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가족을 상봉한다는 것
올해는 아빠의 환갑이 있는 해이다. 지금껏 내가 역마살이 있는 사람처럼 살아온 것이 가족력임을 방증하듯, 매일 밥먹듯이 여행하러 돌아다니는 가족들은 역시나 아빠의 환갑에도 모두가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말레이시아에 있으니 말레이시아로 올법도 하지만, 그들이 가족 회의끝에 가고 싶었던 푸켓으로 정했다. 내가 있는 페낭에서도 푸켓은 직행이 있었기도 했고 제법 모두가 수월하게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국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에게 나는 그동안 먹고싶었던 '간장게장'을 부탁했다. 게장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오는 것이 한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먹고싶어지니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았고 다행히 태국에 게장이 반입이 가능한 것 같았다. 말레이시아에는 한식당도 많고 한국식품을 판매하는 곳도 꽤 많아서 웬만한 한국음식은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간장게장은 달랐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게장은 그리 자주 먹던 음식은 아니었는데, 왜 아예 못먹게 되니 먹고 싶게 되는건지.
가족들이 말하길, 푸켓공항 입국하던 당시 여러 한국음식들로 꽁꽁싸매진 박스를 보고 이게 뭐냐고 X-ray 레인에 올려보라고 하고 열어보라고 요청까지 받았단다. 김치와 한국음식들이라고 설명을 해도 이상하다며 열어보라고 했던 박스였는데, 마침 하루 전날에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언니를 보고 공항직원이 괜찮다고 그냥 나가라고 했단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하는 건지. 게장이 반입이 가능하다곤 되어있지만 공항직원이 보기에 이상하면 뺏길 수도 있던 상황이었던거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 간장게장을 무사히 푸켓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만나는 가족들은 뭔가 새로웠다. 사실 한국에서도 나는 혼자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지낸지 꽤 되었었다. 자취를 시작한지 처음에야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본가에 갔었는데, 그 뒤로 사업이다 뭐다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본가를 찾지 않게 되었었다. 3개월만에 만나는 것 쯤이야. 한국에서도 그렇게 보던 사이인데, 뭔가 해외에서 만난다니 감회가 마치 간장게장 처럼 한국에서 매일 먹을 수 있어도 먹지 않았던 간장게장인데, 이상하게 해외에서 쉽게 찾을 수 없으니 먹고 싶었던.
그렇다면 가족이란 간장게장 같은 건가?
나 스스로는 해외로 도망친다고 표현했지만, 차마 가족들에겐 그렇게 표현할 수 없었다. 나를 불쌍하게 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기회를 찾으러 간다며 애둘러 씩씩한 척 표현했었다. 그러나,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인들에게 3개월동안 여전히 아무것도 안하는 내가 걱정이 되나보다. 힘들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는 소리를 번번히 하고 계신다.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당연히 반가운소리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건 다시 막막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기분에 숨이 다시 조여오곤 한다.
그러니까 아직은 돌아갈 때가 한참 아니라는 거겠지.
어느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집나갔던 탱자가 아니라.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는 콜롬버스의 발걸음이었으면 좋겠다. 간장게장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걸음이 아니라, 신대륙에서 좋은 향료를 발견해서 간장게장과 함께 먹을 향료를 한아름 안고 가는 그런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