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멈춰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

by 다이치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에 고통스러운 시간도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에도 어느새 좋은 기억만 남아 다시 한번 시도해볼 용기만 남게 된다. 나에게 페낭은 쉬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페낭에 있으면서 최대한 불안하지 말고 쉬어가보자고. 그 와중에 운이 좋게도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몸을 건강히 체력을 키우며 존재할 수 있었고, 나는 단순히 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그 과정이 결국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자 머물렀다 가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예전만큼은 아니었을 지 언정 나의 1년은 확실히 나아갔다.


요즘엔 특히나 소소한 행운이 곁들여지면서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나는 확실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다시 한번 어떠한 것도 이결낼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그것은 물리적 체력이기도 하고, 정신적 체력이기도 하다.


커리어적으로 가장 빛나야하며, 전문성을 쌓기 최적기인 30대에 나는 한국에서 지쳐 도피를 했다. 그 와중에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분명 부럽고 불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마음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사람들은 알고 있는, 마치 배터리가 0%이 되어버린 핸드폰과 다를 바 없어진 몸이였기에 당장 불안하더라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지친걸 알았지만 책과 유튜브에서는 지쳤다면 힘내지 말라고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태평한 소리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더 밀어부치기도 했다.


그리고 끝끝내 무너졌다. 무너지고 나서 한국을 떠나자고 마음먹고 해외에 나왔을 때도 여전히 불안했다. 그리고 기어이 1년이라는 시간을 휴식과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보내고 나니 이제야 깨달았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나는 그 동안 멈춰있던게 아니라 나아가고 있었음을.


그래서 지금 무너졌다거나 혹은 그냥 멈춰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멈춰있는게 아니라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 중인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땐 정말 모르지만, 그 쉬어보자 하며 커리어를 멈추고 최대한의 휴식을 목표로 삼았던 시간 속에서 배운것도 경험한 것도 더 넓은 그릇의 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또한, 그 멈춰있는 시간들은 결국 고통을 망각하게 도와준다. 시간이 지나면 전부다 해결될 거라는 말 이제는 100% 믿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이 되기도 하며, 희석되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고통을 망각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역시 나아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다만, 진정한 망각을 위해서 그리고 망각이 된 후 다시 일어설 힘을 위해서는 멈춰있는 시간 동안 꼭 해야할게 있다. 뻔한 소리로 들리더라도 그건 확실히 운동이다. 멈춰 있던 시간 동안 운동만이라도 고집해서 하게 된다면, 그땐 힘들고 지쳐서 모르더라도 후엔 체력이 훨씬 좋아진 나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운동을 하고자 했던건 아니었고, 매일매일 할게 없고 시간이 많기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되었었다. 운동은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그 결과를 너무 잘 느꼈기에 매일매일 멈춰있는 것 같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그 중에서 운동만큼은 딱 이거 하나만 하루에 한시간씩만 해보라고 말하고싶다. 그 운동들로 만들어진 체력이 다시 한번 일어날 힘을 주게 될거고 그 시간들이 나에게 나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IMG_20250925_214234962.jpg 할일이 없었기에, 운동을 했다.


나는 이제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정말로 앞으로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용기가 생긴 것 만으로도 1년 전의 나와 크게 다른 점이다. 배터리가 다되어 멈춰버린 우리 모두 화이팅!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8화여자로 태어나서 맞이하게 되는 유리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