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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15. 2024

신장개업 미용실, 하루 만에 문 닫아

─ by Mr. Choi




  체중계 유리판이 방바닥보다 체감온도가 낮은가. 방석인 양 한참을 깔고 누워 있다가 자리를 옮겼다. 체온으로 덥히던 자리가 천천히 식어갔다. 바통을 이어받은 새 자리는 온도계 눈금을 수선스럽게 나르고 있었다. 머지않아 세 번째 체류 장소도 밝혀졌다. 고 양은 언제부터 노마드 라이프를 동경하게 되었을까. 손부채질하며 생각하다가 만사가 귀찮아져서 그만두었다.     


  에어컨 없이도 거뜬히 여름을 나곤 했다. 열대야 며칠만 견디면 새벽이 품은 한기가 열린 창을 넘어왔으니까. 절기는 못 속인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조상의 놀라운 지혜에 탄복하기도 했다. 고 양이 성묘가 되고 맞이하는 여름부터는 시계도 더위 먹어서 그런지 바늘 움직이는 속도가 더뎌진 것 같았다. 매년 여름이 그러했듯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었고 여름 뉴스의 시작은 의당 그래야 한다는 듯이 지구온난화니, 열섬이니 떠들어댔다.     


  나야 온몸으로 땀을 흘릴 수 있어 체온 조절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무더운 날도 찬물을 끼얹으면 얼마간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일이 되는데, 고 양은 쉽지 않겠다. 고양이에겐 땀샘이 육구에만 있다고 한다. 일명 젤리라고도 불리는 탄력 뛰어난 발바닥 말이다. 지나치게 좁은 부위에만 분포된 땀샘이 한계치에 이르면 어떡하나 염려되지만 영리한 동물은 땀과 흡사하게 체온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냈다. 제 몸을 핥아서 털에 수분 남겨두는 거다. 증발하면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 양은 지형지물을 십분 활용한 피서법까지 찾아냈다. 일시적 노마드 라이프가 그것임이 자명해졌다. 체중계 유리판에 배를 깔고 30분쯤 누워 있다가 바닥이 뜨거워진다 싶으면 화장실 세면대 아래쪽으로 이동한다. 타일이 체온과 같은 눈금이 되면 곧바로 변기 뒤쪽으로 이동한다. 그 틈에 몸을 집어넣고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가 최고의 명당인 듯싶다. 1시간 가까이 머무르는 것을 보면. 아래쪽뿐만 아니라 양옆과 위쪽에서도 열평형에 가담하는 구조의 동굴 형태 쉼터. 그곳마저 뜨거워지면 다시 체중계 유리판으로 이동하기.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처럼 가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는 고 양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5년 경력의 집사로부터 애묘용 바리캉을 빌려왔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문제없단다. 조작 버튼만 구분할 줄 알면 집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단다. 다만 한 가지, 미용실 손님이 사납지 않아야 한다.     


  화장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았다. 숨을 만한 곳은 잡동사니를 채워 넣어 사전 차단했다. 한가운데 욕실 의자를 놓았다. 마지막 준비로 바리캉 날에 3밀리 가이드를 장착하고서, 상냥한 목소리로 손님을 불렀다. 신문지로 돌돌 만 공을 굴리며 호기심이 경계심을 흐트러뜨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눈치채지 않도록. 긴장하지 않도록.     


  “어서 오세요. 우리 샵 처음이죠? 잘해드릴게요. 어떤 스타일 원하세요? 시원하게만 밀어달라고요? 오케이!”    


  ON. 두꺼운 털옷을 벗을 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것은 양털 깎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엉킴과는 다른, 털끼리 서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엉덩이에서부터 목 쪽으로 작업 면적을 넓혀갔다. 고 양의 엉덩이가 아마존으로 보였다. 나는 밀림을 밀어버리는 다국적기업의 오너가 되어 있었다. 벌목의 광풍이 지나간 지역은 산소가 희박해졌다. 마스크가 콧구멍을 막고 있어서 신체 운동량 비례 필수 산소량 공급을 맞추지 못하는 모양이다.     


