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창준 Mar 23. 2023

어금니 장례식

  십년을 쓴 금니가 부러진 다음 날 간결한 부고를 받았다. 짧은 젖니의 시간 이후를 책임졌던 젊은 가장의 죽음이었다. 잇몸은 깊었고 생목처럼 캄캄했다. 나는 잠시 갈고 부수는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금니로 깨물었던 울음의 순간을 떠올렸다. 비가 내렸고 어떤 조문객은 붉은 눈으로 울지 말자고 구석에 서서 다짐하고 있었다. 빈소의 어린 딸들은 아직 유치 같아 깨끗하고 환했다. 상복을 입은 고인의 아내는 시한부의 삶과 고통을 더듬더듬 요약해 주었다.      

   그녀가 오늘부터 보내야 할 빈 잇몸 같은 어둠이 이미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이제 누가 궂은 일을 할 것인가. 빈소를 벗어나면 닥칠 송곳니처럼 사나워지는 삶이나 덧니처럼 도드라지는 삶.      

  당분간은 눈물이 날 때 어금니를 깨물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문상을 마치고 가장 빠른 길을 골라 귀가하는 도로 너머, 긴 터널이 망자처럼 입을 벌리고 누워 있었다. 비가 퍼부었고 어디선가 다디단 향냄새가 났다. 더듬더듬 혀끝으로 확인한 빈 잇몸은 벌겋게 부어 가까스로 식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20화 지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