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날 선 펜대에 의존해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창조의 직업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이고 장황하게 말하자면 나는 방대한 창작의 숲이 품고 있는 각종 이야기를 깎아내고 빚어내며 새롭게 만들거나 다시 다듬는 역할을 이행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내 손을 거쳐 탄생한 창작물들은 눈에 보이는 곳곳마다 존재한다. 오며 가며 스치듯 훑어보는 가게 앞 카피 문구 혹은 담당자 아니면 보지도 않을 것 같은 5분 남짓한 기업 홍보영상, 하다못해 보는 이 하나 없어도 사시사철 재생되는 전시회 영상 등. 어느 곳에나 있지만, 쉽게 알아채기 힘든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섰는 내 노력의 산물들. 나름의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진 결과들이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아득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잠깐의 뿌듯함으로 치부하기엔 내 업(業)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마감 기한 일과 매 순간 타 업체 담당자에게 제지당하며 수정, 재수정을 반복해야 하는 과정의 반복은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선사한다. 여기에 빠듯한 급여가 선물한 ‘생계 걱정’까지 더해지면 스트레스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려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 풀어낼 여유조차 없어지는 현실. 결국 남은 건 쌓이다 못해 곪아버린 인생의 회의뿐이다.
새벽녘의 빈 공기를 마시며 내게 주어진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다 보면, 하나의 깊은 상처를 남긴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모 기업 대표의 잔재가 잔상처럼 떠오른다. “일을 맥락 없이 아무거나 다 하지 말고, 돈이 될 만한 걸 해요.”라며 나를 정신없이 비웃던 그 목소리, 그 얼굴. 나를 향한 조롱과 무시로 한껏 비웃음을 내뿜던 그 표정 앞에서 당당하게 웃어줬어야 했는데… 가난이란 현실 앞에 주눅 들어 어떤 액션도 취하지 못하던 과거의 나는 아직도 그때의 상처를 후회처럼 이고 진 채 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하다. 알량한 자존심보단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고, 매사 죽을힘 다해 버둥거려도 불투명한 미래가 못내 두렵고. 혹시나 내쳐지진 않을까 싶어 매번 겁부터 난다. 불안한 나를 감추려 지겹게 웃으며 남이 뱉어낸 막말 뭉치들을 묵묵히 삼키는 난,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마, 한껏 더 움츠려진 작은 마음뿐일 게다. 나는 그게 제일 아쉽고 못내 안타깝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자랑할 만한 이력도 이렇다 할 발자취도 없이 바쁘고 또 아프게 세상의 언저리를 맴도는 사람이다. 중심에 오지 못한 채 곁을 도는 스스로가 마냥 안쓰럽고 씁쓸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 하루를 애정 한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일지라도, 내 하늘은 어제보다 오늘 더 화창하고 화사할 것을 믿으며 제 길을 걸어내는 사람. 적어도 나를 믿고 내 하루를 믿으며,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도약하는, 말 그대로 푸르른 청춘. 누가 비웃어도, 맥락 없다 무시해도 상관없을 패기의 30대. 그러니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