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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7. 2024

악몽 같은 길몽

─ by Mr. Choi




  “악!”     


  두 번째 비명을 내질렀다. 다시 봐도 지네가 확실했다. 게다가 마디마디 철갑을 두른 듯했다. 소름 돋게 하는 광택이, 수많은 다리의 불규칙한 꿈틀거림이 운동 신경을 마비시켰다. 한 걸음 물리려다 주저앉고 말았다.   

  

  고 양이 옆에 있었다. 공포에 휩싸인 외마디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왔구나. 괜찮지 않지만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지도록 노력해 볼게. 머리를 어루만지다 엉덩이를 두드려 주었다. 팡팡.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으니까 체내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쇼크를 진정시킬 것이다. 심호흡을 열 번도 더 하고 나서 평정심을 찾았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치우는 거다. 꿈틀거리는 저것을 집 밖으로 옮겨야 한다. 침대 밑이나 서랍 틈으로 자취를 감추기 전에.     


  고 양아, 네게 부탁해도 되겠니? 현관문 열어놓을 테니 어떻게 밖으로 좀……. 나도 참, 내게도 버거운 일을 너한테 시키려 하다니……. 내 마음을 벌써 읽었니? 내키지 않을 텐데 가까이 가지 마. 억지 용기를 쥐어짜서 주먹을 날릴 것까진 없어.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현관은 저쪽이잖니. 왜 자꾸 내 쪽으로 미는 거야? 잠깐만, 사진 좀 찍자. 임대인한테 항의해야겠다. 어떻게 집에서 지네가 다 출몰할 수 있냐고. 증거가 필요해. 바퀴벌레도 아니고 지네라니,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부터가 믿기지 않았을걸.     


  나보고 치우라는 거니? 알았다, 알았어. 재활용 쓰레기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빳빳한 종이 여러 장이 눈에 띄었다. 빗자루로, 쓰레받기로 삼을 만했다.     


  건물 뒤편으로 산자락이 이어졌다. 소년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눈을 맞추기 위해 물동이 가득 채운 물을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고 걸어가려는 시 속의 소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기다란 몸이 꿈틀거리기라도 하면 걸음을 멈췄다. 넘실거리는 물이 수평을 찾을 때까지. 지네를 소나무 아래로 강제 이주시키고 나서야 오돌토돌 돋았던 소름이 가라앉았다.    

 

  그날 밤, 곁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눈을 떠 슬쩍 내려다봤다. 고 양이 두 앞발을 침대 프레임 끝에 올려놓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구나. 어서 올라오렴. 옆에서 같이 자자. 이렇게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규칙을 어기면 곤란하지. 단호하면서도 일관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학원 빠지는 것도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다. 손을 뻗어 머리를 서너 번 쓰다듬어 주고는, 무서운 꿈 다 도망갔네, 어서 가서 다시 자려무나.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집 내부와 밖이 연결될 만한 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의심할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낚시 놀이 한창일 무렵이나 내지르는 고 양의 격앙된 목소리가 화장실 쪽에서 들렸다. 냉큼 달려갔다. 하수구에서 수십 마리의 지네가 올라오고 있었다. 뒤로 나자빠지기 전에, 더 놀라운 모습을 목도하고 말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실력을 나비에게 전수한 이는 누구일까. 그 많은 지네를 고 양이 스트레이트 펀치로 물리치고 있었다. 희희낙락 분위기로 가득 찬 화장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기쁨이 폭포수처럼 낙하할 듯했다. 고 양이 기척을 느꼈을까,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하회탈 같은 눈웃음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 자랑스럽지? 칭찬받으려고 내게 달려들었다. 입가에서는 두세 마리의 지네가 서로 먼저 빠져나가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지네보다 고양이가 더, 무서웠다.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에 등을 바짝 붙였다. 엎드려 자는 포식자를 내려다봤다.     


  웃기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한밤중에 하수구 마개를 열어보았다. 트랩을 꺼내어 구조를 파악했다. 어렵지 않게 결론 도출. 기다란 벌레가 기어 올라올 수 없다. 일정량 고여 있는 하수가 수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취를 차단할 목적으로 고안한 시스템은 벌레 유입도 막아낼 수 있었다. 설사 잠수에 능한 벌레가 침투하려고 해도, 제2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하수의 중력이 개폐 여부를 결정했다. 양이 많을수록 크게 열렸다가 줄어들수록 조금씩 닫히는 문. 용수철이 수량에 민감하게 작동하는 센서였다.     


  그렇다면 누군가 지네를 실내로 가지고 왔다는 건가? 그 누군가가 고 양일 수 있음을 꿈이 알려줬다. 꿈이 복잡한 머릿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마당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곧잘 새나 쥐, 사냥 실적이 저조한 날에는 벌레라도, 먹이를 주는 사람 집 앞에 선물로 두고 가는 습성이 있다고 하질 않나. 그러고 보니 어제 고 양의 행동이 특이했다. 지네를 자꾸 내 앞에 밀어놓았다. 수줍음 안에 뿌듯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내게 주는 선물이었던 건가. 고 양이, 그러니까 아드리안 고가 내게 주는 첫? 자기가 준 선물을 버렸다고 오해하는 게 아닐까. 선물인 줄 알았어도 집에 놔둘 수는 없긴 했지만 말이다.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늘어났다. 설마 내가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선물을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거기까진 퍼즐을 맞췄으나 단 하나가 들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마련했는가. 집 밖에서 어떻게 가지고 왔는가. 생각의 미궁은 무너질 줄 몰랐다.     


  고 양과 동거생활을 결심하기 전까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오로지 혼자만을 위해 마련한 공간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가령, 혼자 살 때는 내키면 바로 방바닥에 누웠다. 매일 청결을 유지해야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현재는 치우는 대로 어질러놓는 존재와 입씨름을 해야 한다. 내 침대와 내 의자조차도 끊임없이 사수해야만 간신히 지켜내는 처지다. 당연했던 것들이 함께 생활하면서부터 절실한 것으로 바뀌었다.    


  땅따먹기 식으로 동거생활을 조율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때 꿈속에서 고 양과 마주했다. 네 다리를 바짝 세우기는커녕 엎드려 있는데도 나보다 컸다. 눈을 맞추려고 고개를 낮추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그간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꿈을 꾸나 싶었다.     


  관점이 달라진 지금은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다. 머릿속 여러 생각 주머니 중에 고 양의 것이 제법 커다랗고 무겁다는 꿈의 진단이다. 그것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작업하고 있는 시간의 문양이다. 점자를 읽듯이 손끝으로 문양을 더듬어서 건져내는 낱말들. 순서대로 나열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들게 한다.     


  함께 엮어가고 있는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줄 알았으나, 가까스로 고개를 넘으면 항상 더 기막힌 절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며 휴지를 갖는다. 마저 엮어갈 이야기의 끝을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대부분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꿈을 꾼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꿈을 통해 쌓인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을 정리한다. 불현듯 고 양의 머릿속 생각 주머니가 궁금해졌다. 가끔 꿈속에 내가 나타날까. 만약 네 꿈속에서도 내가 쪼그마하다면 상상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으길 바라. 그래서 고양이 버스로 변신해 주길.     


  기꺼이 너의 첫 승객이 될게. 어둠이 내린 숲을 달리듯 날아 보자.        



        

※ 본문에서 언급한 시 속의 소녀는 서정주의 「그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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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 집의 영혼이다.

- 장 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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