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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3. 2024

고추가 뭐길래

이 난리냐 싶지만 또 그럴 만 하기도

요즘 아빠는(시골은) 고추 따서 말리느라고 바쁘다. 햇빛에 널어 말리는 태양초는 요즘 같이 갑자기 소나기 내리는 날씨에는 어림도 없고, 천상 건조기 신세를  수밖에 없는데 우리 먹을 것만 겨우 농사짓는 초보 농부인 아빠에게 고추 건조기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건조기를 보유한 프로 농사꾼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신세다.


고추 말릴 때 우리 고추도 같이 말려달라, 여기저기 연락을 해두었던 거 같고 새벽 댓바람부터 전화기가 울려댄다. 구든 오늘 고추 따서 건조기 돌릴 거니까 고추 말릴 거면 가져와라, 하면 꼼짝없이 아빠도 그집 일정에 맞춰 고추를 따고 씻어서 가져가야한다. 남의 집에 우리 고추만 덜렁 맡기고 오는 게 아니라   고추도 따고 씻는 일을 돕고 밥도 사주고 와야하니까 오라는 시간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선다. 고추 건조기라는  나도 보지는 못했는데 워낙 커서 대량으로 들어가고  3 온종일 돌려가며 말리는 모양이다. 그니까 고추 맡기고 3 후에 다시 찾으러  우리 고추만 덜렁 찾아 오는  아니라 그집 고추 뒷정리해주고   사주고 온다. 건조기 빌려 는 대가로 돈을 줘도 친구들이 받질 않으니 품으로 건조기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프로 농사꾼들과 매일 접선하고 있는 아빠 말에 의하면 올해는 고추 농사가 잘 됐다고들 하고 아직 금(가격)이 매겨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가격이 없을(가격이 쌀) 전망이라고 한다. 농사는 참 어렵다. 흉년이 들면 팔게 없어서 힘들고, 풍년이 들면 가격이 싸서 팔아도 많이 안 남아서 힘들다고 한다.


고추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어쩌고 먹고 사는지  관심없다가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육아의 어려움은 커져서 엄마에게 징징거리기도  겸 매일 전화를 했는데(엄마 쓰러지기 직전까지 그랬었고) 그때 엄마랑 서로 먹고사는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딸이 태어난   가을에 고추 값이 굉장히 비쌌다. 그땐 아빠가 농사를 지을 때도 아니고 생돈 주고 고추를  먹던 때다. 김치를 많이 해서 주위에 퍼주는 것을 재미로 삼던 엄마는 여느 가정집보다는 훨씬 많은 고추를 대량으로 사들였는데  해에는 워낙 비싸기도 하고 돈을 줘도 좋은 고추(엄마만의 기준이 있었는데 농약 많이  치고, 깨끗하고, 태양초 등등) 사들이기도 어려워서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고추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때 생각했다. 아니 고추가 도대체 뭐길래 엄마를 저렇게 힘들게 하나, 고추가 얼마나 중요하면 하루웬종일 고추 생각만 까. 고추가 들어온 것도 17세기 초반인가 그렇고, 그전에는 고추 없이도 잘만 살았을 텐데, 고춧가루 없이  수는 없는 건가? 고추도 그렇지 17세기에 들어왔으면 이제  땅에 적응할 법도 한데 유독 병치레많이 하고, 농약도 많이 쓴다. 고추 는 삶은 매운 좋아하는 나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저렇게 고추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골치를 썩느니  먹고 말지 하면서 대안으로 떠올린  백김치다.


엄마한테 고추가 비싸니   먹고, 백김치를 만듭시다, 제안을 했는데 엄마는 백김치는  번도  해봤다면서 자신없어 했다. 백김치가 있으면 돌쟁이 손녀도  먹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제야 솔깃해서는  엄마 난생처음으로 백김치를 담갔다. 백김치 담그는 법을 어디서 배웠는지 제대로 하려니까 , 대추, 석이버섯 이런 것을 었고, 그럴 바에는 고춧가루가 싸게 먹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딸이 태어난 , 우리  백김치의 원년이 되었고 맛도 있었는데, 그게 전무후무 유일한 우리집 백김치가 되었다.  밥을 먹기 시작한 돌쟁이가 백김치가 아니라 고추가루 팍팍 들어간 빨간 김치를 좋아하는 바람에 엄마의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김치를 먹기 시작한 딸은 할머니 김치만 있으면 밥 한그릇 뚝딱이다. 아무튼 그해 고추로부터의 독립운동은 싱겁게 끝났고, 여전히 우리의 식생활은 고추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엄마, 고추가 일곱 근 이래. 청양고추가 두 근이고. 그거면 돼? 김장할 수 있냐고?

응, 그거면 돼!


컨디션이  좋은지 하루종일 입을  닫고  마디도 ()하던 엄마가 고추에는 입을 열었다. 그만큼 엄마에게 중요하단 얘기다. 지난가을 엄마가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모여 김장을 했다. 그래도 작년에는 엄마가 옆에 앉아서 있었는데, 올해는 그러기도 어려울 것 같다. 엄마 없이  김장을  엄두도, 의욕도 안 나고 재미도 없지만, 우리 모두 엄마 김치 없이 밥을  먹으니 어쨌거나 김장을 하긴 해야  것이다.  김장의  번째 재료 고추가 준비되었고 ( 번째 재료 준비는 마늘인데, 그건 봄에 준비 끝났고) 이제 고추 뽑은 자리에 배추를 심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 니 봄에 마늘 사는 것으로 시작, 여름에 고추, 가을에 배추와 기타 재료들을 준비하니 김장1 내내 준비하는 셈이다.  먹고 살기 힘들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게 사는 재미인 것도 같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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