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으로 힘겨운 나날들
학교 빠지고 엄마한테 와주면 안 될까?
광복절 내려와서 다음날 학교 빠지고 주말까지 있다가 가 달라는 부탁을 딸에게 했다.
그냥 결석은 안 되고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해야 할 거 같은데…생각해 볼게.
며칠 전에 그렇게 말해놓고는 사실 기대 안 했다. 이것도 기질로 타고나는 건지 결석하면 큰일 나는 걸로 생각하는 쌍팔년도 사고방식을 가진 딸에게는 무리한 부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마음이 딸에게 가닿았을까?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딸이 나에게로 왔다. 대신 현장체험학습 보고서는 거짓으로 쓰면 안 된다고 근처 유적지나 관광지 어디든 다녀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딸은 나에게 빛이요 생명이다. 원래도 그런 존재였을텐데 딱히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가 엄마 아프고 나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최근 말도 못 하고, 붙잡고 서는 것도 힘들어져서 밥 먹을 때 빼고 거의 누워 지내는 엄마, 간병에 지쳐가는 나와 그런 나를 무력하게 바라보며 갑자기 늙어가는 아빠만 있는 집은 한낮에도 어둡다. 오죽하면 나는 오래된 집의 조명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딸과 남편과 반려견까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두웠던 집이 갑자기 환해진다. 딸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엉뚱하고 솔직한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같이 책을 읽고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장 난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엄마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동안 내가 주지 못했던 따뜻하고 체온과 다정한 말을 건네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목이 마른 것도 모르고 그냥 견뎌내야만 했던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다. 나와 달리 워낙에 따뜻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 아니면 간병에 방전되지 않은 영혼일 수도.
딸과 남편이 오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모든 것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모든 것은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딸이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내 마음과 집안은 다시 서서히 어두워진다. 수리된 줄 알았던 조명이 다시 고장난다. 고장난 나의 감정은 더 깊은 우울감을 찾아 어둠의 항해를 다시 시작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은 나를 궤도에서 이탈시킨다. 딸이 다녀가면 후유증이 대단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한참 걸린다. 그 사이 깨져버린 내 감정의 파편은 엄마와 아빠에게 튄다. 그래서 딸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대기하고 있는 슬픔에 응시하게 된다. 딸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눈길을 보낸다. 엄마가 우리 곁에 오래 있어주기를 바라는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성마른 마음도 튀어나온다. 내 마음은 모순적이다. 이중적이다. 양가감정의 뒤섞임에 복잡하다. 그래도 눈을 감고 앉아있는 엄마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아빠는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고, 딸은 휴대폰으로 응원봉과 포토카드를 살펴보며 아이유 콘서트 갈 준비를 하고 있고, 남편이 산책 가자고 신호를 보내고 보채는 반려견을 달래면서 야구를 보고 있고, 나는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 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단순한 기쁨, 행복, 평화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