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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핑크플로이드 버전의 학교

WE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은 한결같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답지 말 것을 강요당했다.

긴 머리카락이 함부로 잘려 나간

몇몇 아이들이 장례를 치르듯

잘린 머리카락을 들고 교문 밖을 나갔다.

비명보다는

조용한 울음을 뚝뚝 흘리면서.

다만 운동장의 모래들만

악담처럼 서늘하게 일어났다, 아주 잠시.     


DON’T

언제나 이 사각의 공간에서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자연광에서는 하늘의 냄새가 나므로

당연히 금지되었다.

교실 저편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금지된 것은 아니었으나

다들 자발적으로 볼 권리를 반납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낙서나 음화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이루어졌다.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은

언제나 ‘다음에’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다음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NEED

간혹 책상에 엎드려 잠들면

땀과 침과 잉크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식의

급훈 아래 생활했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미화된 성공담만

지겹도록 복습했다.

매일같이 미래와 꿈과 희망을 설교했으나

단 삼 단계의 공식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어설프고 조악했다.

언제나 우리는

이곳이 아닌 곳에 있는 우리의 모습만 떠올렸다.

그것만이 유일한 치료제였으므로.     


NO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은

석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제 눈꺼풀의 무게를 배우게 된다.

엉덩이로 보행하는 상상을 하거나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네 다리를 달고 돌아다니는 악몽에

한 번쯤은 시달렸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

다리는 개성만큼이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교사들의 인후염만큼이나

학생의 만성피로나 몸살 역시 흔했다.

흔한 것들은 언제나 사소하게 치부되었으나

눈치 빠른 병원과 약국이

학교 주위에

유행성 결막염처럼 빠르게 확산되었다.     


EDUCATION

가끔은 이곳을

박차고 나간 자들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염색한 머리와 짧은 치마와 피어싱은 부러웠지만

그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확인하며 남은 아이들은

대다수가 그들의 실패에 배팅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패야말로

남아서 견딘 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확실한 보상이었다.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행복을 미루는 법과 불행을 견디는 법을 배워 나갔다.     


Hey, Teacher!

대부분의 졸업식은 해마다 같은 형식으로

얼굴만 바뀐 채 치러졌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것처럼

자동으로 진급되고 출하되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염색하고

사복을 입은 서로의 모습에

자신들도 인간이었다는 점을 깨닫고 안도했다.

그러나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가는 그들 중

입학할 때 맡겼던

표정을 찾아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저항 없이 자유를 압수하기 위한 긴 과정이었을 뿐이었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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