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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5. 2024

우리집 깻잎논쟁

그건 선물이었네

아빠 밭에서 깻잎 좀 따 와!

뭐 하게?

깻잎지 만들려고 그러지.


그리고 한 시간 후에 아빠는 산타할아버지처럼 깻잎 한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들어왔다.


아빠와 나의 ‘좀’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나의 ‘좀’은 깻잎지 한 통 정도 담글 분량을 말하는 것이었고, 아빠의 ‘좀’은 1년 먹을 깻잎을 삭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같이 산지 반년이 훌쩍 넘어도 우리 사이의 언어에는 이만큼의 간극이 있다.


‘삭힌다’라는 말이 내 삶에 이렇게 훅 들어올 줄 몰랐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몰라도 뭔가를 오래 먹을 수 있도록 발효시켜 저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것은 홍어로, 우리 식구 모두는 삭힌 홍어를 매우 좋아한다. 근데 우리가 오늘 삭혀야 하는 것은 홍어가 아니라 깻잎이다. 깻잎을 삭힌다는 개념은 작년에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알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뇌출혈 수술이 잘 끝나고 예후가 좋아 집에서 어느 정도 살림이 가능할 때였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깻잎을 소금물에 잔뜩 삭혀놓았는데, 그걸 몇 묶음 건져서 간장, 액젓, 들기름, 다진 마늘에 물 자박자박하게 넣고 끓였는데, 그 깻잎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흔한 깻잎지가 아니었다. 은은하고 부드러워서 고급스러운 천상의 맛이었다. 아빠가 극찬했다고 자랑하던 엄마 목소리가 그립다. 엄마가 평생 깻잎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먹을 때 거추장스러워지는 양념이 싫어서 연구하고 실험해서 만든 레시피라고 했다. 엄마는 미처 이름을 붙이지 않아서 급하게 이름 붙여보자면 들기름마늘깻잎지라고 불러야겠다. 그 맛에 반해 나도 왕창 얻어왔고, 친한 친구에게 조금 나눠주었고, 작년 가을 우리 딸 밥도둑이었다.


역시 먹어나 봤지, 깻잎을 삭히는 과정은 본 적도 없도 모른다. 옆에 살았던 아빠도 모른다. 당연히 택배로 받아먹기만 했던 동생도 모른다. 똥멍충이 세 명이 모여 앉아 일단 깻잎을 다듬어 묶음을 만들면서 온갖 뇌피셜을 늘어놓았다. 고무줄로 이렇게 묶네, 실로 저렇게 묶네, 먼저 씻어야 하네, 소금물에 저린 다음 씻네, 하면서 우리는 난리가 났는데 비법을 아는 엄마는 우리 옆에 가만히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엄마 없이 엄마 보호자 셋이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두런 살가운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익숙한 듯 새로운 듯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들이 차례로 밀려왔다. 엄마가 쓰러지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서 우리 모두 충격과 슬픔에 빠졌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후 우리는 어떤 감정의 공유보다는 엄마를 간병하고 돌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공유하는 사무적인 가족관계가 되었다. 간병에 대한 사무 이외에 서먹서먹하고 데면데면한 관계가 된 우리를 엉뚱하게 떨어진 깻잎이 묶어주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사소하고 심각할 것 없는 즐거운 논쟁, 소꿉놀이하듯 깻잎을 다듬으면서 깻잎 냄새에 취하게 되는 감각적 재미,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일상의 연대가 주는 즐거움과 안정담, 그리 덥지 않은 일요일 오전의 평화로움이 차례로 내 마음에 모여들었고, 그 마음의 종착지는 감히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감정이 되어 무덤덤해진 내 심장을 살짝 찔렀다. 우리를 묶어준 깻잎이 엄마가 만들어 우리를 감동시켰던 천상의 맛으로 데려갈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매고 온 깻잎 보따리는 우리에게 선물과 같은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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