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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8. 2024

운동화 도착증

─ by Mr. Choi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없었던 유년 시절. 만화를 시청하겠다는 일념으로 정확한 시각에 일어나 TV 앞에 앉았다. 가끔 《톰과 제리》도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은 평일, 방송이 어정쩡하게 뜨는 시간대에도 느닷없이 톰과 제리가, 아니 톰이 찾아오기도 했다. 재방이건 삼방이건 끝까지 사수했는데, 늘 마지막엔 물음표를 머릿속에 찍었다. 왜 톰에겐 해피엔딩이 없는가. 스스로 답을 찾기도 했다. 해피엔딩이 톰의 것이 될 때, 이후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으니까. 제리가 살아남아야 대결 구도가 견고해진다.    

 

  결말을 짐작하거나 이미 알고 있어도 톰을 응원하게 된다. 실패가 예고되어 있어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항상 초심이 되어, 게다가 최선을 다해 꿈을 향해 달리는 캐릭터. 제리를 잡아먹는 게 고작 꿈이냐고, 하찮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고양이에게 사냥 본능 충족은 생존과 자존감을 유지케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다 잡은 제리를 놓쳐 다시 쫓는 톰. 이때쯤 익숙한 선율이 흐른다. 설정만 바꾸고 반복되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하고 유쾌함을 얹는 음악은 르로이 앤더슨의 〈춤추는 고양이〉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귓가에 안착하는 속도가 빠른 것을 보니, 반복 학습의 결과인 듯하다.     


  내 인생의 첫 고양이 주제 선율을 흥얼대며 귀가했다. 현관문을 빼꼼 열고 고 양을 살폈다. 고 양의 눈길이 번득이며 문틈에 꽂혔다. 언제라도 돌진할 수 있도록 뒷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달려와서 내게 안기려는 속셈이구나. 어쩔 도리 없군. 하루치 노동의 피로를 물리치고 무릎을 접었다. 두 팔 벌리고 만면에 애정 어린 미소를 담았다.     


  내 앞에서 멈췄다. 칭찬하기를 빠뜨려서 그런가. 하긴 종일 기다리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뭔가 재촉하는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내 신발과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다. 이제 기다림은 내 것이 되었다. 고 양이 어서 기다림을 도로 가져가길 기다려야 했다.      


  신발을 벗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내 운동화였다.      


  애인을 껴안듯이 앞발로 운동화 한 짝을 붙잡고 양쪽 볼을 번갈아가며 한참을 비비적비비적.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하고 난 다음,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들숨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 멍함과 멍청함의 교차 지점을 발견하려는 걸까. 입이 반쯤 벌어진다. 멍함에서 멍청함으로 다소 기울고 있다. 눈웃음을 지으려다 그대로 마비된 것 같다. 모든 근심과 번뇌에서 자유로이 벗어난다면 지을 법한 표정을 연습하다가, 마침내 해내고 만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깨달음을 음미하는 얼굴이 되어간다.     


  플레멘 반응을 처음으로 관찰하고 폭소가 터졌다. 이 진한 냄새가 무엇인지 판별하고 말겠다는 학자의 의지와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했다. 만족스러운 연구 성과를 얻었을 때 어떠한 표정을 지으면 적당한가에 대한 논문까지 발표를 앞두고 있나 보다. 멍청함을 걷어내면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남을 터다.     


  비단 고양이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사자, 말 등도 플레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자못 심각해지거나 우스꽝스러워지는 얼굴 만들기는 냄새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체계화하여 저장하는 작업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후각기관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높이기 위한.     


  내가 아닌 내 운동화를 기다리는 고양이. 거듭 생각해 보면 나를 기다린 게 맞긴 했다. 운동화에 스민 냄새는 운동화 것이 아니니까. 여하간 내 냄새를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양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빨래 바구니 안에서 뒹굴면 어쩌나 싶어 베란다 문을 꼭 닫아두어야 한다. 혹시 침대에서 독립하고도 내 발치에 오르려는 까닭도?     


  냄새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의자 쟁탈전을 야기하기도 했다.     


  색깔만 살짝 다르다. 쿠션의 정도와 질감, 전체적인 형태 및 디자인도 동일하다. 이건 너의 의자, 저건 나의 의자. 구분하기 용이하도록 고 양의 의자에는 포근한 재질의 깔개를 두었다. 며칠을 공들여 자기 의자를 명백한 영역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잠을 잤다는 얘기다.     


  같은 의자를 하나씩 나누었으므로 내 의자를 탐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방석에 묻은 털 몇 올을 집어내어 고 양 눈앞으로 가져갔다. 저건 내 의자라고 했어, 안 했어? 네 의자는 여기 있잖아! 박스테이프를 돌돌 말아 나머지 털을 제거했다. 이튿날, 숨바꼭질 술래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살금살금 걸어가서 곁눈질로 내 의자를 확인했다. 여봐란듯이 고 양이 그곳에 앉아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낮추고 도망갈 틈을 노렸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멀리 달아난 후였다. 이러기를 수차례. 내 의자가 더 안락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자를 바꿔줘도 새로 바뀐 내 의자 위를 공략할 것 같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의자에만 있는 것은 내 냄새밖에 없었다. 고 양의 의자 선호도는 최종적으로 냄새가 결정하는가. 실험을 해볼까.     


  방석 귀퉁이에 향수를 묻혔다. 3일째 되는 날부터 다시 올라갔음을 털이 일러주었다. 향수가 휘발되면서 다시 내 냄새가 상대적으로 진해졌기 때문이다. 스킨으로 같은 반복 실험했다.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점령당했다. 냄새가 깊게 밴 방석을 치우고 탈취제를 두루 뿌리고 한동안 의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어리둥절한 고갯짓을 보이더니, 고 양은 제 의자로 돌아갔다.     


  나는 스킨을 방석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자극적인 냄새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고 양에게는 전혀 없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향수보다 저렴한 스킨으로 의자를 지킬 수 있었다. 아드리안 박사님, 당신만 연구하는 게 아니에요.     


  반려견이나 반려묘에게 냄새는 중요하다. 그 어떤 말이나 몸짓보다 친숙한 냄새를 남겨주는 것이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동거인의 옷가지를 함께 넣어줘야 쉽게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수술 후 통증도 반감될 수 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외양을 봐선 이렇다 할 매력을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 자꾸만 이끌리게 된다면 그의 냄새를 의심해야 한다. 고유한 냄새는 특정한 사람에게 사랑의 언어로 읽힌다.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편지를 보내며 씻지 말고 자기를 기다려 달라고 당부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서둘러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옷가지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한다. 냄새마저 떠났다고 오열하기도 한다. 사람 또한 냄새로 내밀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숱한 냄새 중에 나는 너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까. 나의 냄새를 용케 알아내는 너처럼.     


  가만히 좀 있어 봐, 고 양. 너의 냄새를 맡고 플레멘 반응을 보이더라도 놀라지 마.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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