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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15. 2024

어떤 시계로 살고 있을까?

초복이라는 알람

오전에 외출했던 아빠가 이번에는 토종닭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오늘 닭집에 사람이 많더라고.

아, 오늘 초복이구나. 근데 오늘 평소보다 닭이 좀 작네.

오늘 대목이라 닭을 다 못 키우고 잡은 게지.


오늘 대목을 맞은 닭집 아줌마는 엄마보다 한 살 위로 오랜 친구다. 오후에 또 나갔던 아빠가 수박 한 덩어리를 들고 왔다.


샀어?

사긴.

그럼?

줬어.

누가?

누가.


집 앞 과일가게 아저씨가 꼭지가 말랐다고(상품성이 떨어졌다는 의미) 엄마 주라고 줬다고 한다. 집 앞 과일가게 아저씨는 아빠 초등학교 동창이다.

 

수박은 큐브로 잘라서 냉장고에 넣고, 닭은 집에 있는 삼계탕 재료, 황기, 엄나무, 대추, 마늘, 양파, 파뿌리, 정작 인삼은 없어서 못 넣은 이름뿐인 삼계탕을 끓이고 있다.


시골(논밭 펼쳐진 찐 시골은 아니지만 시골 정서가 있는 도농경계의 지방소도시를 편의상 시골이라 칭하고 있음)에 살면 좋은 점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제철음식을 먹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처럼 가만있어도 옆에서 챙겨주는 일이 많고, 동네 가게 앞만 지나가도 무슨 날인지, 지금 뭐가 제철인지 알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의 리듬이 생기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면서 계절 감각이 살아난다. 오늘 아빠가 들고 온, 이웃에서 챙겨준 수박과 닭을 보면 오늘 초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초복날이면 엄마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초복에서 열흘 지나면 중복이고, 중복에서 또 열흘 지나면 말복이고, 말복 지나면 공기가 달라지고, 더위도 슬슬 뒷걸음질하면서 금방 선선해진다니까. 가만히 느껴봐.


한참 더워 죽겠는데 여름의 끝을 말하는 엄마의 말을 이해 못 했다. 나이가 들고 차츰 아침잠이 줄고 아침 산책을 하면서 하루하루아침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엄마가 말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절기에 따른 먹거리 문화 등은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삶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엄마의 병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어서 자주 나를 암흑 속으로 몰고 가지만, 엄마에게 배운 계절 감각에 의지하여 어둠 속을 빠져나오곤 한다.


오늘 문득 깨달은 건데, 하지 지나고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자연스러운 계절 감각과 생체 리듬이었다. 하지 지나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낮이 줄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뜨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였다. 도시에 살고  바쁠 때는 배꼽시계나 있었지,  마저도 오작동이 많았는데, 이제는 정교한 자연 시계로 살아간다. 정작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엄마는 삼계탕과 수박을 먹었지만 계절을 감각하는  같지 않다. 지금 엄마는 어떤 새로운 시계로 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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