  서로를 위해 작업을 빨리 끝내야 했다. 바로 눕혀주고 복부에 바리캉을 갖다 대자, 두 눈에서 경기를 넘어 광기가 번쩍였다. 발톱을 세운 라이트훅이 날아왔다. 천만다행으로 레프트훅도 피했다. 화장실은 이미 털로 난장판이다. 털이 날아오르면 안 돼!     


  “손님, 제발 진정하세요! 배는 안 건들게요. 그래도 다리는 좀 하셔야죠.”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옆구리와 목 아래쪽 털을 깎았다. 다리는 손만 대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작업 상태를 점검하려고 몸에 묻은 털을 털어냈다. 미진한 부분 다듬는데 자꾸만 뒷머리가 거슬렸다. 좌우 라인이 삐뚤어져 있었다.    

 

  함정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른쪽이 길어 살짝 쳐내면 왼쪽이 길어지고, 왼쪽을 쳐내면 오른쪽이 길어지는 악순환. 어서 눌러줘요, OFF.     


  “권정생 선생님이 널 봤다면 ‘몽실냥이’를 쓸 수 있을 텐데, 아쉽네.”     


  기진맥진. 이 와중에도 화장실 바닥에 3,000만 개 이상의 털이 떨어졌다는 계산을 끝냈다. 99.99% 회수를 목표로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했다. 고 양을 대충 씻기고 물청소로 마무리했다. 이제 끝이겠지, 절전모드로 전환하려고 할 때 눈속임에 실패한 마술처럼 털이 나타났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체내 에너지 잔량 신호가 빨간 불 점멸 단계로 넘어갔다.     


  침대에 누워 급속 충전했다. 초록 불 단계로 진입했을 즈음, 고개만 돌려 고 양을 쳐다봤다. 고 양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그러고 있었을 것 같은 예감. 눈빛을 보아하니 몸이 가벼워져서 날아오를 것 같다, 한결 시원해져서 살 것 같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진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원망이었다. 내 귀여운 번개 꼬리를 이렇게 볼품없이 만들어 놓고서 잠이 오냐고 묻고 있었다. 그루밍 좀 하려고 해도 마땅한 곳이 배와 다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허전함을 무엇으로 보상할 거냐고 따지고 있었다. 털이 잘려 나간 까끌까끌한 부위를 고통스럽게 혀로 핥는 시연까지 해 보이면서, 얼마나 참담한 짓을 저질렀는지 눈이 있으면 좀 보라고 눈을 부라렸다.     


  미아우, 미아우. 고양이끼리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특유의 울음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화된 음성언어라고 볼 수 있다. 고 양이 시종일관 울면서 맨살이 되고 싶지 않다고 애원했으나 듣는 척도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털옷 벗어던지고 여름철을 지내본 적 없어 두려운 거라고, 한번 맨살에 와 닿는 바람을 맛본다면 네가 먼저 달려와서 벗겨달라고 등짝을 들이밀 거라고 우겼다. 고양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고양이 박사인 양 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행착오 학습을 반복해야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려나. 얼마나 더 반성을 반복해야만.     


  고 양은 생활의 움직임을 줄이고 줄여 누적된 에너지를 모두 털 성장에 보태려고 했다. 엉덩이만 보이며 웅크리는 날이 늘었다. 식물성을 닮아가려는 자세로 ‘털잔디’를 키우고 있었다.     


  그간 털 없는 나를 징그럽다고 놀리지 않았을까. 놀라운 속도로 털옷을 붙이고 와서 내 종아리에 양 볼을 번갈아 비비적댔다. 앞으로 털 없다고 놀리지 않을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털 없는 내가 징그럽지 않을까?     


       ◇ 장옥관, 「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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