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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8. 2024

소녀들의 낭만에 대하여

덕분에 나도 낭만 챙겼다.

엄마?

응, 지금 학교 끝났어?

응, 사실 더 일찍 끝났는데 규리랑 청소년센터에 갔다 왔어.

거기 가서 뭐 했는데?

뭘 한 건 아니고 그냥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어.

아니, 더운데 뭐하러 쓸데없이 왔다갔다 했어?

쓸데없이라뇨? 이런 게 소녀들의 낭만입니다. 쓸데없이 할일없이 왔다갔다 걸어 다니면서 시간 보내는 거, 고등학교 가면 공부하느라 바빠서 또 어른되고 하면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할까봐 지금 많이 해두는 겁니다.

낭만이라…너가 생각하는 낭만이 뭔데?

오늘 우리가 그냥 이유없이 걸어 다닌 것처럼 꼭 어떤 특별한 이유와 목적 없이, 정처없이 어른들이 보이기에는 쓸데없이 비효율적일 수 있는 일을 그냥 필에 꽂혀 하는 겁니다.

아하. 그러셔요?

어때, 이런 거 어른되면 못 하는 거 맞지?

뭐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점점 안 하기는 하지. 시간도둑들이 그런 건 낭비라며 그런 낭만적인 시간을 자꾸 뺒어가려고는 하지.

엄마는 최근에 낭만 없었어?

음, 그러게…생각이 안 나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오늘 저녁 빨래 걷다가 하늘을 봤다. 서쪽하늘에 쿨톤에서 웜톤으로 교대를 하면서 물들이고 있었다. 할일이 있으면 미루지 못하고 빨리 헤치우려는 습성이 있는 나, 빨래 걷기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저녁 노을이 더 예뻐진다. 엄마가 밥 하다 말고 우리를 불러 보여주었던 저녁 노을이다. 딸 홍시 덕분에 나도 오늘 낭만 챙겼다. 끝여름 가을 바람을 머금은 지금 낭만 챙기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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