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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4. 2024

그건 토마토가 아니라 도마도

도마도랍니다

엄마 이거 뭐야? 엄마 손에 토마토를 쥐어주었다. 아이들 촉감놀이하듯 엄마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토마토,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늘 하는 행동인데 계속 실패하고 있다. 손에 뭘 쥐어주면 위태롭게 잡고는 있으나 손가락 근육을 움직여 만지작거리지는 못한다. 결국 내가 묻고 내가 답해야 한다. 엄마, 이거 토마토야. 토마토.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토마토.


토마토의 시간이다. 어제부터 아빠가 밭에서 토마토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매끈하게 예쁘지는 않지만, 못 생겨서 더 사랑스러운 토마토.


엄마는 해마다 토마토를 한 박스씩 사서 내게 보내주곤 했다. 그놈의 몸에 좋다고, 매일 몇 개씩 생으로 먹으라고 했다. 나는 짜증을 냈다. 내가 싫어하는 토마토라서 짜증, 몇 개도 아니고 한 박스라서 짜증을 냈다. 이 많은 거 어떻게 다 먹으라고. 맛 없다고! 엄마는 건강을 말하고 나는 입맛을 내세우며 강대강 대립을 하곤 했다. 그렇게 엄마한테 짜증을 퍼부었지만 엄마가 보내준 걸 썩힐 수는 없고, 버리는 것은 더 일이고, 주위에 사는 친구들 막 퍼주고, 나머지는 옛날 할머니가 해준 것처럼 슬라이스 해서 설탕 뿌려서 먹었다.


내가 토마토를 먹는 유일한 방법, 토마토 설탕절임과도 불화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부와 여행 그 사이 어디쯤의 이유로 미국에서 머물 때 여든이 넘은 노부부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back yard라고 불리는 할머니의 텃밭에서 토마토가 매일 한 바구니씩 나왔다. 할머니가 마음껏 따 먹으라고 했고, 카운터에 매일 쌓여가는 토마토를 보면서 의무감이 발동, 토마토를 먹기로 했다. 할머니가 외출했을 때 토마토 설탕 절임을 했는데 할머니에게 서프라이즈로 드리려고 큰 통으로 한 통을 해서 냉장고에 떡하니 넣어두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그 통을 열어보고는 정말 역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게 뭐냐? 토마토에 설탕을 넣으면 어떻게 하냐?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면 영양소가 다 파괴된다. 영양가를 떠나서 토마토에 설탕 뿌린 건 자긴 절대 못 먹는다고 해서 그때 너무 큰 충격받았다. 온 세계인들이 토마토를 설탕에 절여 먹는 게 아니었어? 안 그래도 안 좋아하는 토마토가 나에게 모욕감을 줬기에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토마토를 멀리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토마토를 만났다. 이제는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아빠는 텃밭에서 매일 토마토를 들고 들어올 거고, 아픈 엄마는 토마토를 너무 좋아하고, 나는 엄마, 아빠 밥을 책임지는 우리 집 셰프니까 어떻게든 토마토로 요리를 해야 한다. 그게 토마토 설탕 절임일 수는 없다. 엄마는 설탕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고, 아빠는 설탕을 사랑하지만 당뇨가 있다. 고심하여 선택한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국 요리이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중국 요리인 토마토계란볶음(시홍쯔지단)과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화된 멕시코) 요리이자 역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멕시코 요리 살사 소스다.


살사는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토마토 잘게, 양파 잘게 썰어서 소금, 후추로 간 맞추고 올리브유과 레몬즙만 뿌리면 된다. 바질이 들어가면 금상첨화지만 바질이 우리 집에, 아빠 텃밭에 있을 리 없다. 아쉬운 대로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초록색과 매운맛을 추가했다. 소스로 먹을 게 아니라 그냥 샐러드처럼 퍼먹으려고 토마토를 다지지 않고 그냥 작은 큐브처럼 썰었다.


엄마 이거 먹어봐! (미국에서 배운) 멕시코 음식이야. 숟가락으로 듬뿍 퍼서 입에 넣어주었더니 처음 먹어본 것일 텐데도 엄마가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 먹는다. 엄마 지금 먹는 이거 뭐라고? 대답이 없다. 또 내가 대답한다. 토마토야. 토마토! 아빠가 농사 지은 거야. 엄마가 좋아하잖아! 역시 반응이 없다. 내가 엄마에게 말하기를 강요하거나 질문을 같은 걸 하면 모기 같은 소리로 응, 아니, 라도 해주는데 오늘은 그것도 없다. 정말 너무하네. 딸한테 얻어 먹었으면 그 정도는 대답해줄 수 있잖아.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엄마, 이거 토마토가 아니라 도마도지. 도마도? 그랬더니 응, 하는 게 아닌가? 맞다. 엄마는 토마토를 도마도라 불렀다. 기가 막혀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앞으로 토마토 말고 도마도라고 부를게! 엄마가 좋아하는 도마도 많이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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