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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2. 2024

거기 하이드 씨 나랑 얘기 좀 해요

아침에 만난 지킬과 하이드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에게 가서 무릎 꿇고 엄마 손을 잡고 노래를 불러준 지 한 달 정도 되어간다. 오늘에서야 가사를 틀리지 않고 끝까지 완벽하게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기념으로 써본다)


바라보는 것도 사랑

기다리는 것도 사랑

그리움에 가슴 저린 것도
 내겐 사랑입니다.

계절이 오듯이 그래

매일 숨 쉬듯이 그래

이유 없이 시작한 이 마음은

그래 사랑입니다.

나를 살게 하는 사랑

아무 이유 없는 사랑

거기에 있어요

멀어지지 마요.

내가 아파할게요

그래 사랑입니다.


나직이 담담하게 부르다 보면 내 안에 잔잔한 시내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시내는 후렴구에 이르러서 눈물샘으로 솟구치기 시작하고,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래를 마치게 된다. 이어 눈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을 한다. 언제라도 엄마가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말 못 한 거 후회할까 봐 아침마다 일어나서 하는 나의 고백이다.


엄마 사랑해.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워.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았어.


엄마 미안해.

엄마한테 잘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돼.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자꾸 화가 나.

내가 못 되게 군 거 용서해 줘.

오늘은 안 그러게 엄마가 도와줘.

오늘 하루 잘 지내보자. 알았지?   


눈물 탓인지 이렇게 하면 나는 정화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엄마를 눕혀 놓고 밥을 하는 사이 밭에 갔던 아빠가 돌아오고, 아빠와 나는 2인 1조가 되어 엄마를 욕실로 데려간다.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가 무거웠다. 아빠가 앞에서 내가 뒤에서 엄마 허리를 잡아주면 잠시는 설 수 있었던 엄마의 무릎이 휘청거렸고, 욕실까지 몇 걸음도 버거웠다. 엄마를 뒤에서 잡아보면 안다. 오늘은 엄마 몸이 가볍다. 오늘은 엄마 몸이 무겁다. 컨디션이 좋으면 몸이 가뿐하고, 안 좋은 날은 엄마가 무릎을 세우지 못하면서 내가 힘으로 엄마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기에 안다. 최근에는 엄마 몸이 계속 무거워졌고, 허리에 조금씩 무리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80킬로짜리 쌀가마니를 들었는데 미끄러져 나가는 걸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씨x, 속으로 욕이 나왔다. 이제 그나마 하게 된 것도 어려워진 건가,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우리 모두 다치고 끝나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감당할 수 없는 쌀가마니를 내팽개치고 싶었다.


아... 안 되겠어.


크게 다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걷기 포기를 선언했고, 휠체어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할 때 이미 허리를 삐끗했는지 통증이 시작되었다. 내가 휠체어를 가지고 오는 사이 아빠가 혼자 엄마를 번쩍 들어 옮기기를 시도하고 있었고, 엄마 다리는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빠에게 소리쳤다.


안 돼, 혼자서 힘으로 그러지 마. 이러다 우리 모두 다쳐. 그러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끝이라고.


그렇게 씩씩거리면서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서 욕실에 데려와서 앉혀놓고 엄마를 씻기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물이 얼굴에서 가슴골을 타고 줄줄 흘렀다. 휘청거리는 몸, 풀린 눈동자, 벌어진 입 속의 갈라진 혀가 보이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허리에서 발목까지 찌릿찌릿 거리는 통증이 화를 더욱 돋우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싫었다. 엄마도 아빠도 보기 싫었다. 도망쳐야 했다. 평소와 달리 빨리 건성으로 목욕을 마치고, 방에 와서 드러누웠다.


내가 화난 건 엄마가 더 안 좋아져서가 아니다. 또 다른 나, 하이드가 튀어나온 것이다. 노래 부를 땐 엄마가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라더니 이제는 엄마가 나를 죽게 할지도 모른다며 엄마를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다. 이런 내가 밉다. 이런 내가 싫다. 나는 왜 이렇게 못 돼먹었나? 내가 선하고 착한 인간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나 자주 출몰하는 하이드라니. 내 안의 하이드를 완전히 몰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악한 본성의 하이드도 나다. 그 존재를 부정할 마음은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는 하이드와 비교적 평화로운 공존을 해왔고 성공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안 좋아질 때마다, 엄마를 돌보는 일이 나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이를 때마다 하이드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혼자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혹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의 도움으로 잘 달래서 돌려보내곤 했다. 하지만 하이드는 더 자주, 더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튀어나오고 있고 더 강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은  안의 어딘가에 숨어있는 하이드 씨에게 정중하게 부탁하고 싶다. 제발 아무 때나 갑툭튀 하지 말고 나와 조용히 먼저 만나요. 성부터 내지 말고 얘기  해요. 얘기  들어줄게요. 그리고  안의 지킬에게도 말하고 싶다. 너는 지혜롭고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야. 갑자기 하이드가 나타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압도당하지 말고 심호흡하고 침착해져야 .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고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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