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오디세이

가지가지했다

by 소요

감자, 옥수수, 콩, 호박…


엄마 집에 와 있으면서 아빠가 농사지은 것들, 엄마는 환장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입에도 안 대던 밥솥에 찐 감자에 소금, 후추 뿌려서 차가운 플레인 요거트를 얹어 함께 아침으로 먹는다. 푹푹 찌는 한낮에 밥 하기 싫고 밥 먹기 싫을 때는 옥수수를 쪄서 노트북 앞에 쪼그려 앉아 유튜브 보면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콩은 콩국물로 만들어 시원하게 국수 말아먹고, 둥근 호박은 새우젓에 볶아도 먹고, 오늘 아침에는 소고기와 함께 호박국을 끓여 한 사발씩 드링킹 했다.


세월이 흘러 내 입맛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세월 동안 종자개량을 통해서 쟤네들이 내 입맛에 맞게 변한 것일 수도 있고, 엄마가 해주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먹는 방법의 변화로 먹게 된 것도 있다.


어쨌거나 내 식단에 크나큰 변화가 생긴 셈이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래서 엄마집에 와서 살지 않았다면, 아빠가 밭에서 키우지 않았다면 사 먹지 않았을 음식을 해 먹는 사이 기세등등하던 여름도 살짝 기울고 있다. 물론 아직 센 척 하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 아직 서먹한 채로 내 주위를 겉돌고 있는 것이 있다. 가지가 그것인데,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안 먹던 것들도 좋아진다는 법칙이 나에게도 작용하여 잘만 해 놓으면 안 먹진 않는 수준이 되었다. 밭에 간 아빠는 이삼일에 한 번씩 가지를 들고 와서 식탁에 보란듯이 올려 두었고, 가지를 치워야 하는 임무를 띤 나는 먹진 않아도 엄마 어깨너머로 봤던 방식으로 찜솥을 올려 가지를 쪘다. 처음에는 덜 쪘는지 껍질이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아서, 다음에 조금 더 쪘더니 이번에는 너무 쪄서 흐물거렸다. 가지는 찌는 시간이 중요한데, 그 황금시간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좀 간편하게 해 본다고 전자레인지에도 쪄보고 아빠가 시킨 대로 밥솥에도 쪄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도저히 이 방식과는 친해질 수 없어 이번엔 구워 보기로 했다. 요리 장인이라도 된 것처럼 더운 불 앞에서 하나하나 뒤집으며 구워서 무쳤는데, 들인 품에 비해 맛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사이 가지 레시피를 얼마나 검색했는지 알고리즘에 다양한 가지요리법이 매일 떴고 그 와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콩가루를 묻혀서 찌는 방법이었다. 가지를 썰어서 소금에 절여서 물은 짜내고 생콩가루 묻혀서 쪄내고 양념에 무치는 레시피인데, 그대로 따라 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튀김이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그 흔한 돈가스도 튀겨본 적이 없고, 나도 엄마의 영향으로 집에서 튀김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튀김은 실로 대단한 도전이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어서 기다리던 딸이 왔을 때 큰 마음먹고 가지탕수육을 하기로 했다. 대망의 그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가지를 튀기다가 그만 물 묻은 손으로 튀김 냄비 가까이에 갔다가 뜨거운 기름이 팔에 튀어 팔에 큰 화상을 남겼고, 아직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


가지튀김을 마지막으로 가지에 대한 도전, 모험, 탐험의 한 달간의 대장정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모험 끝에 귀향한 오디세우스처럼 나도 결국 가지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가지찜으로 돌아왔다. 많은 실패 끝에 적당한 정도로 찔 수 있게 되었고, 역시 가장 기본적인 레시피, 엄마의 레시피가 최고더라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가지 오디세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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