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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17. 2024

옥수수가 나를 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옥수수는 무엇이었나

올 게 왔다. 드디어 옥수수가 들이닥쳤다. 열흘 전부터 아빠가 옥수수 수확할 거라고 예고했긴 했어도 막상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옥수수를 보니 막막하다.


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옥수수가 반갑지 않다. 옥수수가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 옥수수에 열과 성의를 다하기가 어렵다. 내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사이 아빠는 옥수수를 까기 시작했다.


바로 삶으려고? 좀 뒀다가 삶아. 냉동고도 비우고 청소도 해야 하고.

바로 삶아야 해. 안 그러면 맛없어.


미운 놈이 미운 짓 한다더니(이런 말 있나?), 옥수수는 생각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고구마 같은 건 저장해야 단맛이 생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옥수수는 시간이 지나면 껍질이 딱딱해지고 단맛이 빠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그런가? 빨리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 같다. 마음이 바빠진다.


소금 넣어야지.

바로 삶으면 아무것도 안 넣어도 맛있어.

단 건 안 넣어도 소금은 조금 넣어야 하지 않나?


아빠는 끝까지 소금을 넣지 않는다. 어차피 난 안 먹을 거니까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도 없지. 옥수수를 삶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신경을 껐는데

옥수수 삶는 냄새가 신경을 깨운다. 점심때가 다 돼서 그런가? 냄새는 좋네. 내가 코를 벌름거리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아빠가 삶은 옥수수 하나를 건네준다. 예의상 거절은 못하고 손가락으로 옥수수 알갱이 하나를 털어서 입에 넣었다. 톡. 얇은 껍질이 경쾌하게 터지면서 쫀득한 속살이 밀려 나왔다. 고소하고 달큼하고 간간하고. 내가 먹던 그 옥수수 맛이 아닌데?


뭐 넣었어?

아니 아무것도 안 넣었어.

단맛도 나고, 간간한데.

바로 삶으면 그렇다니까.


지금까지 따자마자 바로 삶은 옥수수를 먹어 본 일이 없었나 보다.옥수수는 밭에 솥을 걸고 쪄야한다는 말이 왜 나온지 알겠다. 맛만 보려고 했는데 반쪽을 잘라먹고, 나머지 반쪽도 마저 먹고, 옥수수 하나를 통째로 들고 먹었다. 그리고 밥 대신 옥수수 세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인생에서 옥수수를 이렇게 많이 먹은 일이 있었나? 그동안엔 기껏해야 반쪽이었다. 그것도 누가 주면 꾸역꾸역. 지금까지 내가 알던 옥수수는 도대체 뭔가? 늦게 삶아서 그런 가 보다. 그동안 엄마가 옥수수를 바로 따서 택배로 보내주면 빨리 받아도 하루 뒤에야 받을  있다. 엄마가 옥수수를 보내고 바로 삶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옥수수 까고 삶는  피곤한 일이어서 하루 묵혔다가 삶았다. 그래서 맛이 없었나 보다. 이러니까 단맛이 빠지고 말라서 뉴슈가니 뭐니 넣어서 만든 인위적인 단맛을 내는 건가 보다. 역시 제로 마일리지 음식이 최고로구나.  배를 채우고나서야 옥수수 귀신 엄마가 생각나 반쪽을 엄마 손에 쥐어 주었다. 옥수수 귀신이 혼자 옥수수를  먹는다. 옥수수  엄마 손을 끌어올려 엄마 입에 가져다 댄다.


엄마, 먹어봐. 아빠가 농사를 잘 지었는지.


엄마가 옥수수를 쥐고 먹는 모습이 다람쥐처럼 귀엽다. 아파도 먹는 건 정말 한결같이 잘 먹는다. 잘 먹는 모습 보니까 또 먹고 싶다. 옥수수가 왜 구황식물인지 알겠다. 밥 하기 싫고 불 앞에 서 있기 싫은 여름철, 그리고 장마철, 그렇다고 굶으면 견딜 수가 없는 나 같은 간병인에게 옥수수가 딱이다. 배고픔을 구하고 밥 하는 시간, 차리고 먹는 시간과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다. 아주 요긴한 구황작물 맞다.


그리고 이건 팁이라고 해야 하나, 사족을 덧붙이면 따자마자 바로 삶은 옥수수가 맛있고, 살짝 태운 옥수수가 더 맛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태우기는 그렇지만 불에 올려놓고 깜빡해서 냄비가 탔다면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고 기뻐하길. 불맛, 훈제맛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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