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넘어서

우울증 투병의 끝에서

by 황혼

이제는 조금 편해졌다.


과거의 기억들도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과거는 접어두고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곳에 갇힌 지도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계절이 피고 졌다.

안에서 본 세상은 어둡기만 했고,

어둠만이 나를 냉기로 감싸안았다.


어느 날은,

짙은 물속에 잠긴 듯 숨이 막혀 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위로 떠오를 기미는 없었다.

그 순간에는,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가장 편안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내 마음 한구석을 깊고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나를 따스하게 감싸준 적이 없었다.

아무 온기도 없이

늘 건조하고 매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색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내 안에 남았다.

그 날카로움 속에

묘하게 견딜 수 없는 향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지만,

돌아서면 그 잔향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내 안을 잠식하던 기척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난다.

한때는 숨을 틀어쥐던 그림자가,

이제는 먼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간다.


그러나,

불현듯 코를 스치는 향기와,

바람이 옮겨오는 잊힌 음의 파편이

내 가슴 한구석을 조용히 저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숨이 잠시 가늘어지고,

내가 지나온 길이 더욱 길고 황량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벗어났다고, 견뎌냈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면서도,

사라진 것들도

끝끝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나 보다.


이제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길을 가고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하늘이 이렇게 파랗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세상에 푸른빛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시선 속에서만 그 빛이 지워져 있었음을.


빛은 아직 멀고 희미하지만,

나는 그것을 향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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