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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1. 2024

남남이었다가 이제는 남매

외동 옆에는 누가 있어줄까?

동생은 내 똘마니였다. 이래 저래 많이 부려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한데, 그때는 아주 당연하게 부려먹었다.


동생은 내 교환원이었다. 개인 휴대폰이 없던 시절 집으로 오는 전화는 몽땅 동생에게 받게 했는데, 이유는 남자친구들에게 오는 전화를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고 나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은 우편배달부이기도 했다. 성적표가 우편으로 배달되던 시절, 선생님이 성적표를 발송했다고 하면 학교에서 일찍 끝나는 동생을 우체통 앞에 서 있게 했고, 그렇게 성적표를 빼돌린 적도 많았다.


공짜로 부려먹기만 한 건 아니었다.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던 시절 응급처치법 중 압박붕대 마는 게 시험이었는데, 집에서 연습할 머리가 필요해서 동생한테 500원씩 주고 동생 머리를 빌려 썼다. 조금 요상한 취미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귀지 파는 것을 좋아했다. 제일 만만한 막내 동생 귀였다. 아프다고, 싫다고 하는 동생에게 500원씩 주고 동생 귀를 파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착취나 횡령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고, 한때는 같이 살면서 나름대로 사이좋은 오누이로 지냈는데, 무슨 일인지는 생각 안 나지만(주로 내가 가해자였으니 피해자였던 동생은 생각날 수도 있음) 대판 싸우고 둘이 헤어졌고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거의 남남처럼 살았다. 서로 연락할 일도 없었고, 명절때도 각자 여행 가는 일이 많아서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였다. 그렇게 남남보다 못하게 지내오다가 엄마가 쓰러지자 우리는 남매 사이임을 자각하고, 지금은 매일 연락하고 주말마다 만나면서 못 했던 남매 놀이를 원없이 하고 있다. 동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동생은 우리 집 보급과 지급을 담당하고 있다. 엄마 간병에, 엄마 집 살림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내주기도 하고, 직접 사가지고 오기도 한다. 요약하면 나는 몸으로 때우고, 동생은 돈으로 때운달까. 동생이 주말마다 오긴 오는데, 엄마는 내가 주로 챙기다 보니 동생이 와도 엄마 얼굴 들여다 보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방에 있다가 밥 먹고 가는 게 다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동생이 힘들까 봐 엄마 간병을 못하게 했는데, 이러다 갑자기 엄마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엄마를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게 동생에게 한이 될 것 같았다. 지금 실어증으로 정상적인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스킨쉽이 유일한 소통 방식이다. 그래서 동생이 오는 날에는 동생이 엄마를 안아서 일으키고,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뒤에서 잡고 있는 운동을 시키고 있다. 크고 나서는 만질 일 없던 엄마를 실컷 만지고 있다.


이제 동생이 오면 설거지도 해주고, 엄마 운동도 시켜주고 하니까 내가 훨씬 편하다. 동생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나 혼자였다면 나는 간병 못했을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 향하는 부모를 바라봐야 하는 슬픔, 신체적, 정신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무게감과 고통을 혼자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동안 남남처럼 살다가 이제서야 비로소 남매가 된 것 같다. 지금 엄마 간병에 있어서 동생은 가장 큰 조력자이고, 많은 부분을 동생에게 의지하고 있다. 내가 동생에게 의지하면 할수록 외동인 우리 딸은 어쩌나, 걱정이 된다. 재정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간병을 해보니까 심리적인 문제가 훨씬 심하다. 심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딸은 자기가 외동이라서 좋다고 했다. 친구들이 동생과 싸우고 동생이 없어졌으면 바라는 거 보면 동생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혼자라서 외롭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딸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도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 혼자라도 외롭지가 않고, 오히려 혼자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좋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데, 나중에도 그럴까? 나중에 부모에 대한 책임도 혼자 져야 한다는 것은 아직 모르겠지? 책임도 독차지해서 좋을리는 절대 없다. 내 딸 곁에는 누가 있어줄까? 형제자매가 없으니 사회적 공동체? 사회적 보장이라도 잘 되어 있어야 할텐데…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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