록 육아와 살림만 하다가 작년부터 종원 씨가 다니는 로펌에 취직하게 되었다.
"다시 일하니깐 어때? 힘들진 않아?"
"힘들긴! 너무 좋지. 공식적으로 집을 나올 수 있는 것! 소득이 발생하는 노동을 한 다는 것! 이게 삶의 가치를 얼마나 올려주는데! 나쁜 거 빼고 다 좋아, 재밌고 활기도 돋고!"
"이렇게 바깥 생활이 체질인 애가 어떻게 일을 그만뒀는지 모르겠어. 그 자리까지 그렇게 어렵게 갔으면서."
"왜긴 왜야, 애 맡길 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겠지만 내가 엄마 정을 모르고 컸잖아. 그래서 노력해도 내가 평생 갖지 못한 그거, 내 새끼들은 듬뿍 가지라고...... 그냥 그 이상 이하도 고민 안 했어. 그냥 딱 그거였어."
"엄마 정 모르고 큰 건 똑같은데,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야! 됐어! 그냥 난 상황이 그래서 그런 거고, 넌 또 상황이 그럴만해서 그런 거고. 다 그런 거지 뭘..... 어차피 난 진짜 맡길 곳이 없어서 그랬어. 연년생 남자 애들을 누가 봐줘? 그냥 이것이 모성이다, 하면서 간신히 버틴 거지 뭐....."
"그땐 산후 우울증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냥 대단해 보여."
잠시나마 나도 만약에 그랬다면, 현지나 미희 엄마처럼 오롯이 엄마의 역할만 집중했다면 달라졌을까?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난 일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이리도 시간이 한정적이란 걸 알았더라면....... 적어도 함께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더 많은 걸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꼭 이혼을 해야겠어?"
"응."
"종원 선배랑 이혼하면 이제 네 소식 누구한테 듣지?"
"나한테 들으면 되지, 종원 씨도 내 소식 별로 아는 거 없을 텐데."
"그래도 그냥 어떤 연결고리 같은 그런 거 있잖아. 그러나 저러나 같이 있는 게 그래도 혼자보단 낫지 않을까?"
"종원 씨를 위해서도 내가 없는 게 나을 거야."
"누굴 걱정해? 너나 생각해!"
"당연히 나를 위한 게 더 크지."
"다른 계획은 있어?"
"이혼하면 계획이 세워질 것 같아."
"어디 멀리 이민 같은 거 갈 계획은 세우지 마. 비행기, 배 이런 거 안돼. 차로 이동 가능한 곳에 있어야 해!"
"어디 갈 데가 있나, 내가."
"그러니깐 억지로 어디 갈 데를 애써, 굳이, 일부러 찾지 말라고."
현지는 뚝배기를 받침대에 걸쳐 놓고 바닥을 뚫을 기세로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지원이, 닭으로 제사 지내? 먹는 것 같더니만 줄지 않고 왜 그대로지?"
"천천히 먹고 있었어. 다 먹을 거야. 갑자기 너처럼 먹으면 속에서 놀랄 거야."
"그래도 좀......"
"천천히 다 먹을게. 서류 챙겨서 먼저 들어가."
"에이! 무슨 소리야, 다 먹은 거 확인하고 가야지."
"됐어요, 아직 외근 나와서 시간 맘대로 쓸 만큼 여유롭지 않을 텐데! 어린애들이랑 일하면서 책 잡히지 말고 얼른 들어가."
"아놔, 어쩔 수 없는 근로자라...... 꼭 다 먹고 인증샷 보내, 알았지?"
그렇게 억지로 현지를 보내고 식당에 홀로 있었다. 오후 장사를 준비하는지, 사장님이 테이블에 수저와 냅킨 등을 정리했다. 너무 오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다행히 나를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시선 둘 곳을 찾다가 마침 가게 안 텔레비전에서 내가 좋아하던 예전 드라마가 방영하길래 드라마를 보면서 삼계탕을 마저 먹었다. 여자 주인공인 이나영 배우의 독백 장면이었다. 낡은 텔레비전은 소리 없이 화면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인상적이었던지라 보고 있자니 음성 없이도 이나영 배우의 대사를 유추할 수 있었다.
[담배 한 대만 주세요. 아, 오랜만이다 담배야. 나 저 사람 없으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담배만 피워야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세수도 안 하고 음악도 안 하고 이렇게 담배만 피워야지. 이렇게 앉아서 계속 담배만 피워야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어떤 감정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삼계탕을 먹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로 갔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 온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놓았다.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잠시 피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난 담배 피우는 남자를 참 좋아했었다.
입술에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를 켜 보려는 순간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현관을 바라보면 종원 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곤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뭐야?"
"담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황스러워하는 종원 씨의 표정도 우스웠지만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워 보겠다는 불량스러운 나의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어떤 리액션을 보여줘야 할지 정말 난감하네. 오해 마, 당황해서 그런 거니깐!"
"오해는 무슨."
"담배....... 하기로 한 거야? 언제부터?"
"이제부터? 그냥 한 번 사봤어. 해볼까 싶기도 하고. 신경 쓸 만한 건 아니야.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신경은 무슨.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이혼 서류 작성 기념으로 와인이나 한 잔 할까 싶어서 왔어."
"별 기념을 다 해보네!"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종원 씨는 가지고 온 꽃을 긴 병에 꽂았다. 간단한 크래커와 치즈, 나란히 와인 한 잔씩 따르고 건배를 했다.
"정말 제대로인데!"
"그러게, 얼마만인지......"
