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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붉고 슬픈 홈런

다른 모든 가정은 접어 두고,     

오직 당신들의 욕정이

나를 태어나게 했다고, 나는 믿어.

태어나는 순간의

기억이 없다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늘상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던

엄마의 손자국으로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아버지가 떠나기 전

난폭한 욕설처럼 엄마의 몸에 남긴

시커멓던 멍 자국을 떠올려.     

사람들의 눈빛은 두 가지뿐이야.

동정과 악의,

그래서 나는 의심과 미움을 먼저 배웠지.

처음에는 다들 곤충으로 시작한대.

곤충에게 고통이 없다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하지만 확실히,

고양이의 울음이

아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는 건

마음에 들어.     

고양이의 머리는 야구공보다는 덜 단단해.

그것이 고양이의 불행.

머리는 절대 때리지 마세요.

못된 생각이 자꾸만 새어 나오는 것 같아요.

말이 없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죠.

오히려 단단하게 반죽되어 있던 분노가

재빨리 몸속에서 부풀어 올라요.

숫자는 즐거워.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여섯 등분이 가장 적당해.

김치냉장고는 여러모로 유용하지.

용량은 클수록 좋아.

쓰레기봉투에 팔과 다리와 몸통과 머리를 담아서

꽁꽁 얼려 둘 거야.

봄이 오면

곱게 믹서기로 갈아

그늘진 화단에 나눠 묻어야지.

엄마의 마지막 얼굴 같던

핏기 없는 자작나무를 그 위에 심을 거야.

부모의 시신을 야산에 유기하는 건,

못된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혹시나 설화처럼

붉은 잎이 무성하게 자란다면

치뜬 눈을

영영 잊지 못하겠지만.     

사춘기란

울음이 분노로

레벨-업이 되는 시기라고 생각해.

그래도 키가 더 컸으면 좋겠어.

악력은 악수할 때만 과시하는 것이 아니야.

손이 크다면 목을 조르기에 더없이 좋지.

야구는 정말, 유용하고 훌륭한 스포츠야.

배트를 집 안에 두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

이럴 줄 알았으면 검도를 배울 걸 그랬어.     

어머니, 메뚜기의 뒷다리, 날개가 뜯겨진 잠자리, 잘린 고양이의 머리, 나의 마지막 홈런볼, 나를 키우는 대신 내 안의 미움을 우량아로 키운, 나를 낳아,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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