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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2. 2024

내 마음에도 방문이 필요하다

나를 감시하게 하는 이유

바야흐로 블루베리의 계절이다. 정원이 있는 둘째 언니(=둘째 사촌오빠의 부인)가 블루베리를 따서 한 통 가져다주었고, 오늘 또 방문 간호사님도 블루베리 한 통을 선물로 가져왔다. 주말에 체험 농장을 하는 친구에게 갔다가 얻어온 것이라고 했다. 오실 때마다 오이며 감자며 아빠가 농사 지은 걸 나눠 드렸더니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방문 간호사님이 처음 방문한 게 4월 중순이니까 이제 두 달 넘어간다. 처음 방문을 요청했을 때는 엄마 욕창 치료 때문이었으나, 다행히 욕창이 심하지 않은 탓에 금방 나았다. 지금은 치료라고 할 것은 없고, 건강 관리 차원에서 이것저것을 체크한다. 혈압 재고, 체온 재고, 여기저기 뭉친 곳을 마사지로 풀어주기도 하고, 부은 데가 없는지, 불편한 데가 없는지 여기저기(머릿 속이나 등허리 같은 데도) 들춰보고 살펴본다.


욕창이 사라지고 그만 오시라  수도 있었지만 계속 오시라고 하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치료보다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우선, 청소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다. 방문 간호사가 오는 날에는 손님을 맞이하듯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간병을 하다 보면 지쳐서 청소고 뭐고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방치하다 보면 금세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되고, 집안 꼴이 엉망이면 이 또한 우리 정신 상태에 악영향을 미쳐 폐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사전에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평소 무뚝뚝하고 건조함, 퉁명스러운 말투를 구사하다가도 방문 간호사님이 올 때는 접대용 말투로 전환한다. 사실 엄마 집에 온 지 한두 달 만에 친절함과 다정함이 함께 실종되었다. 일단 엄마가 말을 못 하게 되면서 말수 자체가 현격하게 줄었고, 아빠에게 하는 말도 사무적이 되어간다. 하지만 방문 간호사님이 오시면 접대 모드가 된다. 손님이라고 생각하니 친절하고 다정한 말들을 건네고, 치료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스몰토크력을 회복한다. 방문 간호사님이 가신다고 갑자기 싸늘해지면 완전 사이코 같을 테니까 그러지는 않고, 가시고 난 뒤 어느 정도까지는 접대용 말투를 유지할 수 있고 제어 안 되는 험한 말들을 방어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나를 못 믿어서다. 혹시라도 내가 또 엄마를 함부로 대할까 봐, 학대라도 할까 봐, 이성과 판단력( 통제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다.


방문간호사가 처음 방문을 시작할 때 엄마가 의식은 있는데 눈을 뜨지 못할 때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엄마 눈 좀 떠보라면서 엄마를 꼬집었다. 내가 꼬집으면 엄마가 아야, 아야, 하면서 잠시 눈을 떴는데, 그게 아파서, 였을 텐데도 그렇게라도 눈을 뜨게 하고 싶어서, 눈을 영영 감을까봐 무서워서, 그리고 정말 싸이코 같지만 엄마가 아야, 아야 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또 꼬집었다. 꼬집은 자리는 멍이 되었다. 푸르게, 보라빛에서 노란 빛으로 넘어갈 때 방문간호사님이 엄마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그게 방문 프로토콜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주사를 많이 맞아서 멍이 들었나 보네요, 했다. 뜨끔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후회했고 부끄러웠고 겁이 났다. 엄마가 얼마나 아팠을지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게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엄연한 학대였다. 나는 노인 학대로 신고당할까 봐 두려워 아무 말을 못 했다. 목욕은 내가 시키기 때문에 아빠는 엄마 몸에 멍이 든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우울증과 초기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친구가 엄마를 한 대 때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을 때 나도,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부지불식 간에, 아니 알면서도 약자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한낱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면서 감시와 검열 차원에서 방문 간호사님을 오시게 하고 있다.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내 마음이 더 문제다. 내 마음은 가끔 아니 자주 엉망진창이다. 내 마음에도 누가 좀 방문을 해주면 좋겠다. 내 마음을 미리 미리 청소하고, 친절함과 다정함을 회복하게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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