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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6. 2024

가출할 거야

─ by Mr. Choi




  사고인가, 사건인가.     


  냉철해져야 한다. 타자의 눈으로 봐야 한다. 감정적으로 움직이면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어떠한 문제든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실마리를 찾기만 한다면 해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질문지를 작성해 보자. 1번, 고 양이 집을 나간 게 틀림없는가? 그렇다. 내 발소리를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서 긴장하는 일이 없다. 내 발소리로 현관문을 열 땐 발라당 누워서 배를 보여주곤 했다. 상대가 자기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겨야만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다. 원시 주머니가 있다고 해도 배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부위이지 않은가. 위급한 상황에서 머리와 중요 장기가 위치한 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역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화장실에서 힘을 주고 있겠지 싶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야 일상의 퍼즐 조각 하나가 제 자리에 맞춰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막무가내 자기 밥부터 달라는 울음이 들리지 않았던 거다. 책방, 침실, 거실 겸 주방, 변기 뒤쪽까지 다 둘러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고 양의 시선을 맞추려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보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스마트폰을 찾는 게 아니었다.     


  2번, 어떻게 집에서 사라질 수 있는가? 이 질문부터 사고회로 과부하 상태다. 가상의 시나리오를 써보자. 2-1번, 지나가다 무심코 올려다본 창가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고양이를 발견한 한 사람, 짧은 만남이 지속되면서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든다. 유괴하기로 마음먹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출입문 비밀번호 알아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어딘가에 쌀알 같은 렌즈를 설치했을 터. 띠띠띠띠띠띡. 간식으로 유혹해 고 양을 안고 나간다. 아니지, 걔가 순순히 안길 리 없지. 불쌍하게도 케리어에 감금된다. 빠져나간다. 끝.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그런 짓을 벌이겠는가.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2-2번, 뭐만 망가지면 자기부터 추궁하고, 살쪘다고 놀리는 나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한 고 양,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장기 여행을 가는 것도 못마땅하던 참에 결심한다. 가출하기로.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두 앞발 모아 뻗고 뒷발에 힘을 주고 뛰어오르면 방문 손잡이를 내릴 순 있을 것이다. 사나흘 낮잠 대신 문 열기 맹훈련에 들어갔다면 현관문 열림 버튼도 같은 방법으로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문은 열릴 것이고, 가출은 성공했을 터. 


  2-3번 시나리오는 첫 문장도 쓰지 못했다. 앞의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라면 후자에 무게가 실렸다. 동거인에 대한 불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가출 동기도 충족이 되고, 유니버설 손잡이를 조작해 방문을 여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어 현실성이 높다. 그런데 과연 현관문의 개폐 버튼을 정확하게 누를 수 있었을까. 그간 고 양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나.     


  3번, 그렇다면 사고인가, 사건인가?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으로 문을 열어 나갔다면 사고다. 곧바로 닫힌 문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을 고 양이 그려졌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면 가출 사건이다. 밤거리를 헤매는 청소년과 고 양이 겹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늦가을, 당장 첫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을 골랐니. 봄이나 여름에 나가야 그나마 걱정을 덜어낼 수 있잖니. 고양이의 출산 시기가 왜 따뜻한 계절에 몰리겠니. 영아사망률을 최소화하려는 본능인 거야. 살 궁리는 하고 나갔어야지.     


  골목에 어슬렁거리다 덩치 작은 고양이한테도 얻어터질 게 뻔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 양은 서열 최하위. 게다가 지난주 토요일에 발톱을 죄다 깎아놓아 방어도 못 할 텐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어디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었을까. 지금쯤 허리에 달라붙은 뱃가죽을 부여잡고 내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있을까.     


  냉철함은 개뿔. 집 근처를 샅샅이 수색했다. 겁이 많아 멀리 가진 못했을 텐데,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어진 탐문조사.     


  “고양이 키워요? 옆집인데도 몰랐네. 안 그래도 출근하다가 다 큰 고양이를 보고 애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맞아요, 시커멓고 줄무늬 있었어요. 어쩐지 그 집 현관문에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옆 호수에 거주하는 골드미스의 진술을 확보했다. 집을 나간 건 분명했다.      


  “도둑고양이요? 내쫓아 버렸죠. 짜증나게 꼴아보잖아요. 안 때렸어요! 발길질 안 했어요! 그러기도 전에 도망가던데요, 뭘. 아저씨가 걔 주인이라도 돼요?”     


  윗집 딸내미의 진술로 가출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 애가 아니더라도 쫓겨날 상황이긴 했다. 오늘이 계단 청소하는 날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오늘따라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이튿날 비몽사몽으로 출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 주변 지도 한 장을 프린트하고 수색 범위를 넓혀 그었다. 빨간 펜 자국 안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조퇴 신청하다, 나도 모르게 애를 잃어버렸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잠깐이긴 하지만 나는 애를 숨겨 키우는 미혼부가 되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날은 휴가를 냈다. 자자체 동물보호소에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전단지를 붙여야 하나? 사례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고 양의 몸값을 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불편했다.     


  중딩 소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때렸지? 도망가서 못 때렸다니까요! 나와의 티격태격 말싸움을 잊었는지 해맑은 얼굴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걔 데려가는 거 봤대요. 확실한 정보야? 딸기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그 집이 어딘지도 알아? 101호 아줌마한테 물어보세요. 근처일걸요. 정말이지? 속고만 살았어요? 근데 고급 정보 값이 왜 이래? 거 옆에 만 원짜리도 있잖아요, 하고 헤헤 웃었다.     


  정말, 그 집에 있었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몸을 화장실에서 발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결단을 내린 듯이 변기 뒤쪽에서 기어 나왔다. 집주인은 고 양이 내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사실 관계는 따지지 않았다.      


  “얼마나 서글프게 울던지, 버림받은 고양인 줄 알았어요. 저렇게 있다가 누가 해코지하면 어쩌나 싶어 내가 데려온 거예요. 이 동네 사나운 고양이 많아요.”     


  초보 캣대디였다. 집 앞에 밥그릇 두어 개 갖다 놓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사료를 보충하는 일도 말이 쉽지 만만치 않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기 마련인데, 이분 역시 그러했다. 동물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다만 인터넷 활용에 밝지 않아서인지 요즘 집고양이 생활은 잘 모르는 듯했다.     


  대야에 가득 담긴 진짜 모래가 이를 말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힘들게 퍼왔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슬쩍 불만을 토로했다. 생리현상 조절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이틀째 되는 저녁엔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침대에 올라와서 똥을 한 무더기 누었단다. 자기가 저지른 짓이 아닌 척 다시 숨었단다. 캣대디는 이불 한 채 버려야 했다.     


  비데 없는 화장실에선 대변을 못 보는 아이들이 있다는데, 그중에 고 양도 포함될 줄은 몰랐다. 1947년 상용화된 고양이 전용 모래는 흡수력이 좋고 탈취성분이 뛰어나 깔끔한 성격의 집고양이에겐 필수품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진짜 모래는 더럽다고 판단하고 깨끗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 침대 위에서 거사를 치른, 이제 집고양이일 수밖에 없는 고 양. 


  나는 잠깐, 학교에 불려간 학부모가 되기로 했다. 담임선생님 역할을 맡은 아저씨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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