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도 쉽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다
엄마 좀 어떠셔?
라고 많이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풀어서 말하면 어느 날은 조금 나은 듯 어느 날은 아닌 듯을 반복하면서 큰 틀에서 엄마는 안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동안 눈도 잘 뜨고, 몇 마디 말도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웃기도 하고(옥수수 먹다 옥수수 알이 떨어져서 옥수수 알이 추락했다고 했다니 엄마가 파안대소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 먹을 때까지 오래 깨어있던 엄마가 최근 며칠 동안 눈 뜨는 시간이 점점 줄더니 오늘 아침에는 스스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래도 아빠와 나는 엄마를 일으켜 욕실로 데려가 씻기고(속으로 이렇게 씻기는 것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고), 밥을 먹이고(눈을 감고도 밥은 잘 먹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냐, 싶었고), 앉혀놓았고 엄마는 자신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볼일 다 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매일 다르긴 하지만 내 생각에 엄마가 적어도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시간에는 엄마에게 계속 말 걸고, 만지고, 간지럼 태우고, 마사지하고, 일으켜 세우고 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하지만 혼잣말을 하는 것도 지겨워졌고, 손등과 허리가 아파서 무리하게 일으키다가는 내가 다칠 것 같아 두려웠다. 무엇보다 내 욕심에 기운 없는 엄마를 자꾸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도 기운 없을 때는 눈 뜨는 것도, 입 뻥긋한 것도 힘든데 엄마는 오죽하랴. 그래서 엄마도 편하게 해 주고, 나도 편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눈을 감으면 그냥 자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저렇게 한정없이 자다가도 기운을 차리면 갑자기 눈 뜨고 말도 하고 그랬으니까. 물론 내가 지치고 힘들고 아프니까 나의 나태함을 합리화한 생각일 확률도 매우 높다:
나와 달리 아빠는 엄마가 자면 자꾸 깨우려고 한다. 엄마가 눈을 감고 있는데도 계속 말을 걸고, 자꾸 볼을 톡톡 치고, 발 들어보라고 하고, 무릎이 구부러지는데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그걸 보고 있는 것도 힘들어서 아빠한테 말했다. 그냥 자게 두자고, 엄마가 눈 뜰 수 있는데 안 뜨는 게 아니지 않냐고,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아빠는, 아니라고, 너무 많이 잔다고, 자꾸 깨워야 한다는 게 아빠 생각이다.
나는 엄마를 살리고 싶지만 억지로 붙잡고 늘어지고 싶지는 않고, 아빠는 어떻게라도 조금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은 것 같다. 그 마음의 차이가 우리의 대처방식을 가르고 있다. 계속 자면 내 마음도 불안하다. 저렇게 자다가 영영 눈 못 뜨고 그냥 떠나버릴까 봐. 하지만 자는 사람 괴롭히는 것도 더는 못 하겠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엄마에게는 뭐가 더 좋은 걸까? 엄마는 죽는 것도 쉽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생각의 차이, 행동의 차이가 엄마에게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도대체 어디쯤 가 있는 걸까? 내 마음은 엄마 찾아 삼만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