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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30. 2024

좋은 꿈인데 말 못 하는 이유

남매가 같은 꿈을 꾸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빠가 밭에 갔을 시간이기도 하고, 아빠라해도 아빠는 저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설마 엄마? 아니, 그럴 수 없다. 엄마는 혼자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와상환자다.


가만히 누워서 듣고 있노라니 낯선 소리가 아니라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인데, 탁, 탁, 탁, 경쾌한 칼질이 아니라 둥, 둥, 둥, 소리가 뭔가에 잡아먹히고 남은 진동이 울린다. 엄마의 아침 칼질 소리다. 싱크대 위에서 칼질을 하면 시끄러우니까 층간 소음도 신경 쓰이고 식구들 잠 깨울까봐 도톰한 수건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도마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곤 했다. 근데 엄마라니? 엄마가 어떻게 칼질을 한단 말인가? 꿈인가?


빼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엄마가 맞다. 쪼그려 앉아서 칼질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걷는다. 걸어. 엄마가 걷는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파지고 과호흡에 숨이 막힌다. 기적이 일어나면 이런 기분이구나. 좋기보다는 두려운 마음. 나에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다니. 그래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어.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데 그럴 리 없지.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꾹 누르고 진정하려고 애썼다. 숨은 편안해졌지만 머리가 지끈 아팠다.


역시 꿈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갑자기 엄마가 어떻게 일어나서 걸어. 기적은 무슨. 그래도 잠시지만, 꿈에서라도 엄마가 걷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걸로 만족하자.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꿈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있다. 평소에 꿈도 잘 안 꾸고(기억을 못 하고) 재미로라도 해몽이 궁금한 적도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해몽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찾아보지 않았다. 혹시 나쁜 해몽일까 봐.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죽는 꿈일까 봐. 좋은 해몽이라도 싫다. 엄마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아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인가괜히 헛된 희망도, 공연한 불안함도 남기기 싫었다.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 동생이 왔다. 밥 먹고 설거지를 하던 동생이 갑자기 말했다.


근데 나 며칠 전에 꿈꿨다. 엄마가 걷는 꿈. 다섯 발자국 정도 걷는 걸 봤어. 그리고 뭐가 더 있었는데 며칠 지나서 자세한 건 까먹었네.


말문이 막혔다.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너랑 나랑 같은 꿈을 꿨구나. 이제 우리 남매가 같은 꿈을 꾸는구나. 하긴 적어도 지금 우리의 꿈은 같지. 실은 나도 같은 꿈을 꿨어. 참 신기하지? 엄마가 진짜 좋아지려나? 진짜 걷게 될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을 꿀꺽 삼켰다. 길몽이든 흉몽이든 뭐든 두 배가 될까 두려웠다.


그리고 오늘 새벽, 잠이 안 와서 못 참고 인터넷에서 해몽을 찾아보았다.  


아픈 사람이 일어나 걷는 꿈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의외의 도움을 받거나, 꼬였던 일이 순조롭게 해결될 징조다. 힘들었던 일과 사업의 어려움이 해소되고 일마다 잘 풀리게 될 것을 의미한다.


아픈 사람이 건강해지는 꿈

실제로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징조다.


예지몽도 믿고 해몽 같은 것도 좀 믿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지금 얼마나 희망차고 좋겠어? 나란 인간 참 그게 안 된다. 그렇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싶나? 아니다. 그게 아니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면서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인지 알아버려서 그렇다. 좋은 꿈이라 해도 마냥 좋지가 않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그냥 마음 속으로만 설마? 에이, 아닐거야, 그래도 혹시? 몇번씩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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