"현지가 나 보고 가서 별 말 안 했어?"
"별 말 안 하긴. 살이 너무 많이 빠져 보여 마음이 아팠대."
"아까 만날 땐 그런 내색 전혀 없던데."
"그거야...... 티 내면 니가 불편해할 걸 아니깐. 눈물이 날까 봐 계속 다른 생각했다고 하더라.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을 거야."
"그렇지, 그랬구나."
미안하고 씁쓸했다. 그래서 그렇게 길을 돌고 돌아 삼계탕 집을 찾아 들어갔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애잔했다.
"축하해, 지원아. 그렇게 원하던 이혼녀가 된 걸!"
"뭐야, 비아냥대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내가 감히."
이런 식의 대화일지언정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것 마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술 역시 오랜만이라 그런지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술이 약한 종원 씨도 어느새 얼굴이 벌게졌다. 현지 이야기와 다른 지인들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최후의 만찬처럼!
그렇게 완전한 이혼을 바랐는데 막상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현실감이 없었다.
"아니, 지금도 이렇게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데 왜 그렇게 서류에 연연하는 거야?"
"종원 씨야 말로 우린 이미 부부의 삶을 살지 않는데 왜 그렇게 서류에 연연하는 거야?"
"그거야......"
종원 씨는 대답을 하려다 말고 말을 삼켰다. 와인을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갑자기 종원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가 부부가 아니면, 우리의 로미도 더 이상 우리가...... 우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없어지는 것 같아서. 정말로 우리의 흔적이 모두 사라질까 봐."
가슴이 철렁했다. 종원 씨 입에서 로미의 이름을 들은 것은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암묵적으로 로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로미가 떠난 건 되돌 수 없는 현실이야, 알아! 하지만 로미의 기억은, 추억은......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너니깐. 우리 셋은 유일하니깐. 그렇게라도 하면 남은 삶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함께 로미를 추억하며......"
5년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로미의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던 우리가 무엇을 추억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일까.
"내 슬픔의 깊이를 아는 건 세상에 오로지 지원이, 너밖에 없으니깐......"
"아니! 몰라, 난. 내 깊이도 모르는데 당신 깊이를 내가 어떻게 헤아려? 뭐...... 그래도 나만큼 슬플 사람이란 건 알지. 그래서 당신하고 함께 있으면 언제나 슬픔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야. 난 담담하게 감정을 유지해야 살 수 있는데 당신 하고 있으면 난 언제나 슬픔을 마주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고."
술기운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해버렸다. 종원 씨는 기대가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내 체념한 듯 실소와 함께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같은 일을 겪어도, 같은 상황에 놓여도 이렇게 사람 마음이란 게 다를 수가 있구나. 그래, 알았어.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겠지. 내가 뭘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아니 기대했었나 봐. 마저 마시고 자, 난 그만 가볼게."
종원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틀거렸다. 몸이 천근인 듯 느릿하게 주변을 정리하곤 별 다른 인사도 없어 현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때! 로미 사고 나던 날. 왜 내 연락받고 바로 오지 않았어?"
종원 씨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미세했지만 당황하여 온몸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뒷모습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나도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잠시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종원 씨는 그 자세로 무겁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원 정형외과부장이 로펌 클라이언트였던 게 생각이 나서 먼저 전화를 했어. 다행히 내게 신세 진 게 있어서 그런지, 아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바로 수술 들어갈 거라고. 특별히 신경 써준다고. 사람이 간사하게 그 말을 들으니깐 그럼 DNQ 마무리하고 올라가도 되겠다 싶더라고. 나 때문에 망칠 수 없으니깐. 정말 그것만 마무리하고, 금방 끝날 수 있다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취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머리가 번뜩거렸다. 미희 엄마가 나에게 왜 그런 미친 패악질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응급실에서 짝이 다른 신발을 신고 가던 미희 아빠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남루한 모습의 두 남녀의 뒷모습이.
"그래! 그랬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내가 중간에 왔으면 뭐가 달라졌어? 내가 그때 바로 오지 않아서 로미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 내가 원망스럽니?"
"무슨 소리야. 단 한 번도 당신 원망한 적 없어. 당신 잘못이 아니란 건 우리가 서로 알고 있어. 그러니깐 자신을 괴롭히지 마."
종원 씨의 떨리는 어깨에서, 눈물을 머금은 음성에서, 아니라고 말해 달라며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당신 잘못 아니야."
종원 씨는 그렇게 떠나갔다.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난 그와 이별을 완료했다.
진심으로 종원 씨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평생을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수천수만 번 이야기해 준다고 한 들, 차가운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 작은 손 하나 잡아주지 못한 죄책감의 무게만 더해질 것이다.
베란다로 나와 다시 자리를 고쳐 앉았다. 담배를 꺼내 물어본다. 서너 번 시도하다 보니 예전의 느낌이 기억났다. 취기에 담배 연기까지 들이마셨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질어질했지만 기분은 좋아지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드라마의 이나영처럼 포즈를 잡아 보았다.
"담배만 피우다가 죽어야지...... 나도 그냥 담배만 피다가 죽어야지. 뭐였더라, 죽을 때까지 이렇게 앉아서!"
피시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담배만 피우면 죽어지려나?"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는 색이 짙게 흩어졌다. 알코올과 니코틴 때문일까,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흩어지며 사라지는 담배 연기를 보고 있자니 아빠가 떠올랐다. 닿을 수 없는 지독한 그리움의 존재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는 춤을 추듯 흐드러지다가 어느새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머리가 맑아지면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나는 강원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