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옥수수는 무엇이었나
올 게 왔다. 드디어 옥수수가 들이닥쳤다. 열흘 전부터 아빠가 옥수수 수확할 거라고 예고했긴 했어도 막상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옥수수를 보니 막막하다.
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옥수수가 반갑지 않다. 옥수수가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 옥수수에 열과 성의를 다하기가 어렵다. 내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사이 아빠는 옥수수를 까기 시작했다.
바로 삶으려고? 좀 뒀다가 삶아. 냉동고도 비우고 청소도 해야 하고.
바로 삶아야 해. 안 그러면 맛없어.
미운 놈이 미운 짓 한다더니(이런 말 있나?), 옥수수는 생각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고구마 같은 건 저장해야 단맛이 생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옥수수는 시간이 지나면 껍질이 딱딱해지고 단맛이 빠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그런가? 빨리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 같다. 마음이 바빠진다.
소금 넣어야지.
바로 삶으면 아무것도 안 넣어도 맛있어.
단 건 안 넣어도 소금은 조금 넣어야 하지 않나?
아빠는 끝까지 소금을 넣지 않는다. 어차피 난 안 먹을 거니까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도 없지. 옥수수를 삶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신경을 껐는데
옥수수 삶는 냄새가 신경을 깨운다. 점심때가 다 돼서 그런가? 냄새는 좋네. 내가 코를 벌름거리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아빠가 삶은 옥수수 하나를 건네준다. 예의상 거절은 못하고 손가락으로 옥수수 알갱이 하나를 털어서 입에 넣었다. 톡. 얇은 껍질이 경쾌하게 터지면서 쫀득한 속살이 밀려 나왔다. 고소하고 달큼하고 간간하고. 내가 먹던 그 옥수수 맛이 아닌데?
뭐 넣었어?
아니 아무것도 안 넣었어.
단맛도 나고, 간간한데.
바로 삶으면 그렇다니까.
지금까지 따자마자 바로 삶은 옥수수를 먹어 본 일이 없었나 보다.옥수수는 밭에 솥을 걸고 쪄야한다는 말이 왜 나온지 알겠다. 맛만 보려고 했는데 반쪽을 잘라먹고, 나머지 반쪽도 마저 먹고, 옥수수 하나를 통째로 들고 먹었다. 그리고 밥 대신 옥수수 세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내 인생에서 옥수수를 이렇게 많이 먹은 일이 있었나? 그동안엔 기껏해야 반쪽이었다. 그것도 누가 주면 꾸역꾸역. 지금까지 내가 알던 옥수수는 도대체 뭔가? 늦게 삶아서 그런 가 보다. 그동안 엄마가 옥수수를 바로 따서 택배로 보내주면 빨리 받아도 하루 뒤에야 받을 수 있다. 엄마가 옥수수를 보내고 바로 삶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옥수수 까고 삶는 게 피곤한 일이어서 하루 묵혔다가 삶았다. 그래서 맛이 없었나 보다. 이러니까 단맛이 빠지고 말라서 뉴슈가니 뭐니 넣어서 만든 인위적인 단맛을 내는 건가 보다. 역시 제로 마일리지 음식이 최고로구나. 내 배를 채우고나서야 옥수수 귀신 엄마가 생각나 반쪽을 엄마 손에 쥐어 주었다. 옥수수 귀신이 혼자 옥수수를 못 먹는다. 옥수수 쥔 엄마 손을 끌어올려 엄마 입에 가져다 댄다.
엄마, 먹어봐. 아빠가 농사를 잘 지었는지.
엄마가 옥수수를 쥐고 먹는 모습이 다람쥐처럼 귀엽다. 아파도 먹는 건 정말 한결같이 잘 먹는다. 잘 먹는 모습 보니까 또 먹고 싶다. 옥수수가 왜 구황식물인지 알겠다. 밥 하기 싫고 불 앞에 서 있기 싫은 여름철, 그리고 장마철, 그렇다고 굶으면 견딜 수가 없는 나 같은 간병인에게 옥수수가 딱이다. 배고픔을 구하고 밥 하는 시간, 차리고 먹는 시간과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다. 아주 요긴한 구황작물 맞다.
그리고 이건 팁이라고 해야 하나, 사족을 덧붙이면 따자마자 바로 삶은 옥수수가 맛있고, 살짝 태운 옥수수가 더 맛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태우기는 그렇지만 불에 올려놓고 깜빡해서 냄비가 탔다면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고 기뻐하길. 불맛, 훈제맛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